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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중앙 시조 대상] 신인상 - 이달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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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장롱의 말-

안방에 놓인 장롱은 고집으로 가득 차 있다
비녀를 빼지 않은 어머니의 팔십 평생
오늘도 오동나무는 안으로 결을 세운다

손이 귀한 집 손자는 언제 보냐고
벽오동 한 그루를 담장 아래 심었을
외갓댁 어른들 한숨이 손끝을 저며온다
대동아 전쟁이란 흉흉한 소문 속에
감춰둔 놋그릇마저 기차에 실려가고
처녀는 장롱 속에서 며칠을 보냈다
일곱의 탯줄을 끊은 가위며 실꾸리며
눈치보며 세들어 산 좀들의 흠집들과
닦아도 추억이 되지 않는 삭아가는 소리들
딸들은 내다버리자고 무심코 말하지만
피란 간 식구들을, 아버지의 임종을
묵묵히 지키고 기다리며 예까지 왔노라고…

솜씨 있는 장인이 만든 오래된 악기의
만가지 소리와 만가지 사연들을
너희가 어찌 알겠냐고 안방에 앉아 일러준다

*** "자유시로 출발…전방위 창작"

중앙 시조대상 신인상 수상자인 이달균(46)씨는 자유시를 쓰다가 시조로 돌아선 흔치 않은 경우다.

이씨는 1980년대 초반 우편으로 독자들에게 시를 보내주고 그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는 통신문학 운동을 벌였다. 첫 시집 '남해행'을 펴낸 87년 무렵에는 최영철.정일근씨 등 자유시인들과 부산.경남 젊은 시인 회의를 함께 하며 막혀 있던 부산과 경남 지역 문인들의 교류를 트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씨는 "내 시가 정형시에 들어맞을 것 같다는 주변의 충고가 있었고, 신춘문예같은 등단 절차를 거치지 않아 발표 지면이 적은 것 같은 느낌도 들어 95년 시조로 장르를 바꾸게 됐다"고 말했다. 이씨는 '시조시학' 신인상으로 시조단 식구가 됐다. 이씨는 "시조의 역사가 7백년이라지만 현대성 획득이라는 측면에서 미흡하다. 설익은 관조에 매몰되어서는 안되고 현대인의 고독.소외.갈등을 정형시에 풀어내야 한다. 그런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서는 단시조.사설시조, 서사구조가 살아있는 연시조 등을 가리지 않고 전방위적으로 끌어안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씨는 또 콩트나 소설.자유시 같은 감각적인 글을 많이 써 본 사람이 시조도 잘 쓸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씨는 "처음에는 내 시의 자유시적 경향을 우려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며 "그러나의 시조가 전체의 스펙트럼을 넓히는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분에 넘치는 격려를 받은 것 같다. '이런 것도 시조가 되는구나'라는 느낌을 주는 작품을 써보고 싶다"고 말했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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