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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선비의 발길을 따라 '정원 걷기' 매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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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걸으면 뱃살이 빠지고 골격이 튼튼해 진다는 것은 이제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상식. 그러나 건강을 위해 일부러 걷는다는 게 생각보다 실천이 어렵다. 걷기가 뛰기와 다른 점이 자연스럽게 주변을 둘러보게 된다는 것인데, 앞을 봐도 옆을 봐도 삭막하게 시커먼 이 도시에서 걷는다는 것은 10분을 버티기가 힘겹다. 이럴 때, 초록 이끼가 촘촘히 박힌 동그란 연못과 시원한 정자, 그리고 짙은 자줏빛 모란이 흐드러지는 아름다운 정원을 찾아 즐겁고 행복하게 걸어보는 것은 어떨지.

◇왕과 비의 발길을 따라 '비원'=창덕궁에는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비밀의 정원이 있다. 이곳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아름다움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 25년간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던 이곳이 2004년 5월부터 모습을 드러냈다. 인터넷 창덕궁 홈페이지(www.cdg.go.kr)를 통해 사전예약을 한 사람 중 선착순 일부만이 관람을 할 수 있다.

비원을 걷기 위해 창덕궁에 들어서면 곳곳에 피어있는 모란꽃들이 발길을 감싸주고 수백년 된 느티나무가 그늘을 드리워 걷는 걸음마다 편안한 마음이 들게 한다. 500년 된 느티나무 그늘을 따라 흙길을 걷다보면 어느새 왕과 비가 된 듯한 기분에 취해 설움이 복받치던 직장에서의 아픈 기억은 깨끗하게 사라진다. 이어 임금과 신하가 술잔을 띄우고 시를 읊었다는 옥류천을 따라 한걸음씩 옮기다보면 왜 걷기가 달리기보다 좋은지 그 이유를 온몸으로 느끼게 된다. 걷는 게 달리는 것보다 좋은 결정적 이유는 풍광을 즐길 수 있다는 데 있고, 걸으면서 즐기는 풍광 가운데 비원만한 곳은 없기 때문이다.

비원은 조선 역대 왕들의 애정이 묻어나는 곳이다. 이곳을 사랑한 영조와 정조는 여기에 있는 조합루와 영화당의 현판을 직접 썼다. 연꽃을 아꼈던 숙종은 애련정이라는 연못을 만들어 하얀 연꽃을 감상했다. 인조는 여기에 있는 커다란 바위를 깎아 둥근 구멍을 만들어 물이 떨어지게 만들기도 했다. 폄우사에서는 왕세자들이 독서를 즐겼다. 이처럼 조선의 임금들이 이 정원을 얼마나 사랑하고 아꼈는지를 발걸음마다 느끼며 걷다보면 두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밋밋한 도시의 거리와 헬스클럽 트레드밀에 비할 바가 못된다.

5월 관람 예약은 이미 만료됐고 6월 관람에 대해 21일 9시부터 예약할 수 있다. 오전이 지나기 전에 마감이 되는 경우가 많다. 예약을 못했을 경우 매주 목요일 자유관람 시간대를 이용하면 되는데, 일부 지역을 관람할 수 없으며 안내원의 안내를 받을 수 없다.

☞옥류천 소요암에는 인조의 玉流川(옥류천)이라는 어필 위에 숙종의 오언절구시가 새겨져 있다.

飛流三百尺 폭포는 삼백척인데

遙落九天來 멀리 구천에서 내리네

看是白虹起 보고 있으면 흰 무지개 일고

飜成萬壑雷 골짜기마다 우뢰소리 가득하네

※가는 길

1. 지하철 : 종로3가역(1,3,5호선)에서 6번출구에서 도보로 10분, 안국역(3호선)에서 3번출구에서 도보로 5분

2. 일반버스 : 1012(초록색), 151,162, 171, 172, 272, 601(푸른색)

주차장은 무료이나, 혼잡하므로 가급적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요일제를 시행중이며(월 1,6 화 2,7 수 3,8 목 4,9 금 5,0) 관람시간 동안만 주차할 수 있음.

◇조선 선비의 가지런한 발걸음 따라 '소쇄원'=주말에 걷기 좋은 곳으로는 전남 담양에 위치한 '소쇄원'이 있다. '소쇄'라는 이름처럼 정말 맑고 깨끗한 곳이다. 조선 최고의 민간정원으로 꼽히는 이 곳은 입구부터 굵고 푸른 대나무가 쭉쭉 뻗어 답답했던 기분을 시원하게 풀어준다. 조그만 연못과 계곡을 따라 살포시 발을 떼다보면 당장이라도 조선 선비의 가지런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대나무와 매화, 동백, 오동, 배롱, 산사나무, 측백, 치자, 살구, 산수유 등의 나무는 창포, 국화 등의 꽃과 어우러져 이곳에 들어온 사람들이 걷기를 멈출 수 없게 만든다. 비가 오는 날 우산을 쓰고 걸으면 더욱 환상적이다.

소쇄원은 조광조의 제자 양산보가 만들기 시작해 15대째 가꾸어지고 있는 정원이다. 1981년 국가 사적 304호로 지정돼 한국 민간 정원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다. 주변 자연에 잘 어우러진 건축물과 조경물등이 자연에 대한 인간의 순응을 잘 나타내 도가적 삶을 산 조선 선비들의 정서를 나타내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돌담 사이로 핀 작은 들꽃과 곁가지 없이 곧게 자란 대나무에서 왕족의 화려한 비원과는 또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정원에서 한 삼십분 걷겠다고 전라도 광주까지 가는 게 무모하다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소쇄원은 관련 연구논문만 수십편이 나올 정도로 조경학적, 역사학적으로 의미가 있는 정원으로 꼽힌다. 세상과 세월을 등지고 산 선비의 정신을 느끼고 자연친화적인 공간배치를 둘러보기에 이보다 더 나은 곳이 없다. 특히 계곡의 자연 모습 그대로를 따라 건축물과 수목을 조성했기 때문에 인공적인 느낌의 현대 정원과 달리 인간과 자연이 빚어내는 조화의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그리 넓지 않기 곳에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기 때문에 잔 걸음으로 걸으며 찬찬히 둘러보기에 딱 좋다. 자연을 잊고 하루하루 쫓기듯 살아온 도시인이 부릴 수 있는 최고의 사치인 셈이다.

※가는 길

1. 호남고속도로 → 동광주I.C에서 광주로 진입, 300m쯤 달리다 왼쪽(광주교도소 방향) 887도로지방도로 (5.3km즘 남하) 식영정앞 → (1,2km)좌회전 → 250m → 소쇄원(식영정과 소쇄원 사이 삼거리에서 남쪽으로 방향을 돌리면 충장사와 무등산가는 길)

2. 광주 시내에서 가는 길-광주 동신전문대 앞에서 187, 225번 버스를 이용해 광주호를 지나 소쇄원 앞 하차 (30분 정도 소요, 40~50분 간격) 주광천동터미널에서 광주 동신전문대로는 311번 이용

이여영 기자

아름다운 중독 'Walkholic' 걷기에 홀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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