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앙드레 김 "난 고상함·지성미를 추구해요 펑크·퇴폐 … 이런 건 질색이죠"

중앙일보

입력 2007.06.13 18:23

업데이트 2007.06.14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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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강남 신사역 부근 의상실 '앙드레 김 아틀리에'. 온통 백색의 건물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짙은 향내가 몰려온다. 그의 이름을 딴 향수다. 소파가 놓여있는 맨 안쪽도 역시 순백색. 크리스털 샹들리에에 눈꽃 장식 트리들이 서있다. 입구 쪽은 이국적인 고대 사원풍이다. 천사 조각 돌기둥과 원색의 현란한 드레스를 입은 마네킹이 늘어서 있다. 대형 TV에선 지난해 말 열린 앙코르와트 패션쇼 장면이 흘러나온다. 볼륨을 한껏 올린 애조 띤 배경음악이 의상실 안을 터질 듯 채운다.

"아, 안녕하세요." 리듬을 타는 목소리다. 30년 넘게, 하루에 세 번씩 갈아입는 예의 흰옷 차림이다(그는 자신의 옷을 "포시즌(4계절)에 30벌 만들어 입죠. 창의적 디자인에 제 결점을 보완해 주고, 실크는 제가 너무 화려해 보이니까 코튼을 써요"라고 소개했다). 두 손을 합장하듯 모으고 머리를 조아리며 인사한다.

그의 정중함은 그의 의상과 마찬가지로, 상대를 고귀한 신분이 된 듯 착각하게 하는 힘이 있다. 방문객을 배웅할 때도 문 밖에 나와 상대의 차가 떠날 때까지 예의 인사 포즈로 한참 서 있는다. 누군가는 이에 대해 "그 진풍경을 보느라 지나던 차들이 멈춰서 교통체증이 빚어질 정도"라고 썼다.

인터뷰는 몇 번이나 끊겼다. 그를 찾아온 손님들 때문이다. 그것도 여느 고객이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온 문화 관계자들이다. 밀라노의 오페라극장 '라스칼라'의 예술감독 일행은 "한국의 유력한 문화계 인사라 만나보고 싶었다"고 했다. 세계적으로 넓은 그의 발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아, 저는 오페라를 너무 사랑해요. 모차르트, 베르디, 푸치니, '리골레토', 그리고 아 '라 트라비아타'." 감탄사를 연발하며 손님을 응대하는 목소리가 벽을 넘어 들려왔다.

#패션외교관

앙드레 김은 패션을 외교로, 외교로 패션을 한 사람이다. 45년간 연 패션쇼 130회 중 40회가 해외다. 서울.바르셀로나.애틀랜타.시드니 올림픽을 위시해 뉴욕.파리.울란바토르까지 날아갔다.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앙코르와트,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앞에도 섰다. 그의 패션을 인정하든 않든, 그가 대한민국 문화 브랜드의 하나이고, 패션 외교사절이라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성가다.

외교가와 그의 인연은 깊다. 초년병 시절로 거슬러 간다. '앙드레'라는 이름도 프랑스 대사관 관계자가 지어줬다. 그들의 소개로 1966년 파리 에펠탑 앞에서 첫 해외 패션쇼를 열었다. 그 해 말 워싱턴 패션쇼에서는 석굴암을 모티브로 한 검은 공단 이브닝 드레스를 존슨 미국 대통령 부인에게 선물했다. 영부인은 이후 한국 방문 시 공식 만찬에 그 드레스를 입고 나타났다.

"외교사절들은 저의 가장 큰 지지자들이지요. 최고의 문화행사에 참석하고 문화적 안목이 상당한 분들이죠. 제 패션의 동양적.한국적 아름다움을 인정해 주시고, 뮤지엄 컬렉션이라며 예술성을 인정해 주세요. 국내보다 그분들을 통해 세계에서 먼저 인정받았죠. 나인틴식스티식스(1966) 첫 파리 패션쇼도 프랑스 대사관 도움 때문에 가능했죠. 우리나라에 87개국 대사관이 있는데 저는 거기서 하는 모든 리셉션에 다 참석해요. 국경일.문화행사 등 1년에 100번이 넘죠. 일할 시간을 뺏기면 안 되니까 주로 오찬 중심으로요. 그분들이 2~3년 재임하다 본국으로 가는데 후임자한테 저를 소개해 주시니까 인연이 이어지죠."

#패션쇼라는 종합예술

"제 패션은 그냥 옷이 아니에요. 오페라.클래식.뮤지컬.영화처럼 예술의 한 장르예요. 국민총생산(GNP)이 100달러도 안 되는 시대에 패션 디자인을 시작하면서 패션을 예술로 인정받게 하고 싶었어요. 패션에 관심 있는 여성들만 보는 게 아니라 셰익스피어나 차이콥스키, 미켈란젤로처럼 온 가족이 볼 수 있는 예술 말이에요. 제 쇼에서 '웨딩' 장면은 25년, '사랑해요'(남녀가 고개를 맞대는 장면)는 7년, '일곱 겹'(7겹 드레스를 벗어던지는 장면)은 15년 됐어요. 7겹 의상은 궁중여인의 한을 표현한 건데 한국 모델을 쓰면 고전 무용하는 것 같아 서양 모델을 쓰죠. 쇼마다 평균 170개 작품을 선보이는데 프로 모델 20명, 연기자 5명을 써요. 스피디한 진행, 세련된 워킹은 모델이 잘하지만 제 쇼의 감성적 연출, 고고한 성스러움, 동양적 신비감, 필링은 연기력 있는 배우여야 가능하거든요."

말하자면 그의 패션쇼는 남녀의 만남, 이별, 그리고 해피 엔딩을 주제로 한 로맨틱 판타지 드라마인 것이다. 참고로 그는 평생 독신으로 지냈고, 40대에 아들을 입양했다. 그리고 지금은 세 살짜리 쌍둥이 손자.손녀를 둔 할아버지다.

"제 옷이 똑같다고요? 그건 저를 시기하는 분들이 하는 얘기죠. 전 매번 새 의상을 만들어요. 그리고 어디 차이콥스키가 매번 달라지나요. 전 트렌드, 유행을 좇아가지 않아요. 그렇게 상업성을 추구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죠. 전 예술성을 추구합니다."

"(공주풍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도) 오, 그것도 말이 안 돼요(언성을 약간 높이며). 저는 우아한 고상함, 단아함, 인털렉추얼한 지성미, 교양미, 동양적 신비함을 추구해요. 섹시함도 지적인 섹시미죠. 제가 싫어하는 것은요 펑크, 퇴폐, 들뜨는 것…."

#김봉남과 앙드레 김

국내 남성 디자이너 1호인 앙드레 김은 TV 출연 등으로 가장 대중적인 디자이너다. 대중 사이에 '디자이너=앙드레 김'이란 등식이 있을 정도다. 영어를 섞어 쓰며 말꼬리를 무는 독특한 말투는 숱한 개그의 소재가 됐다. 99년 '옷 로비' 사건의 참고인 자격으로 불려간 국회 청문회에서는 '그의 본명(김봉남) 외에는 밝혀진 것이 없다'는 우스개도 낳았다.

"제 말투를 많이 흉내 내시는데 너무 우스꽝스럽게 하는 걸 보면 민망하죠. 그런데 주말에 인사동 같은 데서 아이들이나 어머니들이 사인 요청하는 걸 보면 그게 다 마이너스는 아니구나 싶죠. 제 말투가 이렇게 된 건, 말에 자신 없고 긴장돼 조심스레 하다 느려진 건데요. 게다가 제가 악스퍼드 악센트잖아요. 모두 미국식 악센튼데, 악스퍼드 악센트니까 더 눈에 띈 거지요."

"구파발리(지금의 서울 구파발동) 시골학교에 다녔는데 영어를 너무 좋아했어요. 중학교 때 이미 세계 구석구석을 알았고 세계를 동경했죠. 부산 피란 시절에 본 영화들, '내 청춘 마리안느' '전원교향곡'이 너무 좋았고 예술을 동경하게 됐죠. 저는 나이대로 취향을 안 살아요. 20대의 동화적인 세계, 어려서의 꿈과 환상이 그대로예요. 나이 든 사람들 보면 다른 세계 사람 같고 제가 어린 것 같아요. '내 청춘 마리안느'에 나온 깊은 숲, 호수, 양옥집, 신비로운 미녀. 그게 제가 영원히 꿈꾸는 거예요."

올해로 73세. 그의 스펙트럼은 한마디로 압축될 수 없다. 무수한 스타들을 무대에 세우고 한국을 대표하는 외교사절이자 동시에 코흘리개 꼬마들도 흉내 내는 성대모사의 대상이다. 패션계보다 문화예술.연예계와의 친분 속에 성장해 왔다. 호화로움을 내세운 상류 사회의 패션 아이콘이기도 하다. 디자이너 앙드레 김의 진정한 위치는 이처럼 다양한 얼굴 중 그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나이를 잊은 정력가답게 그는 다음달 12일 상하이, 내년 초 태국 왕실 패션쇼를 계획 중이다. 마지막 남은 꿈은 "의상박물관에 기증해 내 작품세계를 영구 보존하고 싶다"였다.

글=양성희 기자 <shyang@joongang.co.kr>
사진=변선구 기자 <sunni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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