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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극 부른 마이너스 투어, 언더 투어를 아십니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이진수(35ㆍ가명)씨는 캄보디아의 한국인 관광 가이드다. 그것도 이번 사고 비행기의 출발지였던 시엠립 소재 현지 여행사 소속으로 2년째 활동 중이다. 그가 비교적 늦은 나이에 가이드를 하게 된 데는 사연이 있다. 그는 국내의 한 기업에서 꽤 오래 근무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그가 가장 좋아했던 일이 바로 해외 출장과 휴가였다. 자신의 일에 미래가 없다고 느낀 그는 퇴직과 함께 가이드가 되기로 결심했다. 자신의 일과 취미 생활을 겸할 수 있는 멋진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남아 저가 패키지 여행의 구조적 폐해를 온몸으로 느낀 요즘에는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더욱이 자신이 이번 사고기에 탈 수도 있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절로 몸서리가 쳐진다. 그가 캄보디아 패키지 관광 실태와 이번 사건에 대한 소회를 e-메일로 보내왔다. 이번 참극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는 판단에 따라 이 글을 요약해 싣는다.


가이드, 유노동 무보수 봉사직

2년 전 캄보디아 현지 여행사에 첫 출근을 하던 날 가장 놀란 것은 월급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퇴직금은 물론 각종 연금보험도 전혀 없었다. 한 마디로 관광 가이드는 ‘유노동 무보수’의 봉사직이었다. 내가 속한 현지 여행사(여행업계에서는 현지 협력 여행사를 랜드사라고 부른다)는 한국 여행사에서 일감을 맡는 소규모 여행사였다. 과거에는 관광 가이드에 대한 피(일당)과 팁이 있었다. 그러나 2004년 쓰나미 사태 이후 태국 방콕의 소규모 여행사들이 대거 캄보디아로 옮겨 왔다. 캄보디아도 곧 태국식 저가 투어의 경쟁 무대로 변해 버렸다. 가이드 일당과 팁도 사라졌다. 대신 선택 관광과 쇼핑 투어를 통해 알아서 커미션을 벌어야 하는 처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저가 경쟁이 낳은 기형적 여행이 마이너스 투어와 언더 투어다. 여행업계 속어인 마이너스 투어는 손해를 감수하면서 관광객을 유치하는 경우다. 손해가 1인당 적게는 100달러에서 많게는 300달러 가까이 될 때도 있다. 이 손실액을 가이드가 선택 관광과 쇼핑 투어를 통해 메워야 한다. 심지어 관광객 1인당 얼마씩 현지 여행사가 한국 여행사에 돈을 지불하고 데려오는 경우마저 있다. 이를 두고 여행업계는 뒷돈을 준다는 의미에서 언더 투어라고 부른다.

선택 관광과 쇼핑 투어 커미션의 황금 비율

선택 관광이나 쇼핑 투어를 통해 현지 관광지나 쇼핑몰로부터 받는 커미션의 배분 비율도 힘센 사람 순이다. 가이드가 커미션을 절반이나 가져간다는 보도가 나왔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커미션의 70%는 현지 여행사 몫이다. 한국 여행사에서 온 인솔자의 몫이 5~10%다. 인솔자는 이를 다시 한국 여행사와 절반씩 나눈다. 결국 한국 여행사는 상품을 팔아서 돈을 남기고, 현지 여행사 역시 큰 손해를 안 보는 구조다. 나머지 20% 가까이를 가이드가 차지한다. 현지 여행사들은 가이드가 큰 돈을 벌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가이드 벌이가 좋아진다 싶으면 정산 조건을 가차 없이 깎아 버리기 일쑤다.
더욱이 요즘 동남아 관광객들은 영악해 선택 관광이나 쇼핑 투어를 안 하겠다고 버틴다. 그러면 가이드의 수입은 거의 없어 봉사활동을 한 셈 쳐야 한다. 이 때는 관광 마지막 날 한국으로 출발할 무렵 관광객들 얼굴 보기마저 싫어진다. 특히 가족 단위 관광객이나 아이들이 많을 경우 이런 경우가 많다. 가이드들 간에는 이런 팀을 두고 ‘손님 버린다’고 얘기한다. 돈 안 되는 팀을 위해 굳이 힘 뺄 필요 없다, 그냥 적당히 해서 보내자는 심보가 되곤 한다. 그러다보니 캄보디아 가이드들의 수입은 한 달에 1000달러가 채 안 된다.

왕복 항공료에 불과한 관광 상품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동남아 관광이 이렇게 엉망이 된 데에는 한국의 대형 패키지 여행사의 책임이 크다. 이번 사건이 일어나자마자 캄보디아 현지 관광 종사자들은 상품을 판 대형 여행업체에 대해 고소하다고 말했다. 관광 상품의 가격과 무관하게 현지에 거의 비용을 주지 않는 등 횡포가 심했기 때문이었다. 현지 관광에 대해서도 가장 간섭을 많이 하는 회사이기도 했다.
이번 상품의 가격도 기가 막히다고 할 수밖에 없다. 혼자 우리 항공사를 이용해 한국을 다녀올 때도 왕복 항공료로 600달러(약 56만원) 정도 쓴다. 그런데 사고가 난 이번 관광 상품의 가격은 59만 9000원. 아무리 항공사 좌석을 송두리째 산다고 해도 납득하기 어려운 가격이다. 여행 일정과 내용을 보면 더욱 이해할 수 없다. 관광객들은 아시아나 항공을 통해 시엠립에 도착해 준특급 호텔인 압사라 호텔에서 2박을 한다. 여기에 식사와 유적 입장료, 마사지 비용이 추가된다. 특히 3일간의 식사에는 북한 평양식당 특식도 포함된다. 그 다음 시아누크빌로 현지 항공사를 통해 이동하고 그곳 특급 호텔인 소카호텔에서 2박을 하게 된다. 이곳 식사 역시 와인을 곁들인 해산물 일색이다. 여기에 생수 제공에 공동 경비까지 보태면 도저히 이 가격으로는 무리일 수밖에 없다. 결국 한국의 대형 패키지 여행사가 기존과는 다른 상품을 내놓기 위해 여러 모로 무리수를 둔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이번 사고는 더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현지 항공사인 PMT는 이번에 사고가 난 노선의 빈 자리를 메우기 위해 이번 여름 한국의 주요 대형 패키지 여행업체에 비슷한 상품을 제안할 참이었다. 이미 현지 여행업체에 소속된 가이드들이 PMT 항공편을 이용해 시범적으로 다녀오기도 했다. 성수기에 사고가 났다면 규모는 훨씬 더 커질 수도 있었다는 얘기다.

‘이러다 언젠가 한 번 큰 일 나지’ 하는 우스갯소리

캄보디아 안에서 한국 여행객들이 이동할 때는 두 개 항공사의 국내선과 전세기를 이용한다. 이번에 사고를 낸 PMT와 로열크메르이다. 아직 사고를 내지는 않았지만 로열크메르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나는 주로 PMT(u4)를 이용하는데 이번에 사고를 낸 그 비행기다. 나는 주로 이 항공사를 이용하지만, 한 번 타고 나면 다시는 타고 싶지 않다. 팀 일정에 포함돼 어쩔 수 없이 이용할 때에는 정말이지 기도하는 심정이었다. 비행기 상태를 보면 여행객의 안전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가이드들 사이에서는 이러다 언젠가 한 번 큰 일 날 거라는 우스갯소리가 돌기도 했다.
사고를 낸 PMT는 캄보디아 국내선뿐만 아니라 한국 왕복 전세기도 운행하고 있다. 때로 한국 여행업계가 가격을 낮추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선택하기 때문이다. 인천에서 출발해 캄보디아 현지에 이튿날 새벽 1시50분에 도착하는 일정이다. 그러나 연착을 밥먹듯 해서 새벽 4∼5시에 현지에 도착하는 경우도 많다. 도착 당일 관광은 무리다. 실제로 국내선이든 국제선이든 두 항공사의 비행기를 타본 관광객들도 늘 비행기가 너무 낡았다고 우려해왔다.

일본 관광객의 경우

일본의 경우가 캄보디아 저가 여행의 폐해에 대한 해결책이라고 생각한다. 일본 여행사들은 가격이 싸지 않은 상품을 내놓으면서도 가이드 월급과 일당, 팁을 보장해준다. 대신 가이드는 관광객 안내에 최선을 다하고, 웃으며 헤어진다. 일본 관광객들도 선택 관광을 하고 쇼핑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것이다. 우리처럼 관광이 뒷전이고 쇼핑이 전부인 경우와는 다르다.
이번 사고로 가이드도 한 명 희생된 것 같다. 가이드 희생에 따른 보상 문제도 사각 지대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관광객들이 여행사와 항공사 등으로부터 보상을 받는 데 반해, 이런 사고 발생시 가이드는 전혀 보상을 못 받는다. 캄보디아 가이드들 사이에서 가이드의 희생은 개죽음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안타까운 현실이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캄보디아를 비롯한 동남아, 더 나아가서는 해외 패키지 여행 전반의 문제를 차분히 짚어봐야 한다.

이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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