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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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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호 04면

영국 공포영화의 걸작 ‘디센트’
인간의 심연, 그 어둠을 향해 하강하다

호러 영화ㆍ소설ㆍ만화ㆍ게임ㆍDVD와 함께하는 공포의 하룻밤

요즘엔 여름마다 한국 공포영화가 몇 편씩 개봉된다. 날이 더워지면 오싹한 공포영화 하나 보러 가는 게 유행이 됐다. 하지만 ‘장화, 홍련’ 이후 재미있는 한국 공포영화를 본 기억이 없다. 관객이 많이 든 것은 아니더라도 ‘소름’이나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 같은 걸작 공포영화, ‘여고괴담’처럼 많은 사람에게 화제가 되고 사랑도 받는 공포영화는 어디론가 자취를 감춰버렸다. 대신 시도 때도 없이 귀신이 튀어나와 깜짝 놀라게 하거나, 기괴한 효과음으로 신경을 긁어대는 등 오로지 ‘깜짝 효과’에만 기대는 공포영화만 즐비했다. 일부러 잔인한 장면만 나열하는 공포영화도 짜증난다.
한국 공포영화를 보고 있으면 우울해지는 한편, 대체 공포란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머릿속에 남아 있는 수많은 공포영화의 명작이 떠오른다. ‘엑소시스트’ ‘오멘’ ‘나이트메어’ ‘텍사스 대학살’ ‘이블 데드’ ‘데드 얼라이브’…. 공포영화는 단지 무서운 것이 아니다. 공포는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무엇, 그러나 뛰어넘어야만 하는 그 무엇이다. 태곳적에 인간이 무서워했던 것은 어둠이었고, 어둠을 이겨내기 위한 불을 찾으면서 문명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빛을 발견한 후에도 어둠의 원초적인 공포는 인간의 유전자에 각인되어 있었고, 수많은 민담과 설화 속에서 이빨을 드러낸다. 현대 사회에서도 ‘도시 전설’로서 여전히 공포는 상존하고 있다. 공포영화의 걸작이라면, 원초적인 두려움과 떨림을 보여주어야만 한다. 아니 걸작이 아니어도 좋다. 그저 우리가 두려워하는 무엇인가를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공포영화의 새로운 희망
한국 공포영화는 정신을 못 차리고 있고, 일본 공포도 침체기에 들어갔다. 할리우드 공포는 익숙한 공식만을 답습하고 있다. 서구에서는 이미 주류에 올라선 공포영화의 새로운 빛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그곳은 바로 최초의 연쇄 살인범이라고 할 ‘잭 더 리퍼’의 고향인 ‘음울한’ 나라 영국이다. 한때 해머영화사에서 만든 ‘드라큘라’ 등으로 공포영화의 전성기를 누렸던 영국은 최근 들어 ‘28일 후’ ‘독 솔져’ ‘크립’ 등 전통적이면서도 독창적인 저예산 공포영화를 잇따라 선보이고 있다. 그중에서 ‘독 솔져’를 만들었던 닉 마셜 감독의 2005년작 ‘디센트’는 충분히 걸작이라고 부를 만한 가치가 있는 공포영화다.
공포영화는 사실 단순한 것이다. 복잡하게 장치를 만든다고, 엽기적인 장면을 나열한다고 섬뜩해지는 게 아니다. ‘디센트’는 아주 단순하게, 폐쇄 공간인 동굴 속에 여성을 몰아넣고 동굴에 사는 외부의 괴물을 이용해 내부에 자리 잡은 자신의 악몽을 자극하면서 극단의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교통사고를 당해 남편과 아이를 잃은 사라를 위해, 평소에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던 친구들이 동굴 탐사를 계획한다. 리더인 주노는 모험을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아무도 들어간 적이 없는 동굴을 택한다. 그런데 낙반 사고가 일어나며 들어온 길이 막혀버리고, 동굴 속에 살고 있는 이상한 괴물들의 습격을 받게 된다.
‘디센트’는 공포영화의 익숙한 소재를 탁월하게 엮어낸다. 불을 끄면 완벽한 어둠이 내려앉는 지하 동굴은 관객에게까지 폐쇄공포를 불러일으킨다. 절대적인 위기상황에 처한 6명의 여성은 서로 의심하거나 배신을 한다. 앞이 보이지 않지만 박쥐처럼 음향으로 먹잇감을 사냥하는 괴물과 여인들의 사투는 정말 처절하다. 더구나 주인공 사라는 교통사고에서 혼자 살아남았다는 자책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한다. 닉 마셜 감독은 공포를 위해 ‘효과’에 의존하지 않는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인물의 관계를 만들고, 그들의 복잡하고 사나운 내면을 서서히 드러내고 마침내 폭발하게 만든다. 괴물의 습격은 서로간의 갈등을 증폭시키는 장치고, 스펙터클을 보여주는 도구일 뿐이다.

진정 두려운 존재는 ‘내 안의 야수’
갇힌 동굴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와는 전혀 다른 곳이다. 그곳을 지배하는 법칙은 ‘생존’이다. 리얼리티 쇼 ‘서바이버’에서 참가자는 살아남기 위해 온갖 방법을 쓴다. 단지 육체와 기지만이 아니라 음모와 사기, 협잡까지도 가리지 않는다. 생존을 위해서는 그 무엇이든 정당화될 수 있다. ‘디센트’의 그녀들도 다르지 않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희생도 감수한다. 물론 노골적이지는 않다. 그냥 못 본 척하고 도망칠 뿐이다. 하지만 그것을 누군가 본다면? 나의 비겁함, 야비함을 누가 본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공포일 것이다. 내가 감추고 싶었던 무언가를, 누군가가 정면으로 바라보았다면. 진짜 무서운 것이 사람이라고 말했을 때의 의미는 바로 그것이다. ‘누가 나를 죽일지도 몰라’ 같은 단순한 공포가 아니라 우리 안에 숨겨져 있던 본능 혹은 야수성이나 사악함이 드러났을 때의 공포를 말하는 것이다.
‘디센트’는 아주 영리한 영화다. 괴물이 습격하고, 평범한 여섯 명의 친구가 여성 전사가 되어 괴물과 사투를 벌이는 순간의 장면은 잔인하면서도 상쾌하다. 마치 ‘프레데터’의 여성판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런 ‘눈요기 장면’ 에서는 관객에게 확실히 봉사한다. 그러면서도 결코 공포영화 본연의 자세를 잃지 않는다. 마음의 공포, 심연의 공포를 처절하게 파고들어간다. ‘디센트’는 제목 그대로 인간의 심연 그 아래로 하강하는 영화다. 그리고 너무나도 반전이 흔해진 요즘, 진짜 반전이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마지막 장면이 기다리고 있다. 누구나 안도하는 바로 그 순간, 모든 것을 악몽으로 되돌려 놓는 마지막 장면을 보았을 때, 누구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디센트’는 결코 놓쳐서는 안 될 최고의 공포영화다.

개봉 앞둔 한국 공포영화
낯선 공간, 오래된 원한

올 여름 한국 공포영화는 무덤이나 흉가 대신 병원의 복도를 헤매고 있다. 해부용 시신과 포르말린 병에 담긴 생체 표본이 늘어선 병원은 살아있는 자가 죽음을 가장 가깝게 느낄 수 있는 공간.
‘해부학 교실’은 ‘해부학 실습실에 갇힌 의대생’이라는 도시 괴담을 차가운 색조의 공포로 되살린 영화다. 선화와 중석, 기범 등은 첫 번째 해부학 실습을 기다리고 있는 의대생이다. 젊고 아름다운 시신을 배정받은 선화와 친구들은 이상한 환영에 시달리기 시작하고, 팀원이었던 은주가 실습실에 갇혔다는 메시지만 남긴 채 심장이 사라진 시체로 발견된다. 칠판을 긁는 것 같은 소음이나 잔인한 묘사에 매달리기보다 드라마와 분위기로 공포를 끌어내려는 영화다.
인기 TV 드라마 ‘하얀 거탑’의 김명민이 다시 외과의사로 출연하는 ‘리턴’은 ‘수술 중 각성’이라는 낯선 소재를 선택했다. ‘수술 중 각성’은 수술을 받던 환자가 마취에서 깨어나 자신의 몸이 파헤쳐지는 광경을 목도하고, 그 고통마저 생생하게 느끼는 현상. 이십 년 전 이 현상을 경험한 소년 상우는 충격을 이기지 못해 한 아이를 살해하고 정신병원에 보내진다. 세월이 흐르고 사건이 잊혔을 즈음, 외과의사 류재우는 자신이 집도하던 수술 도중 아내를 잃고 만다. 의문의 사건은 계속되고 류재우는 상우가 정체를 감춘 채 다시 나타났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병원을 무대로 한 마지막 공포영화는 ‘기담’이다. 1942년 경성의 서양식 병원이 배경인 ‘기담’은 금속성 질감과 순백색으로 그려지는 현대 병원과는 다르게 그 자체로 흉가처럼 느껴지는 병원을 창조해 음산한 느낌을 준다. 병원장 딸과 정혼한 사이인 실습생 정남은 한쪽 다리를 저는 천재 의사 수인을 숭배한다. 그들이 일하는 병원에 자살한 여고생의 시신과 교통사고를 당한 어린 소녀가 차례로 실려오면서 이상한 사건들이 이어지기 시작한다.
낯선 공간으로 떠났다는 점은 ‘므이’도 마찬가지다. ‘므이’는 이미 ‘알포인트’가 한번 거쳐갔던 베트남에서 아름다운 여인의 초상화와 얽힌 괴담을 들려준다. 작품 소재를 찾고 있던 소설가 윤희는 오랫동안 소식이 끊겼던 친구 서연으로부터 흥미로운 이야기를 듣는다. 자신이 살고 있는 베트남에는 여인 ‘므이’의 초상화와 관련된 비밀이 100여 년 전부터 전해 내려오고 있다는 것. 베트남으로 떠난 윤희는 ‘므이’의 비밀에 다가갈수록 불길한 사건과 맞닥뜨리게 되지만, 그녀의 집착은 점점 심해지기만 한다.
강경옥의 동명만화가 원작인 ‘두 사람이다’도 오래된 비밀을 간직한 전설을 담고 있다. 어느 조상이 이무기를 죽인 다음 그 후손들은 1대에 한 명이, 가장 가까운 두 사람에게 살해당하는 저주를 받게 된다. 근심걱정 없이 행복하게 살던 여고생 가인은 이번이 자기 차례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누구도 믿어서는 안 되는 상황에 던져진 가인은 살인자가 될 운명을 타고난 두 사람이 누구인지 밝혀내야만 한다.
김현정 객원기자

호러소설
보이지 않는 공포가 다가온다

공포영화와 공포소설, 어느 쪽이 더 무서울까? 영화는 시각적으로 모든 것을 보여주지만, 소설은 상상력으로 승부한다. 영화 ‘링’이 보이지 않는 공포로 걸작 반열에 오른 것처럼 때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두려움이 더욱 소름 끼친다.
스티븐 킹이 공포소설의 대가로 인정받는 것 역시 상상력의 힘이다. ‘셀’(스티븐 킹 지음, 황금가지 펴냄)은 이미 영화에서 익숙한 좀비물이다. 휴대전화에서 나온 전자파가 인간의 뇌를 파괴하고 좀비처럼 만들어버린다. 평범한 이웃이 순식간에 살육을 일삼는 괴물로 변해버리자 세계는 종말로 치닫고, 오로지 생존만이 유일한 목적이 되어버린다. 스티븐 킹은 ‘셀’을 영화적인 스타일로 전개한다. 소설이 시작되자마자 나오는 좀비의 살육장면은 공포영화의 오프닝에 견줄 수 있을 만큼 시각적으로 생생하게 재현된다. ‘셀’을 걸작이라 말하긴 힘들지만, 소설의 시각적 재현이 어디까지 왔는지를 거장의 필력으로 느끼게 한다.
하지만 소설의 힘은 역시 영화에서 결코 보여줄 수 없는 ‘글’의 힘에 있다. ‘망량의 상자’(교고쿠 나쓰히코 지음, 손안의 책 펴냄)는 요괴물과 본격 추리물에 사변소설이 더해진 것 같은 기괴한 공포소설이다. 1950년대의 도쿄에서 기묘한 사건이 연이어 일어난다. 한 소녀가 역으로 들어오는 전철에 뛰어들어 중상을 입는다. 얼마 후 도쿄 근교에서 한 여자의 잘린 팔과 다리가 발견된다. ‘망량의 상자’는 ‘우부메의 여름’으로 시작된 ‘교고쿠도’ 시리즈의 두 번째 책이다. 소설가 세키구치가 과거를 볼 수 있는 능력을 지닌 탐정 에노키즈, 신사의 신관이면서 고서점 ‘교고쿠도’를 경영하는 추젠지와 함께 도저히 현실의 사건이라고는 볼 수 없는 괴상한 사건들을 풀어나간다. 교고쿠도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프로이트에서 일본의 전통 요괴까지 동과 서를 종횡무진하며 펼쳐지는 갖가지 이론과 세계관 그리고 논리적인 추리가 ‘읽는’ 재미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분위기로 승부한다면, 역시 이세계(異世界)가 제격이다. ‘야시’(쓰네카와 고타로 지음, 노블마인 펴냄)는 독자를 낯선 이계의 공간으로 끌어들인다. ‘일단 발을 들이면 뭔가를 사지 않고는 벗어날 수 없는’ 밤의 공간 야시(夜市), 이 세계와 맞닿아 있지만 시간의 흐름이 전혀 다른 백귀야행의 거리. ‘야시’의 이세계는 우리들의 상식으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곳이다. 하지만 그곳은, 우리가 현실에서 이루거나 경험할 수 없는 오욕칠정의 극한이 일상처럼 펼쳐지는 공간이다. 그 낯섦이 또 하나의 두려움으로 소름을 돋게 한다.
요즘엔 공포가 일상의 양념처럼 존재한다. 그것은 우리의 일상이 사실 공포로 점철되어 있음을 은유한다. ‘차가운 학교의 시간은 멈춘다’(쓰지무라 미즈키 지음, 손안의 책 펴냄)는 학교라는 공간의 폭력과 공포를, 청춘물과 판타지를 엮어 풀어놓는다. 시간이 멈춘 학교 안에 갇힌 8명의 학생은 자신 중의 한 명이 이미 자살한 아이임을 알게 된다. 이런 괴담은 도시 곳곳에서 떠돌고 있다. 과거의 민담과 설화가 이제 도시 괴담으로 우리를 자극하는 것이다.
글 김봉석(영화평론가)

호러 DVD
살인자들과 벌이는 고문과 살육 게임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인간이다. 최근 몇 년 사이 공포 영화 팬에게 유난히 주목을 받고 인기를 끈 영화는 모두 인간 내면에 도사린 어두운 마성(魔性)이 저지르는 잔혹한 사건을 소재로 했다. 이 영화들이 차용하는 테마는 두 가지다. 하나는 여행길에서 만난 낯선 사람으로부터 야기되는 공포고, 또 하나는 제한된 공간 속에 사람을 밀어넣고 게임을 벌이듯이 진행하는, 철저하게 계획된 고문이다.
각 테마에 맞추어 DVD 타이틀로 만날 수 있는 공포 영화를 추천한다. 그레그 맥린 감독의 ‘울프 크릭’은 광활한 호주 대륙을 여행하는 젊은 배낭족들이 친절을 가장해 접근한 연쇄살인마로 인해 겪는 지옥 같은 시간을 그린 작품이다. 버려진 광산에서 일어나는 살육 행위는 생생한 폭력묘사로 섬뜩한 공포를 자아내며, 특히 이유불명의 살인이 전달하는 불쾌함이 작품 전체를 지배하고 있어, 호주 공포 영화의 저력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토비 후퍼의 전설적인 동명 공포 영화를 리메이크한 ‘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은 ‘울프 크릭’에 결정적 영향을 준 작품이다. 황량한 텍사스의 한 마을을 지나던 젊은이들이 가족 구성원 모두가 살인마인 레더페이스를 만나 살해당하는 과정을, 오리지널과는 다르게 박진감 넘치는 오락 영화로 만들어 변화를 준 것이 특징이다. 특히 DVD 타이틀에 수록된 부가 영상은 주목할 만하다. 영화에 영감을 준 희대의 연쇄살인마 ‘에드 게인’에 관한 다큐멘터리는 당시 참혹했던 사건 현장의 스틸 사진과 해설을 통해 영화보다 더 무서운 체험을 가능케 한다.
저예산의 한계를 극복한 참신한 아이디어로 찬사를 받았던 ‘쏘우’ 시리즈는 다양한 방법으로 사람을 고문하면서 ‘호스텔’ ‘하우스 9’ ‘4.4.4’ 등의 작품에 영향을 끼쳤다. 이 시리즈의 DVD 타이틀은 극장 개봉작보다 한층 업그레이드된 디렉터스 컷 버전(감독판)으로 관심을 끈다. 부가 영상으로는 영화 속에서 납치된 이들을 고통과 죽음으로 몰아간 각종 고문도구들의 제작 과정과 친절한 해설을 수록했다.
글 김종철(‘익스트림무비’ 편집장)

호러만화
파격ㆍ과장ㆍ장르 혼합으로 그려낸 지옥도

일본에서도 만화의 주요 독자가 10대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또는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만화의 전형적인 과장과 왜곡을 즐기는 경우가 많다. 자연히 만화에서 공포물도 판타지나 청춘물 등과 뒤섞이는 경우가 늘어난다.
‘피안도’(마쓰모토 고지 지음, 학산문화사 펴냄)는 현대의 외딴섬에 나타난 흡혈귀를 물리쳐 달라는 요청에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청년들이 섬에 갔다가 다시 빠져나오지 못하고 끔찍한 전투를 벌이게 된다는 이야기다. ‘피안도’의 흡혈귀는 좀비처럼 혈액에 의해 전염되고, 더 이상 피를 빨지 못하면 악귀라는 괴물로 변하게 된다. 뱀파이어와 좀비가 뒤섞이고, 형제간의 애증과 이루지 못할 사랑 이야기가 있는 ‘피안도’는 공포만화라기보다는 전형적인 어드벤처 게임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럼에도 ‘피안도’의 본질은 역시 공포다. 우리가 공포영화 등에서 보았던 모든 것이 극단적인 형태로 농축되어 있는 동시에, 급격하게 전개되는 스토리는 전혀 예상할 수 없는 방향으로 기묘하게 방향을 틀어버린다. 신세대적인 공포가 무엇인지를 알고 싶다면 꼭 봐야 할 만화다.
‘헬싱’(히라오 고우타 지음, 조은세상 펴냄)은 고전적인 뱀파이어가 등장하지만, 이야기는 파격적이다. 아카드는 자신의 영지를 잃어버리고 사랑하는 여인까지 떠나보낸 후 최강의 뱀파이어 사냥꾼이 된다. 어떤 이유로 영국 왕립국교 기사단을 관장하는 헬싱가에 복종하게 된 것이다. 아카드는 뱀파이어는 물론 교황청, 히틀러의 유지를 받드는 조직 밀레니엄과도 싸운다. 히라오 고우타는 ‘헬싱’의 모든 것을 아주 과격한 하드코어의 향연으로 그려낸다. ‘헬싱’은 괴물을 통해 인간의 폭력성을 그리고, 그 극한의 공포까지 담아낸다.
‘스카이 하이’(다카하시 쓰토무 지음, 서울문화사 펴냄)는 전통적인 원혼을 그린다. 사고나 살해 등으로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이 죽음의 문 앞에서 선택을 하게 된다. “죽음을 받아들이고 천국으로 떠나거나, 받아들이지 못하고 영혼이 돼서 현세를 떠돌거나. 그리고 또 하나, 현세의 인간을 저주하며 죽이는 거.” ‘지뢰진’ ‘폭음열도’의 다카하시 쓰토무는 지독한 비관주의의 작가다. 그가 바라보는 세상은 지옥도이지만, 그건 관념이 아니라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리얼리즘적 태도에서 비롯된다. 인간은 왜곡되고 모순된 존재라는 것에서 출발한 다카하시 쓰토무의 세계는 결국 우리에게도 선택을 요구한다. 이 세계를 받아들이고 버텨나갈 것인지, 아니면 무릎 꿇을 것인지. 그것이 바로 세상의 공포인 것이다.
‘저속령 Day Dream’(오쿠세 사키 원작, 메구로 산키치 그림, 대원 펴냄)의 세계도 ‘스카이 하이’와 동일하다. ‘영혼과 공수’하는 능력을 가진 미사키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거나 싸워서 물리친다. 영매사란 존재는 한 사람의 인생에서 있었던 일들, 아주 힘들고 고통스러운 기억을 수없이 받아들이고 토해내야만 한다. ‘저속령 Day Dream’에는 너무나도 암울한 세상의 고통이 흐르고 있다. 그리고 비탄에 빠진 사람을 이용하는 YUO라는 존재가 나온다. 대체 인간의 악의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마인탐정 네우로’(마쓰이 유세이 지음, 서울문화사 펴냄)는 공포와 추리를 결합한 만화다. 마인 네우로의 먹이는 ‘수수께끼’이고, 인간의 악의가 만들어낸 궁극의 수수께끼를 찾아 인간세계로 온다. 네우로는 X라는 괴도를 만난다. 그저 물건을 훔치는 것이 아니라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는 살인마. X는 자신의 악의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알고 싶어 한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인간이지만 인간 이상의 존재인 X와, 마인이지만 인간에게 흥미를 느끼게 된 네우로는 필연적인 라이벌이 된다. 글 김봉석(영화평론가)

호러 게임
보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

공포 대리 체험의 완성은 게임이다. 영화는 일방적으로 보여주는 데 그치지만, 게임은 직접 참여 한다는 차이점이 있다. 특히 ‘엑스박스 360’의 출시 이후 그래픽과 사운드 부문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면서 게임이 전달하는 공포감은 더욱 진화했다. 무더운 여름을 시원하게 날려보낼 게임 몇 가지를 함께 즐기자.
모노리스에서 제작한 ‘피어’는 뛰어난 액션과 공포의 조화로 이미 영화화가 결정된 명작 게임. 특수부대 요원으로 기이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투입된 게이머는 무수한 총격전과 함께 아시아 심령 공포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소름 끼치는 상황에 처한다. 그를 좇으며 등골이 서늘해지는 공포를 체험할 수 있다. 특히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각종 음향효과음이 뛰어나 5.1채널을 통해 게임을 즐길 경우 놀랄 만한 공포를 만끽하게 된다.
‘피어’의 초자연적 공포를 넘어 보다 사실적인 공포를 원한다면 ‘컨뎀드’가 제격이다. ‘컨뎀드’에서 게이머는 FBI 법의학 전문 요원인 에단 토머스가 되어 모종의 음모가 도사린 살인사건을 해결해야 한다. 이 게임의 매력은 살인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의 세밀한 묘사다. 각종 첨단장비를 동원해 증거를 수집ㆍ분석하는 과정이 흥미롭다. 대부분 어두운 공간을 헤매기 때문에 빛과 어둠의 조화로 만들어진 음산한 분위기 묘사와,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괴한과의 박진감 넘치는 싸움이 백미다. ‘컨뎀드’는 잘 만든 공포영화처럼 시종일관 긴장감이 끊이지 않는 장점을 지녔다.
마지막으로 공포 게임의 대명사 코나미 제작의 ‘사일런트 힐’ 시리즈가 있다. 4편까지 나와 있는 이 게임은 얼마 전 크리스토퍼 강스 감독에 의해 동명의 영화로 제작돼 큰 성공을 거두면서 더욱 주목을 받았다. ‘사일런트 힐’은 온통 안개로 둘러싸인 의문의 마을을 게이머가 방문, 그곳에 숨겨져 있는 비밀의 실체를 밝히는 매혹적인 스토리텔링이 유난히 돋보이는 게임이다. 탁월한 시각효과와 공포를 극대화하는 노련한 연출, 그로테스크한 몬스터 디자인, 무시무시한 효과음의 조화로 공포에 관한 한 그 어떤 게임도 도달하지 못했던 전인미답의 경지에 올랐다.
글 김종철 `익스트림무비’(extmovie.com)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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