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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귀한 몽유병 ‘수면 섹스’

중앙일보

입력

뉴스위크캐나다 토론토에 사는 잰 뤼데키는 성폭행 혐의로 재판을 받으며 희한한 변론을 제기했다. 자신이 잠을 자면서 그런 행동을 했다는 주장이었다. 사실이었다. 억지스러운 변명처럼 들릴지는 모르나 2005년 재판 당시 33세였던 뤼데키는 몽유병 환자였다. 문제의 그날 밤 그는 파티에서 술을 마시다가 소파에서 잠들었다.

파티에서 만난 한 여성도 그와 함께 잠들었다. 몇 시간 뒤 그녀는 뤼데키를 흔들어 깨우고는 무슨 짓을 하느냐고 따져 물었다. 그는 자신이 그녀에게 무의식 상태에서 성행위를 했다고 주장했다. 그 재판에서 피고인 측 증인으로 나섰던 유스데일 아동·청소년 수면 센터의 소장 콜린 샤피로 박사는 “현행법에 따르면, 범행 의도가 없었다면 범죄가 아니다”고 말했다. 뤼데키는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그러자 캐나다의 여성 단체들이 들고일어났고, 그 사건은 현재 항소법원에 계류 중이다.

이제는 초수면(parasomnia: ‘사건수면’으로도 불린다) 증후군에 성행위도 포함시켜야 할 듯하다. 초수면이란 잠을 자면서 운전을 하거나 식사를 하는 등 도저히 있을 법하지 않은 수면 시 이상 행동을 말한다. 미국 미네소타의 수면장애센터 소속 정신과 의사 카를로스 셴크와 신경과 의사 마크 마호월드는 최근 수면 학술지 슬리프(Sleep)에 ‘수면 섹스’(sleepsex 혹은 sexsomnia)를 다룬 논문을 게재했다.

수면 섹스는 몽유병보다 한 단계 심화된 수면 장애의 일종이다. 애무부터 성교까지 온갖 행위를 수면 중에 하지만, 일반적인 성행위와는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하나 있다. 자신의 행동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며, 깨어난 뒤에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정말일까? 보고된 사례는 아직 드물다. 셴크와 마호월드가 의학계 문헌에서 찾아낸 사례는 31건에 불과하다. 그러나 두 사람은 보고된 사례가 드문 이유를 수면 섹스가 본질적으로 수치스러운 행동인 데다 그런 행동의 일반적 인지도가 낮다는 사실에서도 찾는다.

심지어 미 수면의학회는 2005년까지도 수면 섹스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했다. 뉴햄프셔대학의 심리학자이자 ‘수면 섹스:그 정체를 밝힌다. (Sleepsex: Uncovered)’의 저자인 마이클 맹건은 문헌 기록보다 훨씬 더 많은 사례가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가 운영하는 수면 섹스 관련 웹사이트에는 그 질병으로 고통받는 1000여 명의 글이 올라 있다.

수면 섹스는 일반적인 성행위 꿈과는 크게 다르다. 꿈은 REM 수면(분명히 잠들었지만 뇌파의 모양은 깨어 있을 때와 유사하며 신속한 안구 운동[rapid eye movement]이 관찰된다) 중에 꾸게 되며, 이때 신체는 대체로 마비 상태다. 반면 수면 섹스는 부분적으로 깨어난 상태에서 진행되며, 이때 신체는 자유롭게 움직인다. 또 꿈은 나중에 적절한 조건이 갖춰지면 기억해 내기도 한다.

그러나 수면 섹스는 정신적인 저승세계에 속하는 행동처럼 보인다. 그 세계에서는 고차원적인 생각·판단·추론을 관장하는 두뇌 부위가 폐쇄되고, 운동·식사·성행위 같은 원시적 기능을 관장하는 두뇌 부위는 계속 활동한다. 이미 몽유병 같은 초수면 증상을 보이는 사람이 그런 세계에 들어가면 증상이 악화할 가능성이 있다. 그런 사람이 지나친 음주나 지속적인 수면 부족처럼 좀 더 깊은 잠에 빠지도록 만드는 상황에 처하면 수면 섹스 행위를 할 위험성이 커진다.

그렇다 해도 수면 섹스란 말은 우습게 들린다. 보고된 사례 중 일부에서는 우스꽝스러운 측면도 발견된다. 맹건은 이런 사례를 소개했다. “한 남성은 항상 밤에만 아내와 성교를 했다. 아내의 입장에선 별 문제되지 않아 보였다. 어느 날 밤 그 남성이 성교를 하면서 코를 골기 전까지는 말이다.” 또 다른 사례에서 한 여성 환자는 수면 중 남편의 몸을 더듬곤 했다. 남편이 그 자극에 반응을 보이면 “그녀는 잠에서 깨어나 자신이 자는 동안 남편이 섹스를 강요했다고 짜증을 내곤 했다”고 셴크는 소개했다.

그러나 의사들은 수면 섹스가 신체적·심리적으로 피해를 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환자의 섹스 파트너들은 열상(裂傷)을 입기도 한다고 알려졌다. 예컨대 깨어 있을 때보다는 수면 중 성행위를 할 때 남성 환자들이 훨씬 더 거친 동작을 보이는 사례가 드물지 않다.

한 남성은 수면 중 너무 거칠게 자위 행위를 하다가 “남근에 반복적인 타박상”을 입은 탓에 8년 이상 성행위를 피해야 했다. 싱가포르의 한 남성은 매일 밤 자면서 자위 행위를 하는 바람에 그의 아내는 “속았다”는 느낌을 가졌다. 맹건은 “그 질병 때문에 인간관계에 실제로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셴크와 마호월드는 수면 섹스 질병을 널리 알려 더 많은 사람이 도움을 얻게 되기를 희망한다. 이 질병은 일반적인 불안 치료제인 클로나제팜을 복용하면 높은 치료 효과를 보인다. 수면 섹스라는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이라면 도움을 청해야 한다. 어차피 성행위를 할 생각이라면 즐겨야 하지 않겠는가?

ANNE UNDERWOOD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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