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개 교단 '한국교회 대부흥' 100주년 대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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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평양대부흥 운동이 일어나던 시기의 사진. 모여든 부녀자들 사이로 외국인 선교사들도 드문드문 보인다.

개신교 보수와 진보를 대변하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를 비롯, 23개 교단이 모여 '2007 한국교회 대부흥 100주년 기념대회'를 개최한다. 실행위원회 황정훈 목사는 "그동안 교회는 자본주의와 맞물려 양적인 성장에 무게를 둔 '성장 제일주의'로 치달았다. 그 와중에 질적인 성장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한 점이 크다. 이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는데 공감대를 모았다"며 이번 기념대회의 배경을 설명했다.

그래서 슬로건도 '교회를 새롭게, 민족에 희망을'이다. 100년 전 평양 대부흥운동의 핵심인 '철저한 회개'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장로회신학대학교 김인수 교수는 "평양 대부흥운동은 한국 교회가 뿌리를 내린 결정적 전기였다"며 "1903년 원산의 선교사 집회에서 로버트 하디가 회개한 것이 한국교회 부흥 운동의 첫 봉화가 됐다"고 지적했다.

◆ 평양 대부흥 운동=1903년 캐나다인 선교사 로버트 A. 하디(1865~1949)는 선교 활동에 절망적이었다. 3년 동안 강원도 일대에서 선교를 했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역에 실패했다"는 그에게 성경 공부를 위한 교안 작성 요청이 들어왔다. 주제는 '한국 교인들이 진정한 참회를 하면서 신앙생활을 하는가'였다.

그는 자신에게 먼저 물음을 던졌다. '나는 참으로 하나님께 회개하고 선교사로서 자격이 있는가.' 그는 그만 무릎을 꿇고 말았다. 그리고 동료 선교사와 한국인 교인 앞에서 절규했다. "나는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 없는 심정으로 나 자신의 교만함과 신앙 없음, 그리고 이렇게 돼버린 나의 잘못을 고백합니다."

그런데 하디 선교사는 이런 '통절한 회개'를 통해 성령을 체험했다고 한다. 하디는 집회 때마다 먼저 자신의 죄를 참회했다. 외국인 선교사의 공개적인 참회 앞에서 교인들의 회개도 터져나왔다. 이후 서울, 송도, 제물포 등 각지에서 집회 요청이 쇄도했다. 특히 1907년 평양에선 '통절한 회개'를 통한 부흥운동이 들불처럼 일어나면서 이후 기독교가 한반도 전역으로 뻗어나가는 초석이 됐다.

◆ 부흥운동 핵심은 '회개'=이번 기념대회에서 가장 큰 행사는 '상암대회'(7월8일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다. 실행위원회측은 "예상 인원은 10만 명이다. 개인의 회개, 교회의 참된 갱신, 이를 통한 사회적 변화에 무게 중심을 두는 대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주최측은 정치인이 단상에 오르거나, 좌석을 따로 배치하는 일도 배제할 방침이다. 실무대표 대회장인 김삼환 목사는 "이번 100주년 대회를 한국 교회가 새롭게 거듭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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