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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모 커지는 남북한 교역-「내국거래」인정 묘안 아쉽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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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앞으로 남북교역이 크게 늘어나면 국제사회에서 남북간 거래를 내국간 거래로 인정받는 문제가 주요 관심사로 등장할 전망이다.
지금 당장은 남북한 교역규모가 그리 크지 않아 남북한 교역이 국제무역 질서 속에서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남북한 교역이 급증할 경우 통상문제로 대두될 공산이 크다.
주변국가들이 남북한간 교역에 있어 관세를 매기지 않는 것을 문제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즉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제1조에는 「최혜국대우 원칙」이라 하여 수출입과 관련해 일방체약국이 다른 나라에 부여하는 모든 특혜는 다른 모든 나라의 동종상품에 대해서도 즉시, 무조건적으로 부여하도록 돼있는데 왜 북한에만 특혜를 주느냐고 따질 수 있다.
91년7월 이뤄진 남북한 쌀 직거래에 대해 미 행정부가 자국 농민들의 보호를 위해 남북한교역에 대한 국제법상의 승인획득을 요청한 것은 이 같은 조짐의 신호탄이라 할 수 있다.
이 문제에 대한 정부의 입장은 언젠가는 풀어야 할 중요한 과제이긴 하지만 현 시점에서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섣불리 이 문제를 거론했다가는 현재 진행중인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에 악영향을 끼칠 뿐이라는 판단에서다.
따라서 정부는 시간적 여유를 갖고 남북한이 서로간의 교역이 민족내부 거래라는 합의를 도출한 다음 공동 대처해 나간다는 시나리오를 갖고있다.
그러나 문제는 과거 동서독이 그랬던 것처럼 국제사회에서 남북교역이 내국간 거래로 쉽사리 인정받을 수 없다는 점이다.
동서독이 내국간 거래로 인정받은 2차 대전 직후만 하더라도 서독경제는 그렇게 대단하지 못했고 경제문제가 세계를 지배하는 상황도 아니었다.
무서운 경제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지금은 이해 당사국들이 호락호락 남북간교역을 민족내부거래로 너그럽게 봐주지 않으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남북교역에 있어 관세를 매기지 않는 관행을 국제적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GATT의 웨이버(WAIVER) 승인을 받아야만 한다는게 관련 국가들의 주장이다.
웨이버 조항이란 「GATT협정에 별도로 규정되지 않은 예외적 상황하에서 체약국단은 본 조항의 규정에 따라 GATT 체약국에 부과되고 있는 의무를 면제시킬 수 있으며, 단 이 결정은 총체약국의 절반 이상이 참석한 투표에서 3분의2이상 찬성에 의한다」고 명시한 것을 말한다.
그런데 문제는 웨이버 승인을 받더라도 남북교역이 독자성을 유지하면서 국제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웨이버 승인 자체가 한시적이어서 내국간 거래로 두고두고 인정받을 수 있는 방패막이는 될 수 없다.
또 웨이버 신청 자체가 GATT상의 의무를 지킨다는 전제아래 남북교역은 국제교역이지만 예외를 인정해 달라는 요청이기 때문에 우리 자신이 남북교역을 국제교역으로 인정하고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는 잘못을 범하게 된다.
이와 관련, 대한무역진흥공사 북방교역과의 조은호씨는 『남북교역을 자칫 GATT체제 내에서 웨이버 획득으로 인정받겠다는 것 자체가 남북교역의 국제성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섣부른 외교적 시도는 오히려 스스로 만든 몇에 걸려들 수 있다』며 『앞으로 남북기본합의서·부속합의서 등의 입법적·행정적 사후 조치를 통해 안정적인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고 말했다. 현재 정부가 남북간 교역을 민족 내부간 거래로 인정받기 위한 묘안을 갖고있는 것은 아니다.
남북한이 민족내부간 거래로 인정받기 위한 구체적인 문제부터 합의해놓은 다음 다른 나라들에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강조하는 외교활동을 펴나간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남북한은 작년2월 발효된 남북기본합의서와 제8차 남북고위급회담(92년9월17∼19일)에서 체결된 남북합의서 이행을 위한 부속합의서에서 남북교역이 국제교역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
이 합의서에서는 똑같이 남북한을 정식 국명인 「대한민국」「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은 물론 「남한」「북한」으로도 표현하지 않고 남측, 북측이라고만 언급했다.
따라서 GATT에 남북한은 하나의 국가요, 남북한교역도 민족내부간 거래라는 주장을 필 수 있는 근거가 어느 정도 마련된 셈이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남북교역에 끝까지 관세를 매기지 않는 것은 불가능한 만큼 유럽공동체(EC)시장처럼 경제공동체를 구성했을 때 적용하는 수순을 밟아 관세를 적게 매기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아무튼 현 단계에서 보다 중요한 일은 남북한 관계의 특수성을 주장하기 위해 민족적·역사적 동질성을 내세우고 분단의 책임문제 등을 증명할 수 있는 자료를 체계적으로 모으는 일이다. <박의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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