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40여년 이어온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수영복 특집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중앙SUNDAY 스포츠와 여성미의 결합은 미국 스포츠 문화의 일부다. 미식축구(NFL)나 프로농구(NBA) 중계 예고 화면에는 멋진 여성 치어리더의 율동이 빠지지 않는다. 미국 최고의 판매부수를 자랑하는 스포츠 주간지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이하 SI). 이 잡지는 1년에 한 번 수영복 특집을 발행한다. 당대의 일류 모델들이 여성미의 향연을 벌인다. 노골적인 성 상품화라는 비난을 듣기 십상이다. 하지만 분명히 인기가 있다. 지금 SI의 수영복 특집은 연간 3500만 달러의 광고 수익을 올리고, 매호 6400만 명의 독자를 자랑하는 주간지 시장의 ‘공룡’이다. 모델들의 사진이 담긴 달력과 촬영 뒷얘기를 담은 DVD나 텔레비전 프로그램까지 제작되고 있다. 하지만 그 시작은 보잘것없었다. SI의 수영복 특집(Sports Illustrated Swimsuit Issue)은 1964년 1월 20일에 처음 등장한다. 표지 모델은 베베티 마치였고, 수영복 사진은 겨우 여섯 면에 실렸다. 복싱 매니저 잭 컨스에 대한 기사가 여덟 면에 걸쳐 실린 점을 감안하면 아주 적은 양이었다. SI가 수영복 특집을 기획한 것은 기사거리가 부족해서였다. 1월 말∼2월 초는 미식축구의 수퍼보울이 끝나고 메이저리그가 시작되기 전이었다. NBA와 아이스하키(NHL)의 플레이오프는 4월에나 시작하고, 미 프로골프협회(PGA) 투어의 첫 메이저 대회인 마스터스도 4월에 열렸다. 당시 SI의 편집장 앤드리 라게르는 남는 지면을 눈요깃거리로 메울 생각을 했다. 수영복 차림의 화려한 모델들이 등장한 컬러 페이지들로 스포츠의 ‘춘궁기’에 지루해하는 팬과 독자들의 시선을 끌고자 했다. 라게르는 패션 담당 기자 줄 캠벨을 불러 이렇게 제안했다. “멋진 모델들과 좋은 휴양지에 가서 사진 몇 장 찍어 오지 그래?” 캠벨은 곧 담당 에디터가 되어, 향후 30여 년 동안 수영복 특집의 방향을 잡는 데 큰 역할을 한다. 그녀는 잡지에 실릴 모델들을 직접 면접을 통해 선발했다. 촬영이 끝난 뒤에는 사진 작가들과 회의를 해서 어떤 사진을 표지에 실을지 결정했다. 수영복 특집은 1980년대에 접어들자 인기가 상승했다. 이제 SI의 수영복 특집은 모델들이 스타덤으로 가는 등용문이 됐다. 엘르 멕피어슨·캐시 아일랜드 등 훗날의 일류 모델들이 표지에 등장해 이름을 알렸다. 표지는 아니었지만 신디 크로퍼드와 나오미 캠벨의 사진도 실렸다.

96년까지 스포츠 기사와 함께 실리던 수영복 특집은 이듬해 SI 본지에서 독립한다. 스포츠 기사를 싣는 잡지는 따로 발행했다. 98년부터는 운동선수와 배우자의 사진도 게재됐다. 그해에 웨인 그레츠키(아이스하키)와 안니카 소렌스탐(골프)의 사진이 실렸다. 97년 독일의 테니스 스타 슈테피 그라프, 2003년엔 세레나 윌리엄스(테니스)와 두 차례 올림픽 금메달에 빛나는 피겨스케이팅 스타 예카테리나 고르디에바(러시아)가 지면에 등장했다. 2004, 2005년에는 러시아 테니스 선수 안나 쿠르니코바가 등장해 남성 팬들을 흥분시켰다. 특히 2005년 특집에는 어느 해보다 많은 스포츠 선수가 소개됐다. 한국여자프로농구(WKBL) 삼성생명에서 활약한 호주의 로렌 잭슨을 비롯, 비너스 윌리엄스(테니스)·아만다 비어드(수영)·제니 핀치(소프트볼) 등이 지면을 수놓았다. 지난해에는 마리아 샤라포바가 등장했다. 올해 표지에는 비욘세가 가수로서는 처음으로 수영복 특집의 표지를 장식했다. 이 일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일부 전문 모델들이 “가수가 표지 모델로 등장하는 건 우리에 대한 모욕”이라며 반발한 것이다. 수영복 특집의 역사는 순탄하지 않았다. 초창기에는 “노출이 지나치다”며 많은 독자가 정기구독을 취소했다. 64년 첫 특집이 게재되자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 사는 W 프랭크 캐스턴씨는 “사춘기인 내 아들이 집에서 그런 저속한 사진을 보기를 원치 않는다”는 투고를 했다. 올해 SI는 미국의 학교 도서관과 공공 도서관에 2007년 수영복 특집을 배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너무 노출이 심한 사진이 실린다”는 일부 도서관들의 우려를 감안한 것이다. 이에 대해 미국 도서관협회의 레슬리 버거 회장은 “도서관에 배포되는 출판물에 대한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SI의 일방적 결정은 독자의 선택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성 상품화’ 논란 속에 40년 넘는 세월을 이어온 수영복 특집. 이제는 비난을 담은 편지를 쓰거나 정기구독을 취소하는 독자들은 매년 줄어들고 있다. SI의 수영복 특집은 도서관에서 가장 자주 도난당하는 도서라고 한다. 유지호 기자 jeeho@joongang.co.kr 중앙SUNDAY 구독신청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