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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과문화

신종 엔터테인먼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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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1900년대 초 미국의 유대인들은 상점 앞에서 단편 영화들을 보여주고 입장료로 5페니(니클)를 받았다. 그것이 바로 니클로데온 극장이었다. 가난한 자, 사회적 소수를 위한 엔터테인먼트 양식인 영화의 또 다른 특징은 빠른 속도의 글로벌 유통이다. 1895년 파리에서 뤼미에르 형제에 의해 영화가 처음 상영되고 1년 뒤 아시아에선 처음으로 1896년 7월 봄베이의 웟슨 호텔에서 영화가 선보였다. 한 달 뒤 중국 상하이에서, 그리고 그 다음해 필리핀의 마닐라와 일본, 조선, 그리고 샴(현재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차이나, 인도네시아 등으로 빠르게 확산된다. 이렇게 미국과 유럽의 관객만이 아니라 아시아 지역에서도 즐길 대중 예술로 시작한 영화는 할리우드가 뉴 할리우드나 블록버스터 등으로 세계를 제압할 때도 지역적.민족적 영화를 만들어 왔다. 내셔널 시네마라고 한다. 20세기 할리우드를 중심으로 한 문화 패권적 세계화에 대한 대응이기도 했던 셈이다. 지역적 성공담으로서의 이러한 내셔널 시네마에 해당하는 것이 일본.홍콩.중국.인도, 그리고 한국과 라틴아메리카의 영화다. 물론 프랑스도 이 중의 하나다.

일본 영화는 국내 관객을 근간으로 자국의 영화 산업과 시장을 안정적으로 운용해 오고 있다. 인도는 힌디어와 벵골어만이 아니라 텔레구.말라얌 등 자국 내의 수많은 언어권 관객이 즐길 수 있는 다문화.다언어 내셔널 시네마로 성황이다. 한국도 영화 생산량이 많은 나라다. 거기에다 1000만 관객 돌파라는 대단한 자국 영화 흥행 기록을 갖고 있다. 최근 한 영화전문잡지는 '스파이더맨 3'가 전국 1800여 개 영화관 스크린 중 816개를 독차지한 독과점 문제를 다뤘다. 현행 와이드 릴리스 배급 체제를 부분 수정해 특정 영화의 스크린 점유율을 30% 이하로 낮춘다거나, 개봉 첫 주의 스크린 점유율을 제한하는 등의 의견이 제시됐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스파이더맨 3'와 경합할 만한 한국 영화가 없다는 데 영화계의 고민이 있다. 아무리 흥행 성적이 뛰어난 외국 영화라 하더라도 1000만 명을 넘은 적이 없다. 따라서 스크린쿼터 축소나 투자 위축 문제와 함께 기획력의 부재가 지적된다. 당분간은 '괴물'과 같은 영화의 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영화계는 주문형 비디오(VOD)의 활성화 및 다양한 영화채널 개발 등으로 돌파구를 찾으려 한다.

이 논의에서 누락돼 있는 것이 앞서 이야기한 엔터테인먼트 영역에서 일고 있는 거대하면서도 점진적인 변화다. TV.컴퓨터게임, 그리고 디지털 기술이 영화의 죽음을 가져올 것이라는 예측은 과장으로 판명됐다. 그러나 사이버 공간에서의 주식.부동산 재테크의 일상화는 신자유주의가 권장하는 개별화된 자본의 운용 방식에 해당한다. 재테크 사이트에는 수많은 리플이 달린다. 재테크가 제공하는 스릴이나 현실 밀착성은 추리소설이나 영화가 주는 장르적 기대감을 훌쩍 뛰어넘는다. 재테크가 엔터테인먼트로서도 역할을 해내는 것이다. 영화가 경쟁해야 하는 것은 그래서 더 이상 컴퓨터게임이 아니라 바로 이 재테크라는 신종 엔터테인먼트다. '부자되세요'라는 주술과 경쟁해야 하는 것이다. 요즘 투자사들이 가장 꺼리는 영화 소재가 가난한 사람의 이야기라고 한다. 럭셔리 열풍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한 조사는 한국 사람들이 가난 그 자체보다 빈부 격차를 불행의 근거로 생각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한국 영화계가 귀 기울여 들을 만한 부분이다.

김소영 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