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차이콥스키 앞에만 서면 주눅 들어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28일 차이콥스키 초상화 아래서 차이콥스키의 곡을 연습하고 있는 첼로부문 결선 진출자 이쉬반 바르다이(22앞줄 왼쪽에서 세번째). 제 13회 차이콥스키 콩쿠르 참가자들은 이 작곡가의 곡을 연주하는 데 부담을 많이 느꼈다.

 “참가자들이 차이콥스키를 연주하면서 필요 이상으로 부담을 느끼는 것 같아 안타깝다.”

 차이콥스키 콩쿠르 심사위원으로 두번째 참여한 클라우스 헬비히(피아노·베를린 국립음대) 교수의 말이다. 결선 대회 이틀째에 접어든 제 13회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참가자들 사이에 이른바 ‘차이콥스키 콤플렉스’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 콩쿠르의 피아노·바이올린·첼로 부문 참가자들은 모두 차이콥스키 곡을 지정곡으로 받는다. 피아노는 협주곡 1번, 바이올린은 협주곡 D 장조, 첼로 참가자는 로코코 테마에 의한 변주곡을 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해야 한다. 나머지 한곡은 자신이 선택한 곡이다.

 문제는 차이콥스키의 곡을 연주할 때 참가자들이 지나치게 긴장한다는 점. 28일(현지시간) 결선 무대에 오른 한국인 바이올리니스트 윤소영(23)씨는 자유곡인 시벨리우스 협주곡 뒤에 연주한 차이콥스키 협주곡에서 실수를 했다.

긴장한 듯한 소리로 이 곡을 시작한 윤씨는 중간중간 오케스트라와 호흡이 안 맞는 듯하더니 이내 두어마디를 얼버무렸다. 예민한 귀를 가진 객석은 곧 술렁였다.

 피아노 부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결선 이튿날인 이날의 두번째 참가자로 나선 세르게이 소볼레프(26·러시아) 또한 차이콥스키 협주곡에서 잦은 실수를 보였다. 중요한 음을 잘못 치는가 하면 매끄럽지 못한 소리로 긴장감을 역력히 드러냈다. 하지만 곧이어 연주한 프로코피예프 협주곡 2번은 놀라울 정도로 완벽하게 소화해 차이콥스키 곡에 대한 부담감을 반증했다.

 첼로 부문 결선 진출자 이쉬반 바르다이(22·헝가리)도 차이콥스키에서는 긴장하다 쇼스타코비치 협주곡에서는 현 위를 자유롭게 날아다녔다.

 그렇다면 왜 ‘차이콥스키 콤플렉스’가 생기는 것일까. 우선 차이콥스키의 고향인 모스크바에서 그의 곡을 연주한다는 심리적 부담감이 적지 않다고 출전자들은 말한다. 심사위원은 물론이고 객석에서 받는 중압감도 엄청나다는 것이다.

27일 최종 결선 무대를 마친 피아니스트 임동혁(23) 씨는 “모스크바에서 차이콥스키 연주는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임씨의 바로 뒤에 연주한 알렉산더 루반체프(21)는 차이콥스키 2악장 연주를 마친 뒤 오케스트라 단원에게 물병을 달라고 해 목을 축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무대에서 러시아 오케스트라와 호흡을 맞춰야 한다는 점도 ‘콤플렉스’를 만드는 중요한 요인이다. 실제로 러시아 국립음악원 오케스트라 등 결선 무대에 선 교향악단은 대다수 연주자들과 차이콥스키 협주곡에 다른 해석을 보여 ‘절름발이’ 음악을 만들기도 했다. 1994년 이 콩쿠르에서 3위로 입상했던 피아니스트 백혜선 씨는 “러시아 오케스트라는 러시아 작곡가의 곡을 연주할 때 양보가 없다. 호흡을 맞추기 힘든 조합”이라고 평한 바 있다.

 피아노 부문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백건우 씨는 “차이콥스키 곡을 잘 연주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라며 “그렇기 때문에 이 곡이 당락을 좌우한다는 말도 나온다”고 평했다.

모스크바=김호정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