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불행하게도 최근 우리 역사학계는 인물사 연구가 기대만큼 활발하지는 못했다. 역사를 통찰하는 인물사전은 고사하고 단편적인 인물 연구 역시 개인의 업적을 기리는 위인전 수준의 책이 많은 게 현실이다.
지난 8월 퇴임한 서울대 국사학과 한영우(65)교수의 정년을 기념하기 위해 동료와 제자 등 역사학자 63명이 각각 역사적 인물 한명씩을 맡아 집필한 이 책이 더욱 반가운 것은 이 때문이다.
이 책은 단군과 주몽에서부터 박정희.장준하에 이르기까지 한국사에 뚜렷한 행적을 남긴 인물 63명의 열전이다. 사실 63이라는 숫자는 5천년 한국사를 모두 보여주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숫자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일반인에게 생소한 이름과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 인물을 포함하고 있어 우리 인물사 연구의 폭을 한 보폭만큼 더 넓힐 수 있었다.
이 열전의 또 하나의 미덕은 철저한 고증이다. 비록 약전(略傳)이라고는 하나 집필자 모두 이번 작업을 위해 해당 인물에 대한 고증을 새로 했기에 기존 출판물의 오류를 수정할 수 있었다. 기존의 평가와는 다른 시각으로 접근한 인물 해석도 눈에 띈다.
'삼국사기'를 쓴 김부식은 훌륭한 역사학자로서의 공과 함께 사대주의자라는 오명을 쓰고 있었다. 그러나 대구가톨릭대 강종훈 교수는 김부식을 합리적인 현실주의자로 재평가한다. 당쟁을 일삼다 조선을 자멸시킨 인물로 손꼽히는 송시열 역시 국민대 지두관 교수로부터 개혁적인 사상가로 재조명됐다. 서울대 송기호 교수는 발해 3대 왕으로 57년이나 재위했던 대흠무를 망각 속에서 끄집어 냈다.
안혜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