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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대통령 5년(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노태우대통령이 이끈 6공 1기정부의 5년이 24일로 역사의 장으로 넘어간다. 우리는 노 대통령의 퇴임에서 비로소 헌정사도 처음으로 직선대통령간의 정권교대라는 장면을 보게됨으로써 시련으로 가득찬 우리 헌정사도 이젠 정상궤도에 들어선다는 실감을 하게 된다.
88∼93년의 노태우시대는 권위주의에서 민주주의로 가는 과도기였다. 물꼬가 터진 민주화의 물결이 도도히 흘러간 반면 제도와 관행과 국민의식속에는 권위주의적 요소가 그대로 잔존해 있었다. 새로운 민주화의 대세와 오랜 권위주의의 요소가 대립·갈등·충돌하는 격랑위에서 노 정권이란 배가 이쪽 저쪽으로 흔들린 것은 불가피한 일이었다.
노 정권은 민주화를 최대의 과제로 내걸고서도 민주화프로그램과 주도세력을 갖지 못한 것은 지적돼야 할 문제점이었지만 소극적·방임적 자세로나마 민주화를 수용하려했다는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민주화의 분출과정에서 질서가 무너지고 치안이 흔들리고 경제가 내려앉는 현상이 오자 옛날방식의 강압적 대응을 정부에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노 정권은 그렇게 할 의지도 능력도 보이지 않았다. 이에 따라 노 정권이 임기중 줄곧 지도력 시비에 휘말린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의 임기중 우리사회의 민주화·자율화가 크게 신장한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다.
민주화에 따른 일정한 대가는 피할 수 없는 것이지만 지난 5년간 우리가 치른 대가가 적정했느냐에는 이론이 많을 것이다. 노 대통령 스스로는 그런 속에서도 지속적인 고성장·외채감소 등으로 안정성장의 기반을 이룩했다고 말하지만 국제수지 흑자의 적자 반전이나 교육·교통·환경 등의 심각한 악화현상은 우리가 지나치게 비싼 대가를 지불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다시 말해 노 정부의 국가경영능력의 한계를 느끼게 하는 것이다. 특히 경제의 국제경쟁력을 유지·강화하지 못한데 따른 지적은 나올 수 밖에 없다.
임기중 공산권이 붕괴되고 냉전체제가 해체된 것은 노 정권으로서는 행운이었다. 국제적 조류를 능동적으로 활용한 이른바 북방외교는 분명 노 정권이 이룩한 돋보이는 업적이다. 비록 국익차원에서 완급의 조정이나 시기선택에 있어 문제제기가 없는 것은 아니나 임기중 소련·중국과 수교하고 남북대화를 확대한 것은 크게 평가할 일이다.
또 임기말 대선을 앞두고 스스로 집권당을 탈당,선거관리중립내각을 구성한 것도 대통령제의 원칙과 책임면에서는 문제가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비교적 공정한 선거와 다음정부의 정통성 강화에 크게 기여했다.
원래 한 정권의 평가는 후대의 일이다. 이 시점의 왈가왈부는 사람과 입장에 따라 다를 수 밖에 없다. 노 대통령은 이제 평소 말해온대로 보통사람으로 돌아간다. 우리는 지금껏 퇴임후를 걱정하지 않아도 좋은 대통령을 가져본 적이 없는데 25일부터 노 대통령이 바로 그런 첫 인물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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