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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살아나는 한옥 사랑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1호 02면

한옥이라는 단어는 1975년 새우리말큰사전에 처음으로 등재되는데, 세련되고 기능적인 양옥에 대한 반대말로 설명되어 있다. ‘집’ 하면 더 이상 한옥을 의미하지 않게 되었을 때, 한옥은 비로소 그 이름을 얻은 셈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한옥은 한복·한식과 마찬가지로 정답지만 남루하고, 소중하지만 전근대적인 생활문화 유산으로 여겨져 왔다.

대청에 잠깐만 앉아있어도 밀려오는 여유로움

한옥에 대한 평가는 현대 도시에서 더욱 냉정하다. 서울에 남아있는 한옥들은 대부분 30년대에서 60년대 사이에 건설된 도시한옥들이다. 집이 낡고 길도 좁은 이들 한옥 밀집지역은 대부분 재개발지구로 지정되어 있어 이제 곧 헐릴 운명이다. 주민들도 정든 한옥 동네를 아쉽게는 여기지만 재개발로 인한 개발이익을 포기할 수도 없는 현실이다.

그런데 한쪽에서는 한옥이 복권되고 있다. 몇 년 사이에 서울 북촌의 한옥 값이 몇 배씩 오르고, 『한옥에 살어리랏다』와 같은 책이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오르기도 했다. 2001년부터 ‘북촌 가꾸기 사업’으로 한옥 보존 정책이 시행되고, 한류 덕분에 우리 생활문화의 멋에 대한 인식도 새로워진 데 힘입은 것이다. 투자대상으로서도 가치가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곁들여져, 최근 한옥은 대중매체들로부터도 대접받기 시작했다.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한옥의 아름다움은 한옥 대청에 한 시간만 한가롭게 앉아 있어 보면 몸으로 깨달을 수 있다. 온돌과 마루는 마당을 중심에 두고 조밀하되 여유롭게 조직되어 있고, 나무 기둥과 보는 두텁고 견실하게 구축되어 있다. 또한 자연재료로 지어진 한옥은 친환경적인 건축으로, 시멘트와 화학재료로 지어진 현대주택과 견주어 소위 참살이 공간으로 구별될 만하다.

그러나 바야흐로 한옥이 복권되는 이 시점에서 함께 지켜야 할 한옥의 가치에 대해 짚어볼 필요가 있다.
첫째, 도시경관으로서 한옥이 갖고 있는 가치다. 한옥은 한 채 한 채도 아름답지만 한옥이 모여 있을 때, 그 가치는 더욱 크게 드러난다. 한옥 지붕이 지형과 향에 따라 조금씩 그 앉혀지는 방식을 달리하면서 이루고 있는 경관은 그 자체로 소중한 도시문화재다.

특히 서울의 도시한옥은 근대적인 도시주거지 위에 전통 한옥이 적응하면서 진화된 도시주택 유형이다. 안마당을 중심으로 가족의 삶이 구성되고 길에 면하여 두터운 반화방벽(半火防壁)과 활달한 처마 선이 어깨동무하듯 이어지면서, 한옥 골목만의 독특한 질감과 서정을 연출한다.

둘째, 거주공간으로서 한옥이 갖고 있는 가치다. 북촌 가꾸기 사업 초기에 한옥을 반닫이 장에 비유하곤 했다. 산업화 시대에 우리들은 반닫이 장을 내다 팔고 호마이카 단스를 샀었는데, 지금 한옥을 헐고 다세대주택을 짓는 우리 모습이 그때와 다를 것이 없지 않은가라는 논리로 반대하는 주민들을 설득하곤 했다.

북촌의 경우 300채 정도의 한옥이 고쳐지고 부동산 가격이 올라가면서, 그 비유가 현실로 입증되었다. 그러나 이제 그 비유에서 간과된 점을 돌아볼 필요가 있는데, 그것은 반닫이 장은 가구이고 한옥은 집이라는 점이다. 가구는 사용되지 않고 정물로서도 그 가치를 어느 정도 유지하지만, 한옥은 사람이 거주하지 않거나 사용되지 않으면 그 가치를 유지할 수 없다. 한옥을 완상의 대상으로만 삼거나, 평소에 사용하지 않는 별장처럼 닫아두는 것은 그 집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더 나가서 골목의 활력을 거세해버리고 만다.

반대로 한옥의 활기는 때때로 한옥의 정체성을 위협하곤 한다. 지난겨울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중국 윈난(雲南)성 리짱에 갔었다. 서울 도성 절반 규모의 도시 전체가 전통 건축으로 보존되어 있는 역사도시다. 보존의 밀도가 놀랍고 부러웠지만 한편으로 실망도 컸었다. 온 도시가 마치 장터처럼 상업화되어 버린 탓이었다. 인사동과 하회마을에서 보듯이 문화유산은 활력이 필요하지만, 때때로 왕성한 활력은 문화유산의 정체성을 위협한다.

이제 우리가 한옥 한 채 한 채의 아름다움에 대해 깨달은 시점에 서 있다면, 앞으로는 한옥이 모여서 이루고 있는 가치에 주목할 때다. 지혜롭게 균형을 이루지 못하면, 한옥은 자칫 반닫이 장처럼 그저 귀하고 아름다운 물건에 머무를 수도 있다. 이 시대의 한옥을 우리가 함께 지키고 누리는 문화유산으로 만들어가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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