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랍… 도피… 자살… 추측만 무성/김은정아나운서 실종 1년

중앙일보

입력 1992.09.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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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소재수사 계속 흔적도 못찾아
교통방송(TBS) 여자아나운서 김은정씨(36)가 실종된지 21일로 만 1년을 맞았으나 생사여부조차 불명인채 점차 세인의 기억에소 잊혀져가고 있다.
사건직후 전단 10여만장을 전국에 배포하는 등 공개수사에 나섰던 경찰은 현재까지 수사전담반을 해체하지 않고 소재수사를 계속하고 있지만 전혀 단서를 찾지 못하고 목격자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
김씨는 지난해 추석 전날인 9월21일 오후 9시쯤 서울 창천동 고모부 최모씨(60) 집에서 저녁식사를 마치고 집을 나선뒤 종적이 끊겼다.
지금까지 밝혀진 것은 김씨가 실종당일 서울 B병원에 입원해있던 친구의 문병을 가기로 돼있었으며 식사뒤 최씨 집에서 50여m 떨어진 자신의 자취방에 들러 1백여만원이 든 핸드백과 점퍼를 갖고 외출했다는 사실뿐.
실종직후 ▲현실도피 잠적 ▲교통사고·강도살인 ▲납치·인신매매 ▲자살 등 네갈래로 수사를 벌여온 경찰은 당초 자발적 도피의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았으나 현재는 자살 가능성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다.
경찰은 지금까지 전국의 수녀원·기도원·절 등에 대한 인원변동파악,해외도피 가능성에 따른 출국자명단조사 등 김씨의 소재수사를 해왔을뿐 아니라 납치·인신매매의 가능성도 고려,낙도 및 유흥가에 대해서도 수사를 벌였으나 단서를 찾지 못했다.
경찰은 또 뺑소니 차량이나 강도 등 피살 가능성도 높은 것으로 보고 남양주군 등 서울외곽 야산을 수색했으며 실종일 이후 발생한 여자변시체의 신원확인을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계획적이 아닌 우발적 살인의 경우 증거를 완전히 인멸한채 시체를 처리하는 경우가 거의 없으며 인적이 없는 깊은 산중에 들어가 자살한 경우 오히려 시체를 찾기가 더욱 어렵다는 것이 경찰이 자살 가능성을 크게 보는 이유다.
경찰조사 결과 김씨는 몇번인가 동료들에게 『수면제를 사러 약국에 갔는데 알아보고 팔지 않더라』 『전동차에 뛰어들어 죽고 싶지만 처참한 모습이 보도될까봐 두려워 못하겠다』는 말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가족이나 동료들은 그러나 자살 가능성이 희박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우선 김씨가 결혼·직장문제로 고민한 것은 사실이지만 90년 가을 프로개편당시보다 91년 봄개편때는 오히려 보다 나은 사내입지를 확보할 수 있었다는 것이 동료들의 설명이다.
김씨의 어머니 최모씨(60)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찾아간 일본 역술가의 『살아있다』는 말에 실낱같은 기대를 걸고 딸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으며 TBS의 근무일지에도 김씨의 실종일수가 꼬박꼬박 기록되고 있다.
하지만 여러 가능성만 무성할뿐 단서라고는 전혀 없는 상황에서 목격자가 나타나지 않는한 김씨의 실종은 또 하나의 미스터리로 남을 공산이 크다.
경북 영주에서 의사 집안의 1남5녀중 둘째로 태어난 김씨는 78년 이대 신방과를 졸업한뒤 그해 동아방송 아나운서로 입사했다. 79년 결혼했으나 2달만에 이혼하고 84년부터 5년여동안 KBS라디오에서 리포터로 활약하다 89년 TBS 개국과 함께 자리를 옮겼었다.<이훈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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