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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사람」 심수봉씨가 밝힌 「10·26 그자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3면

◎김재규 차지철쏘며 “건방져”/술자리 어색해 『사랑해 당신을』 노래중/합수부 “버러지같은 자식” 발표는 허위/녹화현장에 전화 걸려와 곧바로 달려가/김재규·김계원씨 얼굴은 로봇처럼 긴장/전두환씨 조사뒤 “보약 사먹어라” 돈줘
『각하,이 버러지같은 자식을 데리고 정치를 하니 올바로 되겠습니까.』
이 말은 79년 10·26사건때 당시 중앙정보부장이던 김재규가 권총을 발사하기 직전 차지철경호실장을 가리켜 한 말로 알려져 있다. 합동수사본부가 수사결과를 발표하고난 다음부터는 이말이 항간에 유행어처럼 떠돌기도 했었다.
그러나 10일 밤 SBS­TV 『주병진 쇼』에 출연,처음으로 당시의 현장상황을 공개증언하게될 가수 심수봉씨(38·본명 심민경)는 7일 녹화현장에서 이를 전면 부인했다.
『김재규가 권총발사 직전에 내뱉은 말은 「건방져」라는 한마디밖에 없었어요. 박 대통령에게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차지철을 쏜 다음 바로 박 대통령을 쏘았어요.』
심씨가 궁정동으로 불려가게된 것은 79년 10월26일 당시 TBC운형궁 스튜디오의 『쇼쇼쇼』 녹화현장으로 전화가 걸려왔기 때문. 이전에도 두번이나 불려간 적이 있는 심씨는 녹화를 취소하고 곧바로 달려갔다고 했다.
『궁정동에 도착하자마자 차지철경호실장이 전과 마찬가지로 「여기에서 있었던 일은 절대 비밀로 해야한다」는 주의를 주고 술상이 차려져 있는 방으로 안내했어요. 그때 김재규씨와는 두번째,김계원씨와는 첫 대면이었는데 둘다 얼굴이 로봇처럼 굳어 있었어요.』
분위기가 어색해지자 누군가 노래를 부를 것을 제의했다. 심씨가 먼저 『그때 그사람』을 부르고 나머지 사람중에 누군가를 지명해야 하는데 비교적 밝은 표정이었던 차지철쪽으로 손가락이 갈 수밖에 없더라고 했다.
『제목은 기억 안나지만 차지철이 제 다음으로 노래를 하고 미스 신을 지명했어요. 미스 신은 「사랑해 당신을」을 불렀는데 제 기타반주와 음이 맞지 않아 여러번 다시 불렀어요. 이때 「건방져」라는 고함과 함께 총성이 들렸어요.』
심씨는 김재규가 총을 쏘고 곧바로 밖으로 나간 뒤에 차지철이 손에 피를 흘리며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저사람 왜 저래』하며 화장실쪽으로 나가는데 놀랐다.
『박정희대통령도 총을 맞고 나서 미스 신이 「괜찮아요」하고 물었을때 「괜찮아」라고 하는데 그 목소리가 총을 맞은 사람같지 않더라구요. 한참 있다 제가 부축하고 다시 「정말 괜찮아요」라고 물었을때도 「나는 괜찮아」하며 버티시더라고요.』
이후 심씨는 확인사살이 진행되는 동안 미스 신과 함께 다른 방으로 도망가 문을 잠그고 몇시간이나 숨어있었다. 이때 자신은 겁에 질려 숨조차 제대로 쉬기 어려운 상황인데도 미스 신은 『누구누구와 짠 모양이다』『누구누구가 사이가 좋지 않아 사건이 터졌다』며 그 상황에 대해 나름대로 상상력을 펼치며 계속 이야기를 해댔다.
『미스 신의 낙천성에 놀랐지요. 아마 저 혼자 있었다면 기절했을 거예요.』 이 사건이후 심씨는 1주일동안 조사를 받느라 여기저기에 불려다녔다. 이때 『주위에서 누가 물으면 무조건 모른다고 해라』는 전화가 집으로 걸려오곤 했다. 그 전화에서 『지금 전화받는 사람 누구지요』라고 유도질문을 하면 자신은 『몰라요』라고 대답해야 했다.
『조사가 끝났을땐 파김치가 됐어요. 그때 전두환 당시 합동수사본부장이 불러 가보니 금일봉을 주면서 「고생했다. 보약이나 지어먹으라」고 했어요. 1백만원인가를 받았는데 실제로 60만원은 보약을 지어먹었지요.』
심씨는 한창 힘들던 그때 전두환씨가 그렇게 고맙게 느껴질수가 없더라고 했다. 함께 갔던 미스 신은 『무척 자상한 분』이라며 감동할 정도였다는 것. 그러나 자신의 방송출연정지조치가 『그 가수가 나오면 자꾸 국민들이 박 대통령을 떠올린다』는 전씨의 뜻인줄 알고나서는 원망도 많았다.
심씨는 그 사건이후 박 대통령 유가족중 누구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어 섭섭했는데 92년 근영씨가 『도울 일이 없느냐』며 사람을 보내와 감정의 앙금이 풀렸다고 털어놓았다.
지금 결혼해 잘 살고 있는 미스 신과는 10·26직후에는 자주 만났지만 요즘은 뜸한 상태. 79년 당시 그 현장에 있었던 사람중 생존자는 심씨와 미스 신,그리고 김계원 비서실장 셋뿐이다.<남재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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