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갤브레이스 교수 『불확실성의 시대』|「근대 경제 사상」 알기 쉽게 조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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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갤브레이스 교수의 『불확실성의 시대』는 미국에서 원본이 나온 직후인 78년부터 우리 나라에 번역 소개돼 학자들뿐만 아니라 학생·일반인들 사이에서 널리 읽혔다. 이 책은 하버드대학의 경제학 교수로서 세계적 필명을 떨치고 있던 갤브레이스 교수가 공영방송의 대명사인 영국의 BBC 텔레비전으로부터 1년짜리 특집물의 대본을 써줄 것을 요청 받고 집필했다고 하는 아주 독특한 배경을 갖고 있다.
따라서 아담 스미스에서 케인즈에 이르는 지난 2백년 동안의 주요 경제학자들의 사상을 설명하면서 딱딱한 이론의 소개보다는 경제이론이 현실경제의 흐름, 제도의 변전과 어떻게 연관되어 부침해 왔는가를 생동감 있게 이야기하는데 주안점을 두었다.
이같이 텔레비전용으로 제작됐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문체로 쓰여져 우리 나라에서도 많은 독자들이 이 책을 접할 수 있었다. 책에는 원래 텔레비전 대본답게 1백80장이 넘는 사진이 들어 있어서 읽기에도 지루하지 않고 시각적 교육효과도 있었는데 사정이 있어서 그런지 번역 서에서는 많이 빠졌다.
이 책이 우리사회에 가장 영향을 끼쳤던 점은 아무래도 『불확실성의 시대』 라는 제목에서 엿볼 수 있듯이 불확실성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다.

<후진국 실상도 다뤄>
불확실성은 19세기까지만 해도 세상만사가 그런 대로 인간의 지혜로 이해되던 시대였지만 현대는 모든 것이 불확실한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저자가 직접 이 제목을 붙였다고 한다. 이러한 불확실성의 개념이 우리사회에 전해지면서 이 불확실성이란 말은 우리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하나의 유행어처럼 번졌었다.
이 책에는 아마추어가 읽기에는 다행스럽게도 자질구레한 경제이론은 생략돼 있지만 좌파로는 마르크스·레닌에서 극우파의 허버트 스펜서·월리엄 섬너에 이르기까지 주요 경제이론은 빠짐없이 소개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현실 경제의 움직임, 예컨대 산세기말 미국경제를 휘둘렀던 록펠러·반더빌트 등 벼락부자들이 어떻게 해서 떼돈을 벌었고 풍류적 경제학자 베블렌이 부자들의 생태를 어떻게 조롱했는가 등의 이야기가 소설 같은 흥미를 자아내며 전개된다.
경제학 책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최근 2백년 간의 세계역사와 거기에 나타난 숱한 영웅들과 민중의 이야기라는 것이 오히려 사실에 가까울는지도 모르겠다. 원래 그의 문체는 단순 명료하면서도 도처에 유머와 위트가 번뜩이는 것으로 유명한데 이 책은 더구나 텔레비전 대본용이므로 더욱 물고기가 물을 만난 느낌이다.
뿐만 아니라 거대기업의 문제·후진국의 비참한 실상·빈곤문제·핵 문제에 이르기까지 현대의 주요문제들이 저자의 해박한 지식과 개인적 경험을 곁들여 전개되고 있어 경제학을 공부해 보려는 사람은 물론 사회과학을 하려는 사람들에게 입문서로 많이 읽혔다.
이 책은 이러한 배경과 함께 갤브레이스 교수 자신의 평생경험과 연구업적의 요약이기도하다. 따라서 이론적으로 그의 대표작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의 사상을 가장 종합적으로, 그리고 알기 쉽게 집약한 한 권의 책으로 손꼽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의 이론적 저작인 『풍요한 사회』나 『신 산업 국가』에 비교해 볼 때 뚜렷한 주장이나 이론을 찾을 수는 없는데 그것은 어떤 주장을 펴는 것이 아니라 대중을 계몽하는데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당연한 결과다.
BBC방송이 이 프로그램을 만든 1976년이란 해는 역사적으로 볼 때 미국 독립 2백주년이기도 하고 동시에 근대 경제학의 원조인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이 나온 지 2백년이 되는 해이기도 했다. 아마 추측컨대 2백년에 이르는 근대 경제발전의 한 시대를 마감하면서 그것을 이끌어 온 주요 경제사상을 조명해보는 특집으로 이런 커다란 프로그램이 기획됐고 그 집필의 적임자로서 대서양 건너편의 갤브레이스 교수가 지목됐던 것이다. 사실 이런 역할에 갤브레이스 교수가 뽑힌 것은 그의 이력을 본다면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갤브레이스는 1908년 캐나다의 농가에서 출생하여 처음에는 농학을 공부했지만 나중에 미국으로 건너가 버클리 대학에서 경제학을 연구하고 미국 국적도 얻었다. 버클리 대학은 다 알다시피 60년대 치열한 학생운동의 중심지였지만 갤브레이스가 점은 시절 연구에 몰두하던 30년대에도 역시 미국 급진주의의 본산이었다.
그는 그후 하버드 대학의 경제학교수가 된 뒤 대부분의 인생을 하버드에서 보냈다. 그가 하버드대학을 그만 둔 것은 75년으로서 그 이유는 본인의 말에 의하면 주로 이 책 『불확실성의 시대』를 저술하기 위해 시간을 얻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이것은 그만큼 저자가 이 책에 비중을 두고 있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기존권위 인정 안 해>
그는 평생 급진주의자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보수적인 것은 더더구나 아닌 중도적 진보주의자(리버럴)이면서 기존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우상 파괴적 성향을 보여 왔으며 여기에 그의 독특한 매력이 있다고 생각된다.
그는 젊을 때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을 찬성한 이래 평생 민주당을 지지해 왔으며 케네디 행정부에서 인도대사를 지낸 것도 하버드에서 케네디와 만났다는 인연 이외에 이런 오랜 배경이 있다.
군자부기라고 하듯이 정통파 경제학자도 아니고 마르크스주의자도 아닌 갤브레이스를 어느 학파라는 좁은 틀에 분류하기란 쉽지 않지만 아마 베블렌유의 제도학파 경제학자라고 보면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 같다. 이는 경제학계에서는 아주 소수파에 속하지만 그래도 브레이스는 미국 경제학 회장을 지냈고 주옥같은 명저로 세계적 명성을 얻게 됐는데 그것은 그가 순수이론에만 집착하는 말하자면 노벨 경제학상을 타는 그런 부류의 경제학자가 아니고 현실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경륜가적 학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사실 경제학자라고 부르기에는 비좁은 느낌이 들 정도다. 어떻게 보면 사회학자 같기도 하고 보다 넓게는 사회과학자 같기도 하다. 이런 경제학자는 스미스·마르크스·슘페터 등 그야말로 1세기에 한두 명 날까말까할 정도로 회귀하고도 소중한 존재다. 과연 갤브 레이스가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의 거장인가는 의문스럽지만 어쨌든 그는 20세기에 큰 자취를 남긴 석학임에 틀림없고 『불확실성의 시대』가 나온 지 꽤나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읽을만한 명저로 꼽힐 수 있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된다.
끝으로 갤브레이스에 관하시작은 에피소드를 두어가지 소개하기로 하자. 필자가 하버드에 경제학을 공부하러 갔을 때(78년), 갈브레이드는 이미 하버드를 떠나고 없었다. 그는 학교를 떠나면서 경제학과에 5천달러를 기부했는데 그것은 5백달러씩 쪼개어 매년 경제학과에서 강의를 제일 잘하는 교수에게 상금으로 주어지고 있었다. 그 취지는 하버드의 교수들이 연구와 워싱턴 행에만 열심이고 강의에 소홀하다는 생각에서였다고 한다.
갤브레이스 상이란 이름이 불은 이 상은 대학원생들이 매년 투표로 결정했는데 70여명의 경제학 교수 중에서 이 상을 받는다는 것은 적은 상금에도 불구하고 대단한 영광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뛰어난 유머감각도>
그는 유머에도 뛰어난 감각을 지녔었는데 하버드 퇴임 때 고별연설에서 그는 늙는다는 것의 유일한 장점은 점은 여성에게 접근해도 의심을 방지 않는 것이라는 농담으로 만장의 박수갈채를 받았다는 에피소드가 전해진다. 그는 학교를 떠난 뒤 집필에 전념하는 탓인지 학교에 거의 얼굴을 비치지 않았지만 한번은 세미나 발표를 위해 2m 가까운 장신을 드러냈다. 이 날의 발표내용은 학술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자신의 경험과 비전에 관한 것이었는데 여기서도 그는 예의 유머감각을 수시로 발휘했다.
『나는 평생 수많은 사장들을 만나본 결과 재미있는 공통점을 발견했다. 그것은 그들의 성격이 자기 회사제품과 아주 비슷하다는 것이다. 강철 회사 사장은 강철처럼 딱딱하고 비누회사 사장은 비누처럼 매끄럽다.』 이정우<경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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