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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는 살아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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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호 05면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난 지 26년 만인 1817년 바바라 크라프트가 완성한 모차르트의 초상화. 2006년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을 장식한 대표적인 모차르트 얼굴이다. 가발을 쓰고 금빛 장식을 단 붉은 옷을 입고 자신감에 넘치는 표정을 하고 있다. 빈 음악애호가협회가 소장 중이다.

“이번 역은 동대문운동장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왼쪽입니다. 계속해서 방화ㆍ마천 방면이나 잠실ㆍ시청역으로 가실 분은 3호선이나 2호선으로 갈아타시기 바랍니다.”
집에서 가까운 지하철 4호선을 타고 사무실 근처 시청역으로 가려면 2호선으로 갈아타야 한다. 매일 아침 출근길 지하철에서 환승역을 알리는 안내방송과 함께 흐르는 음악이 있다. 바로 모차르트의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 무지크’ K525 G장조 중 ‘미뉴에트’의 첫 부분이다. 3박자로 시작한 다음 악센트 위치를 한 박자씩 앞당겨 2박자 같은 느낌을 준다(3호선이나 2호선으로 갈아타라는 깊은 뜻이 담겨 있는 걸까). 아침부터 ‘밤의 음악’을 틀어주는 게 좀 그렇지만 옴짝달싹할 수도 없는 만원 지하철에서 경쾌한 선율을 들려주는 것만 해도 고맙긴 하다. 그런데 매일 아침 듣다 보면 모차르트 같지 않고 자동차 후진 신호나 전화벨 소리처럼 ‘시그널’로 들리는 것은 어찌 된 일인가.

프랑스 작가 필립 솔레르스는 『모차르트 평전』에서 “현대인은 누구나 모차르트 속에서 살고 있다”고 썼다. 모차르트는 휴대전화 컬러링(전화 대기음)에만 흐르는 게 아니다. 엘리베이터·레스토랑·호텔 로비·쇼핑몰에도 흐른다. 솔레르스는 말을 이어간다. “만약 모차르트가 환생해 자신의 저작권을 챙긴다면 그 돈으로 조국 오스트리아를 사고도 남을 것이다.”

무궁무진 ‘모차르트 마케팅’

모차르트는 살아 있다.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선율, 불협화음을 최대한 배제한 명징한 화음, 천진난만하고 경쾌한 리듬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에게 어필하는 요소들이다. 모차르트만큼 전 세계 사람이 모두 좋아하는 클래식 음악도 없을 것이다. 아니 클래식 음악을 전혀 좋아하지 않고 듣지 않는 사람이라도 모차르트는 들어 보았을 것이다. 영국 클래식 FM이 청취자 투표로 결정하는 ‘클래식 명예의 전당’ 작곡가 톱 10에서 모차르트는 올해 베토벤과 함께 공동 1위를 차지했다. 미국의 시사 주간지 타임지가 밀레니엄을 맞아 선정한 최고의 문화인물 10명에 선정됐다.

하지만 모차르트를 제대로 이해하면서 듣고 있는 것인가. 밀로스 포먼 감독의 영화 ‘아마데우스’의 성공으로 이 영화에서 주입한 신화를 그대로 믿고 있는 것은 아닐까. 모차르트를 한낱 배경음악으로 듣고 있는 것은 아닐까.

1991년 모차르트 서거 200주기를 맞아 600여 곡에 이르는 모차르트의 작품 전곡을 CD 180장에 담아낸 음반사 필립스는 다양한 쓰임새에 맞춘 컴필레이션 음반도 출시했다. ‘아침에 듣는 모차르트’(1992)를 시작으로 ‘한밤에 듣는 모차르트’ ‘저녁 식사용 모차르트’ ‘명상을 위한 모차르트’ ‘모닝 커피를 위한 모차르트’ ‘태교용 모차르트’ ‘아침 출근길의 모차르트’ ‘마사지를 위한 모차르트’ ‘월요일 아침을 위한 모차르트’ 등을 내놓았다. 생전에 ‘천재’ 나 ‘신동’으로 불렸던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으면 머리가 좋아진다며 ‘모차르트 이펙트’란 말까지 나왔으니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초콜릿 같은 모차르트

모차르트는 마음의 양식뿐 아니라 달콤한 입맛까지 선사한다. 모차르트의 이미지와 초콜릿의 단맛은 서로의 품질을 보장해 준다. 그의 고향 도시 잘츠부르크에 모차르트 이름을 내건 초콜릿(Mozartkugeln) 회사만 네 군데나 있다. ‘오리지널 잘츠부르크 모차르트쿠겔’ ‘진짜 모차르트쿠겔’ ‘진짜 잘츠부르크 모차르트쿠겔’ ‘잘츠부르크 모차르트쿠겔’ ‘모차르트쿠겔’ 중에서 어느 것이 진짜 원조일까. 조금씩 맛이 다른 이 초콜릿의 제조 비법은 공개되지 않고 있다.

1884년 모차르트 초콜릿을 처음 만든 이는 제과업자 파울 퓌르스트다. 슈타이어마크에서 잘츠부르크로 와 작은 제과점을 낸 게 시초다. 수제 초콜릿을 만들어 유명해진 그는 1905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모차르트 초콜릿’으로 금메달을 수상했다. 1914년 베를린의 잼 공장 파스벤더가 기계로 만든 모차르트 초콜릿을 내놨고 몇몇 독일 회사가 뒤를 이었다. 퓌르스트는 법원에 고소했지만 별 효력이 없었다. 처음 만들었을 때 특허 등록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퓌르스트 제과점은 은박지에 싸서 내는 ‘오리지널 잘츠부르크 모차르트쿠겔’을 가내 수공업으로 소량 생산하고 있다.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을 맞았던 2006년 ‘모차르트 해’에는 무려 200만 개를 팔았다.

예년에 비해 60%의 매출 신장률을 보였다. 하지만 잘츠부르크의 미라벨 등 기계로 만들어 내는 대형 회사와는 수입 면에서 비교가 안 된다. 처음엔 헤이즐럿 누가 크림을 입혔지만 지금은 짙은 초콜릿을 바른다. 1981년 독일과 오스트리아 간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이후 전 세계 면세점과 제과점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다. 2005년 수출된 ‘모차르트쿠겔’은 1억 개. 약 580억원어치다.

모차르트가 먹여 살리는 도시

어디 초콜릿뿐인가. 소시지·맥주잔·손목시계·요구르트·인형·밀크셰이크·머그컵·T셔츠·케이크·와인·맥주·골프공에다 끈을 벗기면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 무지크’가 흘러나오는 브래지어까지 ‘모차르트 상품’은 매우 다양하다.
잘츠부르크에는 아예 모차르트 기념품만 생산 판매하는 ‘모차르트란트’라는 회사가 있다. 잘츠부르크 공항은 ‘모차르트’란 이름을 단 지 꽤 됐다. 근처 스키장 이름도 ‘아마데 스포츠 월드’. 모차르트의 이름인 ‘볼프강 아마데우스’에서 따온 것이다. 2010년 겨울올림픽 유치에 실패했어도 잘츠부르크 시민들은 걱정하지 않는다.

모차르트는 잘츠부르크를 떠나 ‘음악 하기 좋은 도시’ 빈으로 이사 갔지만 그의 고향 사람들을 지금도 먹여 살리고 있기 때문이다. 모차르트의 브랜드 가치는 54억 유로(약 7조원)에 달한다. 필립스·로레알·폴크스바겐·MTV 등 유명 상표보다 더 가치가 높다. 지난해 오스트리아를 방문한 관광객은 120만 명에 달한다.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조반니’ ‘티토왕의 자비’와 교향곡 제38번을 초연했던 체코 프라하도 덩달아 ‘모차르트 도시’에 합류했다. 모차르트 서거 200주기(1991년)에 시작된 ‘모차르트 빅뱅’ 덕분이다. 모차르트를 다룬 전기 영화 중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던 밀로스 포먼 감독의 ‘아마데우스’(1984년)가 잘츠부르크나 빈이 아니라 프라하에서 촬영됐다는 점도 한몫했다. 지금도 프라하를 찾는 관광객들은 18세기 복장을 하고 모차르트의 ‘레퀴엠’ 공연 팸플릿을 나눠 주는 사람을 쉽게 볼 수 있다.

‘성실한 음악 노동자’ 모차르트

모차르트는 1781년 궁정 음악가로 활동하던 잘츠부르크를 떠나 더 큰 ‘음악시장’인 빈으로 진출한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그는 ‘신동’에 불과했다. 아버지 레오폴트는 유럽 순회공연을 다니면서 아들 모차르트의 나이를 서너 살 정도 줄여 말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요즘 ‘고무줄 나이’라고 비난받는 ‘연예인 나이’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모차르트가 ‘천재’로 추앙받기 시작한 것은 낭만주의 시대의 일이다. 1862년 프랑스 작곡가 헥토르 베를리오즈는 “이제 우리는 모차르트를 이해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슈만은 멘델스존을 가리켜 ‘19세기의 모차르트’라고 했다. 괴테는 “모차르트가 (내 작품) ‘파우스트’를 음악화했더라면 얼마나 좋을까”라며 아쉬워했다. 차이콥스키는 처음부터 ‘모차르티안’을 자처했다. 모차르트의 피아노 음악 단편들을 따서 ‘모차르티아나 모음곡’을 작곡하기도 했다.

영화 ‘아마데우스’는 모차르트를 하루 종일 주색잡기에 빠져 있다가 5선지 앞에 앉기만 하면 음표를 쏟아내는 ‘천재’로 묘사한다. 물론 그의 음악은 천부적 재능과 피땀 어린 노력의 결과다. 모차르트는 자신을 ‘성실한 노동자’에 비유했다. 사실 그는 매일 저녁 음악회에 참석했다. 다른 음악가들을 만나고 다른 작곡가들의 작품을 접하면서 최신 정보를 수집했다. 평생 11년의 세월을 연주 여행으로 보냈다. 연주를 하면서 돈을 벌기 위한 것이었지만 프랑스·영국·이탈리아·독일 등 당시로서는 ‘음악 선진국’의 최신 경향을 배우기 위한 ‘유학’이기도 했다. 우리가 떠올리는 모차르트의 이미지가 혹시 낭만주의의 유산은 아닌지, 몇몇 ‘팝 클래식’의 선율에 푹 빠져 그의 작품세계 전반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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