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이 내게 던진 첫 마디는 이렇게 무뚝뚝했다. 한국 골프의 과거를 돌이켜볼 때 빼놓을 수 없는 또 한 명의 골퍼, 고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이다.
1960년대 중반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가졌던 김씨는 중정부장 재직 당시인 68년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탄생에 힘을 실어줬고, 72년부터는 제4대 대한골프협회장을 지냈다.
김 부장은 세간에 잘 알려진 것처럼 골프광이었다. 하지만 그도 61년 5.16 군사쿠데타가 일어나기 전까지는 골프 문외한이었다. 사실 60년대 초까지 한국에서 골프를 쳤던 군인은 몇 명 안 됐다. 내 기억으로 당시 골프를 쳤던 군인은 김종오 육군참모총장, 서종철.심흥선.문형태 장군 등 손꼽을 수 있을 정도로 극소수였다.
영관급 중에는 성이 정씨인 해군 대령 한 명뿐이었다. 그만큼 골프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스포츠가 아니었다. 5.16 전에는 중령이었던 김 부장이 골프를 접하지 못한 것은 당연했다.
김 부장은 당시 골프를 치는 사람을 보면 "지금 시국이 어떤 시국인데 골프를 치느냐"며 골프채를 빼앗은 일까지 있었다고 한다. 그 정도로 골프를 적대시 했다.
그랬던 김 부장이 골프에 입문해 골프광이 된 것은 63년 7월 제4대 중앙정보부장에 취임한 뒤부터다. 당시 중앙정보부 차장이었던 이병두씨의 권유로 골프를 시작한 것이다. 변호사 출신인 이 차장은 골프를 칠 줄 알았다. 당시 분위기 때문에 혼자 조용히 골프를 즐기던 이 차장은 김 부장에게 골프를 적극 권했다. 아마 자신이 떳떳하게 골프를 즐기려면 부장도 골프를 쳐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까?
그래도 김 부장은 처음엔 골프에 무심했다. 그런데 이 차장의 권유도 있었지만 자기가 모시는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골프에 대한 긍정적인 이야기를 자주 듣게 되자 어느 날 중앙정보부 안에 아예 인도어골프장을 만들었다.
김 부장은 김성윤 프로에게서 골프를 배웠다. 김 부장은 레슨을 받는 기간엔 필드에 나가지 않았다.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성격 때문이었다. 김 부장은 골프채를 잡은 지 7~8개월 뒤 군자리에 모습을 드러냈다. 거의 매일 오전 4시면 골프장에 나와 9홀을 돌고 출근했다. 요즘 말로 '아침탕'을 했던 것이다. 겨울철에도 거르지 않았다. 해가 뜨면 가장 먼저 티오프를 하는 골퍼가 김 부장이었다.
당시 서울컨트리클럽은 전반 9홀 라운드를 끝내면 드라이빙 레인지를 지나가게 돼 있었다. 나는 김 부장과 거기서 마주치곤 했다. 김 부장은 "내가 골프 연습을 하는 것만큼 영어공부를 했다면 통역이 필요없었을 것"라고 말할 정도로 열심히 클럽을 휘둘렀다.
한장상 KPGA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