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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다다시의 와인의 기쁨 [13]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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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호 29면

와인을 모르는 이도 감동으로 몰아넣는 ‘지로라트’.

우리 남매는 와인 만화의 원작자임과 동시에 와인 마니아이기도 하다. 물론 직접 와인을 판매할 생각은 전혀 없다. 단지 마니아의 한 사람으로서 “와인은 별로 마시지 않아요”라고 말하는 사람과 마주치면 이 매혹적인 세계로 꼭 끌어들이고 싶어진다.

와인 마니아 만들기

와인과 친하지 않은 사람을 와인의 세계에 강제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역시 ‘근사한 와인’을 마시고 감동하게 만드는 방법이 최고다. 우리 남매는 일과 관련된 회식 자리에도 와인을 들고 가서 와인 초보자에게 감동적인 와인을 권한다. 그러면 체질적으로 술을 싫어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대개가 우리의 컬렉션에 감동한다. 그리고 그 일을 계기로 와인 팬이 된다. 이런 변화를 보는 것이 즐거워 ‘와인을 마시지 않는 사람’이 나타나면 기다렸다는 듯이 최고 와인 한 병을 저장고에서 꺼내 대접하게 되는 것이다.

‘신의 물방울’을 연재한 지 얼마 안 됐을 무렵, 웹 관련 회사 사람들이 일 문제로 우리 작업실에 찾아왔다. 직원들 가운데 ‘와인을 별로 마신 적 없다’는 초보자가 한 명 있는 것이 아닌가. 때가 왔다. 우리 남매는 샹볼 뮤지니 마을의 근사한 특급 밭에서 나오는 ‘본 마르’ 1997년산을 내놓기로 했다. 생산자는 도르앙 라로즈라는, 특급 밭을 여러 개 소유하고 있는 부르고뉴의 대부호다. 병마개를 열자 근사한 냄새가 향긋 피어올랐다. 아무래도 마실 때가 된 듯하다. 붉은 꽃과 검은 흙, 구운 캐슈너트, 잣, 희미한 커피 향기. 과일맛이 가득 넘쳐흘러 황홀경에 빠져들게 만든다. 이 와인을 마시고 그 초보자는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그 뒤 그는 와인에 흠뻑 빠져들었고 결국 집에 마이 셀러(개인 저장고)를 두게 됐다고 한다. 정말 기쁜 일이다.

우리 남매에겐 와인 초보자용으로 내미는 비장의 카드가 있는데, ‘지로라트(Girolate)’라는 와인이다. 이 포도주는 ‘신의 물방울’에서 대히트를 친 ‘몽페라’의 샤토가 만드는 명주(銘酒)로, 한 그루의 포도나무에서 2~3송이로 수확량을 제한한다. 그래서 잘 익은 플럼을 꼭꼭 채워넣은 듯한 응축감이 느껴지는데, 이상하게도 너무 진하지도 떫지도 않다. 술의 질이 참으로 우아하다. 특징은 풀 보디이지만 마개를 따서 바로 맛있게 마실 수 있다는 점이다.

북이탈리아의 괴물 와인으로 알려진 ‘미아니’도 포도나무 한 그루당 포도의 수확량을 세 송이로 제한한 프리미엄 와인이지만 가격은 병당 3만 엔 이상(메를로 가격)으로 고가다. 그에 비해 ‘지로라트’는 약 1만 엔으로 훨씬 싸다. 우리는 이 와인을 대량 확보해놓고 와인 초보자를 만나면 ‘자, 놀라시라!’ 하는 마음으로 권한다. 물론 ‘지로라트’는 상당히 높은 확률로 초보자를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어 와인 마니아로 바꿔놓는다.

그동안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초보자를 마니아의 길로 인도하려면 다음과 같은 요소를 충족시키는 와인을 권할 필요가 있다. 첫째. ‘마시기 적당한 때가 된 와인’. 1997년산 ‘본 마르’는 제대로 말하자면 마시기 적당한 시기는 좀 더 기다려야 하지만, 마실 시기에 접어든 것은 확실했다. 금방 발매된 와인의 경우, 초보자는 그 숨은 가능성을 간파하기 어려워 맛없는 와인으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 둘째, ‘마개를 따서 바로 마실 수 있는 맛있는 와인’. 장기숙성형 와인은 마개를 딴 지 한 시간 이상 지나지 않으면 와인이 채 열리지 않아 떫기만 할 뿐이다. 이러면 초보자는 맛없는 와인으로 여기게 된다.

‘신의 물방울’ 애독자 중에는 마니아 수준에 도달한 분도 많을 것이다. 그런 분들은 꼭 와인 초보자 친구들을 마니아의 길로 이끌어줬으면 한다. 와인을 한없이 사랑하는 우리 남매는 전 세계에서 와인 마니아가 늘어나는 것을 상상만 해도 행복하다. 번역 설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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