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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도, 결혼도 놓칠 수 없어”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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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호 11면

“폐백 음식 잘 도착했대요? 입구에서 손님은 누가 맞이하죠? 엄마, 저기 체크 양복 입은 이랑 투피스 여자분은 따로 오신 분들이거든요. 테이블에서 같이 식사할 수 있게 챙겨주세요.”
결혼식 날 나는 튀는 신부였다. 신부대기실에서도 휴대전화를 놓지 않고, 웨딩업체 직원들과 가족을 통솔했다. 도우미들이 “무슨 신부가 하나도 안 떨어”라며 칭찬할(?) 정도였다. 하기야 평소 오지랖이 그날이라고 어디 가랴.

현장을 뛴다-임효영(음악 매니지먼트)

내 결혼식은 지난해 10월 28일. 다음 날인 29일엔 내가 매니지먼트하는 아티스트 양방언과 국내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이 있었다. 결혼식 준비기간 내내 두 사안이 머릿속에서 함께 움직였다. 사전에 철저히 스케줄을 정리하지 않으면, 단 한 번인 결혼식에 신부가 참석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질지 모를 일이었다.
머리 반쪽은 공연 진행을, 나머지 반쪽은 결혼식 진행을 체크하면서 맞이한 결혼식 당일. 신부 마사지는커녕 뜬눈으로 밤을 새운 채 오전 일찍 예식장 가까운 호텔에 전 식구를 모이게 했다. 친한 코디네이터를 불러 어머니·동생·신랑, 그리고 내 메이크업까지 일사불란하게 해치웠다.

“그래, 결혼식이 끝났구나. 내일은 공연이다!” 식이 끝나자마자 밀려든 생각이었다. 신혼여행은 스케줄에 있지도 않았다. 바로 공연장 근처 호텔로 뛰어갔다. 아티스트를 같은 호텔에 묵게 하고, 수시로 공연 진행을 체크하면서 신혼 첫날밤을 보냈다. 다음 날, 공연사진을 찍기로 한 신랑을 동반해 (신랑은 평소 부업으로 사진을 찍는다) 세 사람은 다정히 공연장으로 향했다. 신혼여행은 그로부터 한 달 뒤에나 갈 수 있었다. 일본 출장을 겸해서.

내가 하는 일은 음반ㆍ공연ㆍ영화ㆍ드라마 등의 음악기획과 제작, 저작권관리 등 전반적인 뮤직 비즈니스다. 갖은 경우의 수를 생각하여, 최악을 대비하고 최적의 상태로 진행될 수 있게 아티스트와 회사, 그리고 클라이언트의 요구를 조율한다.
보통 공휴일·명절·휴가철·연말연시 등 남들이 쉬는 때가 공연이 집중되는 시기라 평범한 휴일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무엇보다 섬세한 감정의 소유자인 아티스트의 컨디션을 최적으로 유지하는 게 최우선이다. 아무리 내 결혼식이라도 뒷전일 수밖에 없다.

어릴 때 난 뮤지션을 꿈꾸었다. 음대에 가고 싶었지만 갑작스러운 사업 실패의 쇼크로 아버님이 돌아가시면서 일반학과로 진학했다. 도피처로 찾아간 음악서클을 통해 아마추어 밴드활동을 했고, ‘휴학하고 심각하게 음악을 해볼까’ 고민도 했다. 하지만 결국 ‘좋아하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은 다르다’고 판단했고, 대신 음악하는 사람이 잘할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 되자고 결심했다.
그때 양방언씨를 만났다. 대학교 4학년 때 인턴으로 취직한 일본 매니지먼트 회사에서 처음 담당한 아티스트였다. 한국 음악업계에 서로가 첫발을 내딛는 초심자로서 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업무뿐만 아니라 사고방식에 있어서도 배울 점이 많은 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좋은 아티스트를 도와 한 단계씩 서로 성장해가는 것은 보람차고 즐거운 일이다. 앞으로 더 좋은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나고 싶다. 음악을 하고 싶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잘할 수 있게 돕는 것, 그게 내 결혼생활만큼(어쩌면 그 이상) 중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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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효영씨는 양방언·이루마·유키 구라모토 등 연주음악 아티스트의 매니지먼트와 공연음반 제작 등을 담당했고, 현재는 매니지먼트사 ‘엔돌프 뮤직’팀장으로서 뮤직 비즈니스 업무를 총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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