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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인 듯, 그림인 듯 … '먹의 교향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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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서예는 접(接)의 예술입니다. 붓끝과 종이의 만남은 사랑하는 남녀가 입맞춤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 속에 무한한 상상력과 생명력이 숨 쉬고 있지요."

1일~27일 서울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초대전을 여는 서예가 동강(東江) 조수호(83.사진)는 "예술의 생명은 독자성에 있고 그 정신은 새로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강은 지난해 11월, 올해 2월 각각 차례로 작고한 일중(一中) 김충현(金忠顯), 여초(如初) 김응현(金膺顯)과 함께 현대 서예계를 대표하는 작가다.

이번 전시엔 농익은 한문.한글 글씨와 추상화에 가까운 묵조, 문인화, 도자 작품 등 200여 점을 내놓았다.

"21년 만의 개인전입니다. 개인전은 내가 공부한 것을 보이는 일인데, 제 공부가 부족한 듯해서 그동안 망설였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경지에 도달했다는 자부심을 갖게 됐습니다."그는 "역시 '나이가 들어야, 해가 차야 글씨가 제 맛이 난다'는 옛 말씀을 실감한다"고 덧붙였다.

동강은 특히 행서와 초서를 "현대 서예의 꽃"이라고 말했다. "서예의 예술성, 독자성, 현대성은 행서와 초서에서 비로소 드러날 수 있습니다. 다른 서체와 달리 자유로워 회화적인 조형이 가능하기 때문이지요."

'그림과 글씨는 본디 같은 것'이라는 시서화 일치의 정신을 추상화의 경지에까지 밀고 나간 것이 그가 10년전 시작한'묵조(墨調)'연작이다.

"서양 추상회화는 동양의 선, 즉 필획이 없습니다. 하지만 묵조에는 서법을 기초로 한 필획이 있지요. 슈베르트나 베토벤이 음악 고저장단이나 리듬의 조화로 나타나듯 먹과 물, 작가의 정신이 조화를 이룬 게 묵조입니다. 단순히 글자를 넘어서 필묵의 조형세계를 보여주는 것이지요. 한 마디로 먹의 교향악에 해당합니다."

서울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그는 26살 때 제1회 대한민국미술대선에서 '어부사'로 특선을 수상하면서 서예의 길로 들어섰다. 62년 최연소 국전심사위원이 됐고 74년 국전초대작가를 지냈다. 서울교대 교수, 한국교육서예가협회 회장을 지냈으며 국제서법학술대회 등을 통해 한국 서예의 국제화에도 크게 이바지했다.

그동안 세운상가의 작업실에 매일 출근해 "잠자는 시간 7시간 정도만 빼면 하루종일 용맹정진해왔다"는 동강은 "날보고 팔순 청춘이라고들 하더군요. 앞으로의 작업이 더 기대된다고 하니 숨이 붙어있는 한 열심히 하려고 합니다"고 말했다. 02-580-1475

조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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