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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피치] 이승엽에게 권하는 日문화 비평서 3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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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는 문화다. 공을 던지고 방망이로 때리며, 담장을 넘기면 홈런이라는 것은 같지만 한국.미국.일본에서 그 야구의 색깔이 조금씩 다른 것은 그 '문화'의 차이가 야구에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도 있듯이 일본에 진출하는 이승엽(27)에게는 일본 문화에 적응하고, 생리를 이해하는 게 배트 스피드를 높이는 것보다 중요할 수 있다.

일본 야구는 흔히 '작은 야구'로 표현된다. 투수와 타자 간의 거리가 짧고 펜스가 타석에서 가까이 있다는 '규모'의 의미가 아니다. 세밀한 부분,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작은 심리적인 부분까지 파고 들고, 그 차이에서 성공과 실패의 명암이 갈라진다고 해서 붙여진 '세밀한 야구'라는 의미다. 또 미국 야구가 '이기는 야구'라면 일본 야구는 '지지 않는 야구'다.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기보다 상대가 허점을 보일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그런 컨셉트의 야구다.

이런 일본 야구의 특성을 이해하고, 거기에 적응하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도록 이승엽에게 세권의 책을 권하고 싶다. 이승엽은 일본 진출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비디오 테이프를 통해 상대 투수들을 충분히 연구하겠다"고 말했지만 그건 필요충분조건이 아니라 필요조건 정도다. 더 충분한 준비를 위해서는 일본 야구의 저변에 흐르는 '숨결'을 공유해야 한다. 이는 운동장에서 같이 뛴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같은 생각을 해야 얻어지는 것이다. 같은 생각을 하기 위해서는 운동장 밖에서도 그들과 동일한 삶을 살아야 한다.

첫째는 이어령 중앙일보 고문이 쓴 '축소지향의 일본인'이다. 이 책은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보다 일본의 문화를 더 예리하게 분석했다 해서 호평받은 책이다. 책 중간중간에는 야구에 그대로 적용할 만한 부분도 많이 등장한다.

'가마에(構え)'-모든 동작의 기본을 하나로 축소시킨 형태-라든가, '잇쇼겐메이(一所懸命)'-한곳을 목숨 바쳐 지킨다는 말로 정신력을 중요시하는 일본의 문화를 상징한다-등은 일본 야구에 그대로 대입해도 무방한 용어들이다. 또 '렌가(連歌)'와 '빠찡꼬'를 통해 일본 야구의 독특한 부분을 이해시켜주기도 한다.

둘째와 셋째는 로버트 화이팅이라는 미국 언론인이 일본에 체류하면서 쓴 '국화와 배트''미국 야구, 일본 야구'(국내 번역서 제목:원제는 '유 갓투해브 와')라는 책이다. '국화와 배트'는 국내 번역서가 없어 원서를 구해 읽어야 하지만 '다행히' 셋째 책은 번역서가 있다.

두권 모두 이방인의 눈에 비친 일본 프로야구의 생소한 문화를 잘 표현한 책이다. '국화와 배트' 또한 훗날 미국 진출을 준비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영어공부삼아 읽으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비디오로 분석할 수 있는 부분은 야구의 '하드웨어'다. 그리고 세권의 책 속에는 일본 야구의 저변에 깔린 '소프트웨어'가 있다. 이 두 가지를 모두 알아야 그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고 본다.

이태일 야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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