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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뿌리깊은 매매춘 충격 고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7면

『매춘은 필요한 것 아닙니까. 그렇기 때문에 아직도 없어지지 않고 남아 있는 것이지요.』
공개 시사회를 가진 다큐멘터리 영화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에서 태국에 살며 여자를 곧잘 산다는 한 독일 남자는 너무도 천연덕스럽게 이렇게 말한다.
국제 매매춘이 그릇된 성문화에 바탕을 두고 뿌리 깊음을 단적으로 드러낸 장면이다.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의 공개 시사회는 기록영화 독립제작소인 푸른 영상(대표. 김동원)과 한국교회 여성연합 공동주최로 11일 오후 서울 종로5가 기독교 연합회관대강당에서 열렸다.
89년 국내 첫 여성 영화집단 「바리터」를 창립한 변영주씨(26)가 연출·편집한 상영시간56분 짜리 컬러의 이 다큐멘터리(제작비 2천7백만원)는 모두 다섯 꼭지로 구성돼 제주도와 태국·일본을 넘나들며 성이 거래되는 현장을 고발하고 「매매춘을 반대하는 일본 남성들의 모임」「교회여성연합회」회원 등 관계자들의 인터뷰를 보여준다.
연출자 변씨는 스스로에게 되묻는다. 『매매춘은 언제나 있어왔고 더구나 특별히 커다란 대중적 관심을 불러일으키지 않고 있음에도 93년에 이 다큐멘터리를 제작·상영하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매매춘이라는 것이 일반인의 생활과는 격리돼 게토(고립지구)와도 같이 여겨지는 현실에서 그 대안은 과연 무엇이며 매춘과 비 매춘과의 경계는 튼튼한가』라고.
이 다큐멘터리는 제작에 들어간 91년10월 소재를 「기생관광」에 국한시키려 했으나 나중에 「아시아 국제 매매춘」으로 범위를 넓혔으며 현재 빈 민중영화제와 야마가타 국제 다큐멘터리 영화제에 출품돼있다.
올해 하반기부터 일본에서는 ㈜판도라의 배급으로 상영되고, 국내에서는 소극장에서 상영됨은 물론 여성학 관련 프로그램으로 배급될 예정.
작품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사는 것』은 그 소재 때문에 촬영하는데 적지 않은 어려움이 뒤따랐다. 이는 몰래 카메라의 동원, 푸른 영상 제작스태프와 「매매춘을 반대하는 일본남성의 모임」회원이 관광객을 가장해 태국 유흥가와 한국 요정을 잠입 취재 및 촬영한 점에서 엿볼 수 있다. 『아시아에서…』은 국제 매매춘에 관한 아시아 보고서로 자리 매김 되면서 매매춘 반대운동에도 한 몫 할 것으로 기대된다.
영화시사회에 뒤이어 매매춘 문제에 관한 토론회가 변영주씨를 비롯해 박현선(영화촬영 )·오옥만(한국교회여성연합회 제주도 실무자)·오숙희(여성학 강사)·장윤현(독립영화제작소 장산곶매 회원)씨 등이 참석한 가운데 조연출자 신혜은씨의 사회로 진행됐다.
토론회에서는 국내 매매춘이 일본 식민통치하에서 조선 땅에 정착한 일본의 낭인·장사꾼을 위해 유곽을 설치한 이래 60년대의 산업화과정을 겪으면서 크게 번지기 시작한 것으로 지적됐다. 또 현재 1백만 명을 넘는 여성이 산업형 매춘에 종사하고 있는 국내 현실의 타개를 위한 방안이 나름대로 제시되기도 했다. <김영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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