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중립” 변신 안간힘(새 위상 찾는 한국군: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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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남북관계 변화로 체제개편론/문민시대 맞춰 적응채비 활발
건군 44주년을 맞는 장년의 한국군이 새로운 자기변신의 진통을 겪고 있다.
오랜 냉전구조와 남북대결상황 속에서 가장 보수적인 입장을 지켜왔던 군도 탈냉전과 남북대화의 시대적 대세에 떼밀려 스스로를 변화시키지 않으면 안될 시점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이같은 절박성은 대체로 남북관계의 진전과 국내 정치체제의 변화 등 두가지 요인에서 비롯되고 있다.
남북기본합의서 채택으로 남북간에는 최소한 적대적 대결관계는 극복됐으며 오는 11월부터 가동키로 한 군사공동위에서는 본격적인 군축문제가 논의될 전망이다.
국내적으로는 연말 대선을 통해 30년만의 문민정치 체제가 등장하게 되는 등 정치상황의 일대 변혁이 예고되고 있다.
냉전체제가 화해·협력체제로,군사우위 정치체제가 문민우위 지배체제로 이양해가는 과정은 군으로서는 새로운 도전이며 시련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외부적 환경의 변화가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 군의 내부체제 조정문제,방위비 삭감문제이며 이것은 군의 정치적 중립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한반도주변의 안보환경변화는 군의 존재이유에 대한 직접적인 평가와 직결되고 있다. 정규군 65만명 수준을 계속 유지해야 하느냐는 문제,전력증강을 어느 수준으로 조정하느냐의 문제와 함께 남북관계를 군사적으로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가라는 광범하고 본질적인 문제들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내년도 국방비가 논란끝에 12.5% 증가했던 올해와는 달리 한자리수(9.8%) 인상에 그친 점도 국방예산에 대한 반성과 재검토가 시작되고 있는 한 증거다. 게다가 날로 늘어나고 있는 장교·하사관들의 조기전역사태는 이미 군이 처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다른 반증이기도 하다.
장기적인 군축추세와 군에 대한 평가절하,진급에 대한 불확실성 등으로 상당수의 젊은 장교들은 심적 동요을 일으키고 있으며 육사를 비롯한 사관학교지원율은 최근 5∼6년사이 급속히 낮아지고 있다.
그동안 반공이데올로기에 충실해왔던 군의 이념적 변화 가운데 주목할만한 것은 북한에 대한 인식이다.
북한을 주적개념으로 보는 방위개념이 근본적으로 바뀐것은 아니지만 러시아·중국 등과의 수교가 이념적 대결의 양상을 바꿔놓고 있으며 제8차 고위급 회담에서 정원식총리가 말한 「남북화해협력시대」라고 규정했던 새로운 상황을 소화해야할 공간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때문에 적정군사력의 수준을 결정하는데 있어서는 「공격할 수는 없으나 방어하기에는 충분한」 이른바,「합리적 충분성의 원칙」이 강조되며 이에 따른 군체제의 변화가 이뤄져야 한다는 개혁론이 강력하게 대두되고 있다.
이런 안보환경의 변화에 따라 가장 강력한 이념집단이며 민족주의적인 집단이었던 한국군의 이데올로기적 경향보다는 민족주의적 감이 더 두드러지게 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아마도 군에 대한 가장 큰 관심은 군이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할 수 있느냐는 점일 것이다.
지난 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군부대의 선거부정이 커다란 정치적 쟁점으로 부각되었다. 실제로 군이 그동안 군출신 대통령들이 통치해온 집권정부나 여당에 대한 가장 강력한 후원세력이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때문에 군이 각종 선거에서 중립성을 유지할 수 있으며 어떤 결과가 나오든 수용할 수 있을 것인가가 가장 큰 관심의 하나다. 군이 정치적 상황에 무력으로 개입했던 것이 불과 12년(80년 5월17일) 전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군이 과거와는 달리 정치상황에 직접 개입하기는 어렵다는 것은 광주사태와 6·29이후 거의 통념화되고 있다.
젊은 장교들은 물론 각군 수뇌부도 연말대선이야말로 군의 정치적 중립을 지킬 수 있는지의 여부를 가름하는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
특히 노 대통령의 9·18 민자당 탈당 선언은 군을 정치적 부담에서 해방시켜준 것이라는게 군부측 시각이다.
과거 군이 공공연하게 기피했던 김영삼·김대중 두 김중 누가 되더라도 선거결과에 따를 수 밖에 없으며,따라서 군의 특정인에 대한 비토세력 운운은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는게 군내부의 지배적 견해인것 같다.
육군의 한 고위장성은 『만약 DJ가 대통령이 될 경우 군이 반발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그에게 충성을 안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이 있겠소』라고 반문하고 있다. 군은 군경력이 거의 없다시피한 민간출신의 후보자들 가운데 누가 되느냐 하는 문제보다는 그와같은 문민정치 시대에 군의 위상이 어떻게 될 것인지에 더 관심이 많다는 것이 그들의 솔직한 고백이다.
5·16이후 30년 가까이 군출신 대통령이 정부를 이끌어 오면서 거의 성역화되다시피 했던 군부의 위상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최근 군내부에 일고 있는 여러가지 개혁의 소리,민군관계에 대한 재검토 등은 군이 새로운 환경에 적극적으로 적응노력을 벌이고 있는 증좌로 보인다.<김준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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