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2007 안방극장 韓.美.日드라마 삼국지>한국 드라마-위기보단 기회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1호 07면

한국 드라마 시장이 위축되어 간다고 걱정들이 많다. 하지만 현장에서 보기엔 아직 ‘미드(미국산 드라마)’나 ‘일드(일본산 드라마)’로 인해 국산 드라마의 위치가 흔들릴 일은 당분간은 없을 것 같다.

'승자독식'지상파서 불붙는 실험 경쟁

사실 걱정하는 사람들 생각도 일면 이해가 간다. 일본과 중국을 비롯, 아시아 시장에서 잘 먹힌다고는 하지만 한국 드라마의 일반적인 수준을 ‘미드’ ‘일드’와 비교하면 그리 할 말이 없다.

일단 들어간 물량에서 비교가 안 된다. ‘미드’ 사극 붐을 이끈 ‘로마(Rome)’와 ‘튜더스’의 경우 각각 회당 200만 달러(약 19억원)에서 많게는 400만 달러(약 38억원)까지의 돈이 투입됐다. 한국의 ‘주몽’이나 ‘연개소문’의 회당 제작비는 2억원에서 2억5000만원, 넉넉 잡아도 회당 30만 달러가 안 된다. ‘미드’는 한국 드라마의 7배에서 10배의 돈으로 만든다.

또 한국 시청자가 지금 접하고 있는 ‘일드’나 ‘미드’들은 이미 현지에서 수십 편, 수백 편의 다른 드라마와 경쟁을 통해 검증된 작품이라는 점을 묵과해선 안 된다. ‘프리즌 브레이크’며 ‘CSI’는 한국보다 훨씬 경쟁이 드센 미국 TV 시장에서도 수위권에 올랐던 드라마다. 미국에서 성공하지 못한 드라마라면 한국에까지 올 수도 없었다.

하지만 아직 ‘미드’나 ‘일드’를 국산 드라마만큼 소비하는 사람들은 일부 고등교육을 받은 계층이나 해당 국가의 문화를 선호하는 소수 청소년층에 국한돼 있다. 이들의 수를 시청률로 환산해 의미 있는 숫자로 보기는 힘든 게 현실이다. 그리고 뭐니뭐니 해도 중요한 것은 지상파 방송사의 역할이다.

최근 들어 지상파 TV들의 시청률 합계가 50% 선에 머무는 등 ‘지상파의 위기’가 거론되기도 했지만 케이블 TV 시장에서도 시청률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모두 지상파 TV의 드라마·오락 재방송 채널이다.

한마디로 한국 방송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지상파 TV에서 발생한 콘텐트다. 지상파 방송사들이 국산 드라마를 쥐고 있는 한, 감히 ‘미드’나 ‘일드’가 한국 방송시장을 넘본다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이 때문에 수많은 드라마 제작사들은 지상파 편성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이런 치열한 경쟁은 가끔씩 불륜이나 근친상간과 같은 자극적인 소재의 범람으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대체로 드라마의 질적 향상을 가져왔다.

메디컬 드라마 ‘하얀 거탑’에서 경찰 드라마 ‘히트’, 교육 현장을 소재로 한 ‘강남엄마 따라잡기’ 등으로 대변되는 소재의 다양화, ‘주몽’ 식 판타지 사극의 등장, 그리고 최근 화제작인 ‘커피프린스 1호점’과 같이 젊은 감각이 돋보이는 작품들이 바로 경쟁의 결과물이다. 여기에 ‘막돼먹은 영애씨’ ‘키드갱’ ‘하이에나’ 등 참신한 케이블 TV용 드라마들에 이르기까지 2007년의 드라마 시장은 다양한 실험과 백화제방의 현장이다.

물론 고질적인 문제는 여전하다. 예를 들어 수많은 드라마 제작사들의 과열 경쟁 상황은 심각한 부실화의 위험을 안고 있다. 방송사들이 지급하는 제작비의 2배 이상이 실제 제작비로 소요되는 상황에서도 서로 드라마를 만들겠다고 나서고 있으니 경영 상태는 안 봐도 알 만하다. 드라마 제작사들은 기회만 있으면 “방송사들이 지급하는 제작비가 현실화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으지만 돈줄을 쥔 방송사들은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현재 상황에서 제작비를 늘려줘 봐야 곧바로 스타 연기자나 작가들의 출연료ㆍ집필료 인상으로 이어질 뿐 실제 제작비 인상을 가져오지는 못할 것”이라며 관망하는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올인’ ‘허준’ ‘주몽’ 등을 쓴 국가대표급 작가이면서 드라마 제작사 ‘A스토리’를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는 최완규 작가는 “제작비는 몰라도 해외 판권 등의 부가 수입 분야에서 방송사들이 좀 더 양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시청률 50%의 드라마나, 7%짜리 드라마나 똑같은 광고료를 받게 하는 현재의 방송광고공사 체제는 드라마 제작 규모 대형화를 정면에서 가로막고 있다”고 쓴소리를 털어놨다.

하지만 역으로, 방송광고공사 체제가 시청률 무한경쟁을 전제로 한 드라마의 선정성 강화를 막고 있는 보호벽이라는 지적도 있어 갑작스러운 변화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딱 하나 더 지적하자.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고는 하지만 해외 드라마의 지나친 모방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외과의사 봉달희’와 ‘그레이 아나토미’의 관계가 그렇다. 전자의 제작진은 여러 가지 변명을 할 수 있겠지만, 잘라 말해 후자가 없는 전자가 존재할 수 있었겠는가를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기 바란다. 리메이크가 아닌 이런 식의 모방이야말로 한국 드라마의 창조력을 좀먹는 독이 될 수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