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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lkholic 채인택 런던취재기 #2] 매일 도보 여행의 즐거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년새 체중 16kg 감량

저는 1995~96년 런던에 연수할 당시 1년 새 체중이 16kg나 줄어드는 즐거운 경험을 했습니다. 그것도 조금씩 조금씩 아주 자연스럽게 말입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런던을 하나라도 더 보려고 시내를 끝없이 걸어다닌 게 가장 큰 이유가 아닌가 싶습니다. 정말 많이 걸었거든요. 학교와 문화공간 등을 오가면서 하루 1-2시간씩은 족히 걸었을 겁니다. 당시 다닌 런던대학교 인스티튜트 오브 에듀케이션(Institute of Education: IOE/런던대 소속으로, 대학원 과정만 있는 학교입니다)가 시내 한복판에 있어 웬만한 곳까진 걸어다닌 게 주효했다고 생각합니다.

승용차는 아예 마련하지도 않았고, 택시도 손님을 모실 경우를 제외하면 거의 이용하지 않았거든요. 런던은 대중교통 수단이 발달해, 대부분의 이동이 지하철.버스에 걷기를 결합한 형태입니다. 그중에서도 걷기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만큼 런던이란 도시가 걷기에 편하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걷는 게 즐겁고 심심하지 않다는 것도 한몫했고요.

▶위 사진은 러셀 스퀘어. 공원으로 이뤄진 광장입니다. 도심 속 쉼터죠. 17세기에 러셀이란 성을 가진 베드퍼드 백작.공작 가문이 런던에 머무는 동안 지내려고 저택을 지었는데 이 공원은 그 정원의 일부라는군요. 아직도 이 공원의 소유권은 러셀 공작 가문의 상속자가 갖고 있습니다만, 실질적으로는 공공 목적으로 기증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귀족 집안이 도시민에게 선사한 휴식처인 셈이지요. 관리는 이 지역을 담당하는 캄덴 구청에서 합니다. 공원 한가운데에 있는 카페에 2005년 7월7일에 있었던 런던 7.7테러 희생자 추도패가 있습니다. 제 걷기의 출발점입니다. [사진=채인택 기자]

▶하루 1-2시간씩 걸어

IOE는 시내 한복판 러셀 스퀘어에 있습니다. 처음엔 노벨 문학상을 탄 철학자이자 문학가, 그리고 사회활동가인 버트란트 러셀의 이름을 딴 것으로 생각했습니다만 아니더군요. 가문 소유 영지에 이 광장을 만든 베드퍼드 백작.공작 가문의 성(姓)인 러셀을 따서 붙인 것입니다. 버트란트 러셀도 이 집안의 일원으로 백작 작위를 보유했습니다.

블룸스베리라고 불리는 그 주변 지역에는 런던대 소속 대학.대학원의 상당수가 몰려 있어 일종의 대학촌 구실을 합니다. 준독립적인 여러 학교가 모인 런던대는 별도의 독자 캠퍼스가 없고, 개별 학교의 독립성이 강해 소속감이 별로 많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곳에는 런던대 본부(Senate House), 학생회(ULU) 회관과 함께 소속 대학 가운데 IOE, SOAS(School of Oriental and African Studies), 버벡 칼리지, 러시아.슬라브 인스티튜트(Institute of Russian and Slavonic Studies: 이 역시 대학원 과정만 있는 학교입니다), 런던대학교 보건대학원(London School of Hygiene and Tropical Medicine) 등이 있습니다. (런던대에 대해서는 다음에 별도로 올리겠습니다)

IOE, SOAS 등 개별 학교의 도서관은 물론 역사적인 대영 도서관(지금은 몇 km 떨어진 세인트 팬크라스 역 옆의 새 장소로 옮겼습니다만)과 바벨탑 모양의 런던대 본부 도서관(Senate House Library)이 있어 책 보기 좋습니다. 옛 대영 도서관은 문이 열리기가 무섭게 과거 칼 마르크스가 앉아 '자본론'을 썼다는 에는 B몇 번인가 하는 좌석을 차지하기 위해 달리는 학생들로 진풍경이 벌어지곤 했습니다.

영국판 9.11테러에 비견되는 7.7 런던 테러 당시 러셀 스퀘어 역에선 열차 폭탄이, 바로 그 옆에 있는 타비스톡 스퀘어에서는 버스 폭탄이 터져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은 비극의 현장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 지역을 미주알고주알 자세히 설명하는 이유는 바로 제 런던 걷기의 출발점이기 때문입니다.

▶위 사진은 러셀 스퀘어 외곽에 있는 마부 쉼터입니다. 빅토리아 시대인 19세기 말에 지어진 것입니다. 마차 가운데 사람을 태우고 요금을 받는 ''대절 마차(Vehicle for hire)''의 마부만 해당이 됐다고 합니다. 1875년 런던에 대절마차 마부 쉼터 기금이 조성돼 시내 전역에 이 같은 시설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곳은 지금까지 남아있는 13곳의 마부 쉼터 가운데 하나랍니다. 런던시 문화재로 보호받고 있습니다. 철거는 불가능하고 수리도 제한되는 거죠.[사진=채인택 기자]

▶박물관·미술관도 걷기에 좋은 곳

우선 학교 바로 옆에 있는 대영 박물관(British Museum)은 저를 끝없이 걷게 한 곳의 하나였습니다. 그 엄청난 규모의 고대 유물이 대단한 매력으로 다가와 한번 들어가면 몇 시간 동안 전시실을 걸어다닐 수밖에 없었거든요. 야외를 걷는 것과는 다르지만 다리를 아프게 한 것은 매한가지였습니다. 걸어서 30분쯤 거리에 있는 내셔널 갤러리(National Gallery)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두 곳은 입장료 없이 기부금으로 운영하고 있어 더 좋았습니다. 입구에 1파운드니 5파운드니 하면서 커다랗게 적어왔는데, 이는 입장료가 아니고 생각이 있는 사람은 그 정도라도 기부함에 넣어달라는 뜻이니 행여 그 앞에 가시는 일이 있다면 들어가셔서 마음껏 보시면 됩니다. 소문에는 약탈문화재로 돈을 받으면 나중에 더 문제가 될 수 있어서 무료 입장으로 했다더군요.

▶걷기의 중독성을 실감하다

연수 당시 저는 학교에서 거의 매일 같이 학교에서 1시간 가까이 걸어 문화복합공간인 사우스뱅크까지 걸어다녔습니다. 당시 영화를 매개로 '미디어와 문화연구(Media and Cultural Studies)'를 전공했기 때문에 사우스뱅크에 있는 문화복합 시설로 가는 것이 학업의 일부였거든요.

물론 전철이나 버스로도 갈 수가 있습니다만, 런던이라는 미지의 도시를 걷는 것 자체가 배우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걷기 시작했는데, 나중엔 그쪽으로 가는 버스가 눈앞에 지나가도 타기 싫더군요. 지금에서야 그게 걷기 중독 증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만. ^^ 자 이제 런던 걷기 시작입니다.

다음 편에는 당시 제가 개발한 런던 시내 걷기 노선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부문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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