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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너무 순결한 당신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6호 14면

“결혼한 지 5년이나 됐는데 제 아내는 아직도 처녀입니다.”
지칠 대로 지친 남편 C씨의 표현에는 분노 반, 답답함 반이 섞여 있다. 연애할 때야 혼전순결을 지키는 아내가 대견스럽고, 엄격한 가정에서 자란 아내의 다소곳한 모습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결혼 후 관계를 하려면 겁에 질려 피하거나 남편을 밀쳐내기 일쑤였다. 어떤 땐 달래고 어떤 땐 그것도 못 참느냐고 윽박질러 봤지만 단 한 번도 삽입에 성공하지 못했다.

두 사람의 속사정을 모르는 주변에선 아이는 언제 가지냐고 성화다. 혹시 남자 구실을 못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의 눈초리도 받았고, 묘한 보약꾸러미도 받았다. 이혼 위기까지 몰리자 마지못해 병원을 찾은 C씨의 아내는 죄인처럼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다들 저 같은 여자는 처음 봤대요. 이런 병도 있나요?”

사실 필자의 진료실을 찾는 여성 중에는 C씨 같은 이들이 꽤 있다. 바로 ‘질경련증’이란 성기능장애를 앓고 있는 여성들이다. 질경련증은 성행위에 대한 극심한 두려움 때문에 질 바깥쪽 3분의 1에 해당되는 근육이 경련을 일으키거나 경직되어 삽입이 불가능한 질환이다. 이런 증상을 보이는 여성들은 해부학적으로는 완전 정상이다.

질경련증 부부들은 아이를 못 갖거나 이혼의 위기에 몰려서야 병원을 찾는다. 임신이 되지 않는다고 불임치료를 권고 받지만, 정상적인 성행위를 못하는 것이 근본 문제다. 그렇다고 환자가 의식적으로 그러는 것은 절대 아니다. 간혹 노력이 부족하거나 사랑하지 않아 그럴 거라 비난하는데, 이는 병을 잘 이해하지 못해 생긴 오해다.

질경련증은 일종의 공포증이다. 고소공포증이나 비행공포증과 같은 맥락이다. 뭐가 그렇게 두려울까 싶지만, 당사자들은 거의 죽을 것 같은 공포심을 느낀다. 질경련증 환자는 미모사와 같다. 살짝만 건드려도 화들짝 놀라 움츠러드는 미모사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그런 반사작용을 보인다. 질경련증 환자는 성행위를 부정적이고 위험한 것으로 인식해 피해야 할 위기상황으로 받아들인다. 따라서 성행위를 하려고 하면 환자의 심신이 자동으로 자기방어를 하는 것이다.

병원에 오기까지 시간이 꽤 걸리지만, 질경련증은 심리치료와 행동치료를 병행하면 거의 대부분 쉽게 완치된다. 이 증상을 보이는 아내를 윽박지르거나 비난하는 것은 백해무익, 오히려 역효과만 낸다.

그렇게 예민했던 C씨가 치료를 받고 최근 임신에 성공했다며 찾아왔다. “제가 그동안 왜 그렇게 겁냈는지 모르겠어요.” 웃으며 이야기하는 환자에게서 더 이상 미모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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