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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딛고 건너야 할 ‘苦行의 사막’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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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호 17면

정재원 기자 

사막의 태양은 뜨겁다.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다. 3월 11일 오후 2시. 수은주가 섭씨 37도를 오르내린다. 타는 듯한 갈증과 대지에서 솟구치는 열기가 몸속의 에너지를 단숨에 바닥으로 끌어내린다. 그러나 골프의 운명은 자연과의 싸움. 구도자의 심정으로 클럽을 움켜쥔다. 어디에선가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가 사막여우와 함께 뛰쳐나올 것만 같다. 사막 한가운데서 골프 클럽을 휘두르는 어른들을 보고, 어린 왕자는 웃을지도 모른다.

투어 에세이 ② PGA 웨스트 스타디움 코스

PGA 웨스트 스타디움 코스는 캘리포니아 라 퀸타의 사막 한가운데에 있다. 나무 한 그루 자라지 않는 검은 돌산이 병풍처럼 둘러선 지형 위에 호수를 만들고 잔디를 깔았다. 아널드 파머 코스, 잭 니클로스 코스, 그레그 노먼 코스 등 모두 6개 코스가 있다. 그 가운데 스타디움 코스는 미국에서 어려운 골프장으로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 코스 디자이너 피트 다이가 프로 선수와 심리전을 벌이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 설계했다는 일화도 있다.

최근엔 PGA투어 퀄리파잉 스쿨 최종 예선전이 이 코스에서 열린다. 그래서 PGA투어의 마지막 관문을 통과하지 못한 선수들이 흘린 피눈물이 사막 곳곳에 배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PGA 웨스트 앞에서 ‘어린 왕자’를 떠올린 것은 다음 구절 때문이다.

“사막은 아름다워.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디엔가 샘이 숨어 있기 때문이야. 눈으로는 찾을 수 없어. 마음으로 찾아야 해.”

사막에 숨은 샘을 찾아 떠나는 심정으로 맞은 1번 홀. 몇 번이나 속으로 다짐한다. 한 샷 한 샷 신중하리라. 티샷을 하기 전에 스타터가 한마디 한다.

“스타디움 코스는 무척 터프하다. 프로들도 고개를 가로저으며 항복하기가 예사다. 사막을 건널 준비는 되셨는지.”

스타터의 이 한마디에 블루 티잉 그라운드를 사용하려다 레귤러 티로 발걸음을 돌린다. 블루 티의 전장은 6739야드, 레귤러는 6166야드.

1번 홀의 이름은 ‘서곡(prelude)’이다. 페어웨이의 굴곡이 예사롭지 않다. 그린 주변의 작은 언덕은 무덤이 줄지어 늘어선 듯하다. 보기 정도 한다면 사막을 건너기 위한 전주곡으로는 무난하다.

‘분화구(2번 홀ㆍCraters)’를 지나면 ‘초승달(3번 홀ㆍCrescent)’이 반긴다. ‘아멘’이란 이름을 가진 6번 홀(파 3)에 서면 한숨이 나온다. 거대한 워터 해저드가 골퍼를 윽박지른다. 거리는 블루 티잉 그라운드를 사용할 경우 223야드, 레귤러 티에서는 187야드나 된다. 간신히 파로 막고 나면 ‘아멘’ 소리가 절로 나온다. ‘돌산(10번 홀ㆍQuarry)’을 넘으니 ‘동굴(14번 홀ㆍCavern)’이 입을 벌린다. 깊이가 어른 키의 두세 배나 되는 벙커에서 허우적거리다 보면 트리플 보기가 예사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15번 홀ㆍTurning Home)’. 등 뒤로 해가 뉘엿뉘엿 진다. 해가 떴다가 지고, 달이 차면 기울 듯 인생도 그런 걸까. ‘어린 왕자’를 읽고 가슴 설레던 소년은 더 이상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그림에 감동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영화 ‘편지’에 나온 이 대사 한마디를 어린 왕자에게 전하고 싶다.

“한때 절망으로 울며 건너던 그 사막을, 나는 이제 사랑으로 건너려 한다. 어린 새의 깃털보다 더 보드랍고, 더 강한 사랑으로….”

1998년 타계한 미국의 스포츠 칼럼니스트 짐 머리는 “스타디움 코스에서 빠져나가려면 낙타 한 마리와 카누, 그리고 지혈을 위한 붕대를 준비하고 목사님 한 분도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낙타는 길고 긴 사막을 지나기 위해, 카누는 6번, 7번, 12번, 17번, 18번 홀 등에 자리 잡은 워터 해저드를 건너기 위해, 그리고 붕대는 난코스와 싸우며 깊어진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필요하다. 그리고 얼마나 자주 ‘아멘’을 외쳐야 할지 모르기에 목사님과 동행해야 한다.

아름다운 지옥 17번 홀(파 3)
검은 돌산이 병풍처럼 둘러선 가운데 사방이 물로 에워싸인 아일랜드 그린이 발 아래 굽어보인다. 숨이 멎을 만큼 아름답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풍경에 걸맞지 않게 17번 홀의 별명은 이름부터 섬뜩한 ‘알카트래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앞바다에 홀로 떠 있는 섬, 한 번 갇히면 그 누구도 탈출하지 못했다는 악명 높은 감옥. 영화 ‘더 록’의 무대가 된 곳이다.

프로 선수들이 대회 때 사용하는 블랙 티에선 거리가 168야드. 레귤러 티의 거리는 131야드다. 티잉 그라운드에 서면 누구나 압박감을 느끼게 된다. PGA 웨스트는 경치가 아름다울수록 난이도가 높은 신기한 골프장이다.

누구든 거리와 방향을 정확하게 맞춘 샷이 아니면 대참사를 면할 길이 없다. 해마다 이 홀에서 수많은 프로 선수가 좌절하고 마는 이유가 여기 있다. 보통의 경우 핀 위치와 관계없이 그린 앞쪽에 공을 떨어뜨리는 게 좋다. 그린 위에 공을 세우는 게 관건이기 때문이다. 그린 중앙을 노리고 샷을 했다가는 공이 그린을 지나쳐 물속에 빠지기 십상이다. 그린 앞쪽에 떨어뜨려 조금만 구르게 한 뒤 2퍼트로 파 세이브만 해도 대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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