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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②] 망상 대한민국이여, 헛꿈에서 깨어나라!

중앙일보

입력

월간중앙7. 못 말리는 과대망상
- 폼생폼사! 자존심에 죽고 살았던 체로키 인디언 기질과 흡사

망상의 기질과 풍토는 버스를 갈아 타듯 옮길 수 있다. 한국인은 미소망상 못지않게 과대망상을 갖고 있다. 한국은 크고 강하고 대단하다는 집착이다. 월드컵에서 골 많이 넣으라는 함성으로 ‘대~한민국’이 사용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지도를 놓고 보면 중국의 한 성에 지나지 않는 반도를 놓고 대한민국이라고 하기는 조금 민망하다.

그러나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을 좋아하는 한국인은 많다. 스스로를 지칭하며 ‘대한민국의’라는 형용사를 넣어야 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어느 유명 대학의 교수가 노래방에서 ‘정부의 무슨 위원인 대한민국의 아무개’가 노래를 하려는데 서비스가 서투르다고 주정을 부리는 것을 보고 대한민국이 진정 애용되는 말임을 알았다.

과대망상의 여러 유형 중 한국에서 우선 눈에 뜨이는 것이 혈통망상이다. 자신이 혈통적으로 우수하다는 집념이다. 여기서 혈통을 사회적으로 해석하자면 출신성분이다. 이 혈통망상은 기득권 고수라는 정치적 의도와 맞물려 돌아간다. 우선 민족 전체가 혈통망상을 가지고 있다. 어느 민족이나 기원에 관한 신화가 있고, 그 신화에는 민족의 우수성에 대한 내용이 들어있다. 그러나 한민족이 배달민족의 우수성에 대해 지키는 믿음은 장난이 아니다.

한국사회의 특수 신분들

이는 언어에서 잘 나타난다. ‘내 참, 자존심 상해서’라는 말은 한국에서 종종 듣는 표현이다. 내가 경험해 본 어느 사회에서도 이러한 표현은 없다. 어떠한 의사결정이나 행동을 취하는 데 자존심 상한 것이 요인이 된다고 직설적으로 말하는 문화는 없는 것이다. 자존심에 대한 언급은 한국인에게는 실례지만 대개 수준이 낮은 미개문명을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한다.

영어 노래 <인디언 보호구(indian reservation)>의 가사를 보면 체로키 인디언은 사는 데나 죽는 데 너무 자존심이 강했다(so proud to live, so proud to die). 이 체로키 족과 유사한 심경을 가진 것이 한국인인 듯하다. 이는 한국에서 오랫동안 유행했던 ‘폼생폼사’라는 말에 잘 나타나 있다. 폼(외양으로 구현하는 자존심)에 살고 폼에 죽는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잘나가는’ 사람은 자동차나 휴대전화는 아직 새것인 데도 새로운 모델이 나오면 곧 바꾼다. ‘차 한 대 뽑는 것’이 무슨 냉면 한 그릇 말아먹는 정도다.

파리가 낙상할 정도로 번쩍번쩍 닦은 검은 타운카를 타지 않으면 어디 가서 명함도 제대로 내지 못한다는 망상을 가진 사람들이 세상에는 세 부류가 있다. 한국에서 성공한 사람들, 미국의 일부 흑인들, 그리고 일본의 야쿠자들이다.

한국인의 혈통망상은 유구한 전통이 잘 지켜지고 있다. 신라에 진골·성골이 있었다면 오늘날의 대한민국에는 대학교수와 고시 출신자들이 있다. 박사 학위와 고시 합격이라는 일종의 면허증을 가진 이들은 단순히 지식집약적 직업군을 구성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국사회에서 특수 신분을 이룬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일류대학을 나오고 해외의 일류대학에서 박사를 한 뒤 한국에서 교수 직에 있는 이들은 단순한 학자나 선생이 아니다. 그들은 한국사회에서 혈통적으로 빼어난 자들이 향유해야 하는 가치들을 망라하고 축약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일류대학의 교수는 생활도 윤택하고 부인은 요조숙녀이며 정부에 중요한 역할을 행사하고 사회의 존경을 받는다. 따라서 이들은 한국사회의 웬만한 사람들은 한 다리 건너면 다 안다. 정치가들과 술을 마시고 기업가들과 골프를 치며 대통령선거 철이면 지식과 지혜와 전략을 양조장의 술처럼 퍼준다.

그런데 대학교수 중에는 무늬만 엘리트가 많아 순도가 떨어지는 반면 훨씬 순도가 높아 진정으로 뚜쟁이들의 사랑을 받는 사람들은 사시와 행시에 붙은 사람들이다. 대학교수들이 한국의 가치들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해설가들이라면, 고시에 붙은 사람들은 가치를 창출하고 움직이는 선수들이다.

이들의 월급쟁이 공복으로서의 시작은 미약하지만 커리어의 끝은 창대하다. 서로 시기하고 미워해도 그룹의 기득권을 부릅뜬 눈과 움켜쥔 주먹으로 지켜내는 이들이 공직에서 물러날 즈음이면 진정한 가치들이 나타난다. 대한민국의 정계와 재계에서 이들은 별 같이 빛나게 되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진정 축복받은 나라이다. 이 축복에는 인류가 모시는 중요한 초월자들인 예수 그리스도·성모 마리아·석가모니·공자·도가 등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모두 임해 있다. 유일하게 뒤처진 것이 무하마드였다. 또한 많은 신령이 한국인의 몸을 안식처로 선택하기도 했다. 한국인이 종교망상을 갖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었다.

많은 한국인이 초월자들에게 선택받았다고 믿으며, 그 중에는 자신의 몸에 초월자가 들어있거나 적어도 신탁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종교망상대국 한국이 연출해 내는 풍경은 세계 어디에도 없다. 해가 진 후 웬만한 도시를 둘러보면 여기저기 붉은 색 네온으로 빛나는 십자가들이 눈에 들어온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기 위한 이들 교회는 낮에 보면 거대한 광장의 건축물에서 시작하여 피아노학원의 위층, 찜질방의 아래층, 쓰러지는 판잣집 등 도처에 늘어서 있다.

불교 사찰도 활동이 왕성하기는 마찬가지다. 인생의 윤회라는 추상적 사안에서 시작해 자녀의 입시, 임신, 조상의 천도굿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찰은 현대 한국인들에게 원스톱 솔루션을 제공하는 포털 같아 보인다.

이러한 망상국가에 사는 한국인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미래의 불확실성에 훨씬 잘 대처한다. 미래가 불안한 사람은 목사·승려·신부는 물론 점쟁이·무당·박수 등 다양한 지혜 제공자로부터 조언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 ‘24시간 이혼 상담’ 변호사가 있다면 한국에는 연중무휴로 가르침을 줄 수 있는 성직자와 점쟁이가 있다. 이들과 운명을 상담하는 것은 이제 국민적 관행이 되어 정치가·기업가·지식인·상인·주부·대학생 등 모든 프로필의 한국인이 이 서비스를 이용한다.

마지막으로 한국인의 커다란 망상이 연애망상이다. 누구나 연애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타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편집증이다. 요즘 말로 한국인들은 왕자병과 공주병에 걸려 있다.

많은 한국인은 외국인들이 한국을 추하게 본다는 생각에 시달렸었다. 이것이 언제부터인가 한국은 외국에서 사랑받는 존재, 주목받는 브랜드라는 생각으로 바뀐 듯하다. 이러한 긍정적인 자기인식은 좋은 것이지만, 한국인에게는 지금 점차 망상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언론에 비치는 한국인은 천당과 지옥, 천사와 악마의 경지를 왔다 갔다 하는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 어제는 일본에 간 한국 관광객들이 조용한 온천장에서 떠들거나 물건을 가지고 간다고 전하더니, 오늘은 이승엽이라는 선수가 일본야구를 암흑에서 구해내 일본인들이 온통 ‘승짱’ 중계를 보느라 정신이 없다고 한다. 위성미라는 소녀골퍼는 타이거 우즈라는 흑인에 염증을 느끼는 전 세계인에게 신선하고 짜릿한 충격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한류와 한국 여자골퍼들의 약진

이러한 생각들이 집약되는 것이 한류다. 외국인들이 최근 한국의 대중문화에 매료돼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유독 한국의 대중문화만 예찬하거나 다른 문화에 비해 우수하다는 것은 아니다.

서울에서 오래 생활한 일본 지상파 방송국의 한 간부는 한류라고 불리는 한국의 대중문화는 다양한 외국문화를 받아들이는 일본의 문화생활 속에서 이제야 하나의 외국문화로 ‘시민권’을 획득한 것이라고 정리한다. 다만 한·일 간의 갈등관계와 대조해 그 가치가 더욱 빛난다는 것, IT시대의 여러 수단을 활용할 수 있는 타이밍이 좋았다는 것 등이 한류를 두드러지게 보이게 한다는 의견이다.

세계 속에서 한국의 이미지를 높이는 것으로 여기는 또 하나의 사례가 한국 여자골퍼들의 약진이다. 최근 미국 여자골프대회에서 상위에 입상하는 한국인이 너무 많아 클럽하우스에서 김치를 팔아야겠다는 농담이 나올 정도였다고 한다. 이는 일본에서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실정과 정서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 현상은 한국여성들이 특히 골프에 적합한 체격이나 특성을 갖추고 있다기보다 부모의 의향이 강하게 작용한 결과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과거 농촌의 아들들이 법대에 많이 지원해 결국 고시 합격자가 많이 나왔던 것과 마찬가지다. 자식의 출세는 가족의 신분 향상이라는 사회적 인식이 작용한 것이다. 따라서 이를 미화하거나 과찬하는 것은 오직 한국의 의식수준이 높지 않음을 강변하는 것이 될 수 있다.

8. 닫혀 가는 문들
- 망상적 대응으로 이미지 추락 가속화… 국제 ‘왕따’ 우려해야

이러한 다양한 망상을 가지고 있는 한국을 이웃 나라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최근 ‘추악한 한국인(ugly Korean)’의 모습을 불식하자는 움직임이 외무부를 중심으로 정부 차원에서 있었다는 소식이다. 정부에 실로 다양한 위원회가 만들어지고 있다. 지금은 존재하는지 모르지만 과거의 보도에는 국가이미지발전위원회라는 말이 있기도 했다.

지난 3월에 있었던 해외 총영사들의 모임에서는 추한 한국인을 줄이기 위한 성토와 권고 등이 있었다고 한다. 공무원들이 정책을 만들어 과연 한국인의 교양 수준과 시민문화를 높일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러나 더 심각한 문제는 한국이 국제사회의 많은 분야에서 조용히 혐오의 대상이 되거나 소외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학계를 한 예로 들 수 있다. 미국의 학계가 개방적이라는 것은 대부분 인정한다. 미국의 대학원은 우수한 학생이라면 인종을 포함한 모든 개인적 조건을 불문하고 선발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좋은 퍼포먼스를 보이면 외국인임에도 교수로 채용한다. 영어가 불완전해도 한국의 많은 인재가 지금도 미국 학계에서 종사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인재들을 위한 미국 학계의 문은 차례로 닫혀 가고 있다. 그 원인은 많은 공과 비용을 들여 임명한 한국인들이 한국에 교수 자리가 나면 뒤를 생각하지 않고 떠나기 때문이다. 오랜 경험을 통해 미국인 교수들은 한국의 학자들의 꿈은 연구를 통해 자기를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좋은 대학에 교수로 금의환향하는 것이며, 미국에서의 학위와 심지어 교수 자리도 그 방편임을 알게 된 것이다.

일본 기업들이 한국을 떠나는 것도 닫혀 가는 커다란 문이다. 역사문제를 포함해 일본과 어떠한 갈등이 있더라도 일본의 기술·지식·노하우에 한국이 의존하는 부분이 많은 것은 현실이다. 지금도 많은 기업이나 단체가 급하면 일본을 찾는다.

왜 한국 외교는 정서외교·기분외교인가?

한국에 오래 체류한 일본 종합상사의 한 간부는 한국 기업들은 ‘벤치마킹’을 좋아하는데, 회사에서 벤치마킹 지시가 있으면 으레 일본에 와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여긴다고 꼬집는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한국 기업이 일본 기업에서 자료를 가져간다는 사실이 아니라, 일본 기업이 협력해 주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태도가 한국인들에게 있다는 것이다. 과거에 잘못한 것을 생각하면 일본은 무엇에도 응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국인의 ‘응석구조’라고 보는 것이다.

거창한 수식어들과 달리 한·일 간에 협조와 교류가 가장 떨어지는 것이 금융부분이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지만 일본 금융계의 한국 금융계에 대한 서운함이라는 심리가 큰 요인이다. 과거 일본은 서방국가들이 주축을 이루는 각종 금융회의에 참가한 아시아의 유일한 나라였다.

그러다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면서 서양인들의 금융회의에 아시아인으로는 두 번째로 참가하는 멤버가 됐다. 이때 일본인들은 한국인의 참가를 환영하며, 특히 서양인들이 자리를 채우는 회의장에서 같은 동양인으로서 호흡을 맞추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한국인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일본에 반대하거나 일본의 입장을 약하게 하는 태도를 취했다는 고백이다. 이때 일본금융인들이 느낀 한국 금융계에 대한 허탈과 불신은 지금도 완전히 불식된 것이 아니다.

여기서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국익에 결부되는 많은 장면에서 한국의 엘리트들이 합리적 계산과 판단보다 한국인으로서, 더 정확히 말하면 유관순 누나의 후손으로서 불필요하게 감정을 개입시키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지금도 일본의 정계·관계·재계에서는 한국의 일본외교를 ‘정서외교’ 또는 ‘기분외교’라고 부른다.

한국에서 오래 생활한 <일본경제신문>의 스즈오키 기자는 한국의 기분외교를 매우 걱정한다. 비슷한 내용이라도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에는 분신자살로 반대하고 유럽과의 FTA는 그런 것이 있었나 하는 정도로 넘어가는 한국인의 대외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일본 외무성의 한 간부는 한국의 정서외교·기분외교에 장단을 맞출 수가 없어 ‘당분간 한·일 외교는 개점휴업’이라고 한다.

한국인의 망상이 엘리트들의 무책임한 말장난에 실릴 때는 엄청난 국익의 손해를 초래할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식민 통치국들이 영토를 원래의 주인에게 돌려주는 과정에서 한국은 독도를 찾는 것이 중요한 일이었다. 그때 육당 최남선이라는 역사학자가 외무당국에 ‘파랑도라는 물에 잠길까 말까 하는 암초가 있으니 독도와 함께 이것도 한국땅’이라고 연합군에 주장하라고 충고했다. 둘을 요구하면 하나는 건질 수 있는 생각이었는지 모른다.

중국에는 한국이 없다?

이 주장을 검토한 연합군 사령부는 ‘파랑도가 한국 영토’라는 주장을 정부 의견으로 제시할 수 있는 한국인의 양식에 큰 의문을 가지게 된다. 이로써 결국 연합군 사령부는 일본이 한국에 반환해야 하는 영토에서 독도마저 제외하고 만다.

현재 한국인의 마음은 일본을 떠나 중국을 향하고 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중국 엘리트들의 생각이 한국이 원하는 만큼 한·중 관계를 중요시하지 않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중국 공산당 수뇌부에 한국은 무엇인가? 이에 대해 중국의 어느 싱크탱크의 연구원은 한마디로 정답을 내놓았다. “미국과의 관계를 기반으로 성립하고 있는 나라”라는 것이다. 따라서 중국으로서는 미국과의 관계를 가장 중심으로 여기며, 그 연장선 위에서 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판단한다는 것이다.

중국을 사랑하고, 중국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사람들은 중국인과 한국인만이 세 자의 한자로 된 이름을 가지고 있다고 곧잘 말한다. 즉, 중국과 한국은 문화적 DNA가 같은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말에 대한 중국인의 온도는 그리 뜨겁지 않다. 그 근거로 제시할 수 있는 것이 중국의 지식인들이 보는 신문의 사설과 평론이다. 국제경제를 연구하는 한 중국인 교수는 한국에 관한 기사는 중국 신문의 사설이나 평론에서 거의 나오지 않는다고 잘라 말한다. 금융을 잘 아는 그는 한국이 아시아의 금융 허브를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마치 지방의 한 재계 소식을 듣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상하이(上海)에서 한국 무역계를 대표하는 조직의 책임을 맡고 있는 P씨는 지금까지 5,000년의 한·중 관계사에서 한국이 지금처럼 대접받고 좋은 위상에 있었던 적은 없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자식들이 성장할 시점에 한국이 현재 위상을 중국에서 유지할 수 있을지는 회의적이라고 고백한다. 앞으로 고속도로가 전국에 깔리고 진정으로 현대자본주의 국가로서 새로운 국가 건설이 완성되는 십 수년 후의 중국에 ‘한국은 없다’가 될지 모른다는 염려다.

이러한 염려가 기우가 아님을 알게 하는 장면을 하나 목격했다.

“조선족은 중국의 55개 소수민족 중에서 가장 우수한 공동체입니다. 이 조선족의 집단적 자존심에 최초로 상처를 낸 사람들이 바로 한국사람들입니다.”

옌볜(延邊)에서 태어나 조선족 사회에서 존경받는 학자로 현재 상하이의 푸단대학 교수로 있는 J박사가 어렵게 토한 말이었다. 망상의 가장 무서운 면은 자신이 진실로 생각하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환각이거나 환상이라는 것이다.

한국인들이 세계에서 인정받고 사랑받는다는 것이 환상은 아닌가? 한국인들은 바르고 정의롭기 때문에 절제라거나 금도라는 것은 필요 없다는 환상에 취해 있는 것은 아닌가? 62돌 광복의 날을 앞두고 “이 날이 사십년 뜨거운 피 엉긴 자취니 길이길이 빛내자”는 노랫말 대신 이러한 생각들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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