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사학자 남편의 「6·25일기」 발간|고 김성칠 저 『역사 앞에서』낸 이화 대 교수 이남덕 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통일은 우리가 넘어야 할 또 하나의 고비입니다. 이제 6·25를 정리할 때가 된 것 같고 이를 겪지 않은 후손들에게 체험을 나누어주어야 할 때가 된 것 같아요.』
이남덕 전 이화여대 교수(73·국문학)가 40여 년 전 사별한 사학자남편 김성칠씨의 일기를 엮어 최근 『역사 앞에서-한 사학자의 6·25일기』라는 책으로 펴냈다.
경성제대를 졸업하고 작고 당시 서울대 사학과 조교수였던 고인이 해방직후(45년 12월∼46년4월)와 6·25전후(50년1월∼12월, 51년 3, 4월)에 「역사기록의 사명감을 갖고」 작성한 듯한 일기의 모음집은 40여년전 우리민족이 겪었던 6·25의 실상을 생생하게 전달, 사료로서의 가치가 돋보인다는 평.
저자인 고인은 선친의 제사를 모시기 위해 경북영천에 내려갔다가 괴한의 저격을 받아 51년 10월, 서른 여덟 살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짧은 생애를 살면서도 저서로 『조선역사』 『동양사개설』을, 역서로는 펄벅의『대지』, 강용흘의 『초당』 박지원의 『열하일기』(5권), 『주해 용비어천가』(2권) 등을 내놓는 등 의식 있는 학자로 왕성한 집필활동을 해왔다. 이 일기 집에는 6·25당시의 치열한 시가전과 미군에 의한 소탕전, 인민군 유격대의 기습으로 벌어진 마을 한복판에서의 전투, 폐허가 된 서울의 모습, 많은 세월에 영고성쇠를 두루 겪는 이웃의 이야기 등이 눈앞에 보이듯 생생하게 묘사되어있다.
특히 전쟁당시 치열하게 대립했던 좌·우 어느 편에도 서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중도주의 입장에서 바로 서 보려는 지식인의 고뇌가 전편에 서려있다.
독자의 한사람인 신경림씨(시인)는 『이 일기는 우리의 머리 속에 잘못 입력된 6·25전후사는 말할 것도 없고 우리가 관념적으로만 알고있는 해방공간의 사회사를 바로 아는데 더 없이 좋은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라고 평했다..
『그 사람은 누구에게나 지극한 정성을 갖고 대하는 지성스런 사람이었다』고 남편을 회상하는 이씨는 『내가 남편을 잃은 고통은 우리겨레가 빠짐없이 겪은 고통과 같으며 나라형편이 어려운 마당에 나까지 주저앉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살아 왔다』고 했다.
이씨가 40여 년이 지난 지금 갑자기 일기를 출간하게 된 것은 『이제 역사를 바로 보고 일기에 담은 내용을 수용할 수 있는 분위기가 정착되는 것 같아서』라고 했다.
그는 또 『이 일기의 발간이 새삼스레 상처를 건드리는 행위로 받아들여질지 모르나 의식의 성숙을 이룩하려면 전쟁이라는 인간행동에 대한 깊은 근원적 성찰이 가해져야하고 그 고통을 철저히 극복해야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씨는 경성제대에서 조선어문학을 전공하면서 고인과 학문적 교류로 만나게됐으며 남편을 잃을 당시 3남과 유복녀가 있었다.
남편과의 사별 후 그는 동아대·숙명여대를 거쳐 58년 이후 이화여대에 재직하다 86년 정년 퇴직했다. <고혜봉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