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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승희 가족, 산산이 부서진 '아메리칸 드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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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조승희씨가 부모와 살던 버지니아주 센터빌의 타운하우스 앞에서 18일 한국 특파원들과 외국 언론이 취재경쟁을 하고 있다. [워싱턴 지사 = 허태준 기자]

18일 오전 서울 도봉구 창동의 다세대주택 밀집지역.

2층짜리 연립주택이 촘촘히 들어선 좁은 골목 길에 CNN, AP통신, 일본의 NHK 등 외신을 포함한 30여 명의 취재진이 몰려들었다. 버지니아공대 총기 난사 사건의 범인 조승희씨와 그 가족이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살았던 곳이다. '이방인'들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주민들은 놀라는 표정이 역력했다.

1984년 서울에서 태어난 조씨는 91년부터 아버지(62)와 어머니(59), 누나(26)와 함께 이곳에서 1년가량 살았다. 방 두 칸에 화장실 하나가 있는 열 평 남짓한 사글세 10만원의 반지하 집이었다. 원래 20여 평 규모로 지어진 지하실을 두 가구가 나눠 쓰는 형태다. 낮인데도 햇볕은 거의 들지 않았다. 당시 조씨 아버지는 쌍문동에서 헌책방을 운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집주인 임모(67.여)씨는 "계약 기간이 끝나기 전에 조씨 가족이 미국으로 떠났다"고 전했다. 당시 조씨의 어머니는 임씨에게 "한국에서 살기가 너무 힘들어 미국으로 가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배운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지만 미국이 한국보다는 돈 벌기가 쉽지 않겠느냐. 아이들만이라도 좋은 곳에서 공부를 시키고 싶다"고 울먹인 것으로 전해졌다.

◆누나는 명문대 졸업=조씨 아버지는 92년 11월 '아메리칸 드림'을 안고 가족과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미시간주 디트로이트를 통해 미국에 입국한 조씨 부모는 일단 한식당에서 허드렛일을 했다. 식당 수입이 형편없었지만 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며 한 푼 두 푼 모아갔다. 이들은 조씨의 할머니, 삼촌, 고모 두 명까지 초청했다.

조씨 가족은 97년 마침내 버지니아주 센터빌에 자리를 잡았다. 센터빌은 워싱턴 DC 근교에 위치한 신흥 중산층 거주지다. 이곳에서 조씨 아버지는 지인의 소개로 세탁소를 차렸다. "항상 미소를 짓는 친절한 사람들"이라고 이 지역 주민들은 전했다. 조씨 부모는 한국인 특유의 성실성을 바탕으로 수입을 늘려나갔다. "10년 가까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했다"는 것이 현지 주민들의 얘기다.

조씨 가족은 현재 이곳에서 우리 돈으로 시가 4억~5억원을 호가하는 방 세 개에 2층짜리 타운하우스에 살고 있다. 이들의 소유인지, 임대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조씨 누나는 2000년 명문 프린스턴대에 입학했다. 경제학을 전공한 조씨 누나는 재학 시절 미 국무부와 태국 주재 미국 대사관에서 인턴십을 하기도 했다. 이곳에서 스톤 중학교와 인근 섄틸리 소재 웨스트필드 고교를 졸업한 조씨도 2002년 버지니아공대에 들어갔다. 메릴랜드에서 청소업을 하는 조씨 삼촌도 경제적으로 안정된 삶을 꾸려가면서 이들 가족의 '아메리칸 드림'이 이뤄지는 듯했다.

◆접근 금지 명령까지 내려져=하지만 총기 난사라는 조씨의 어처구니없는 행동으로 이들의 꿈도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사건 발생 16시간여 만인 16일 오후 11시(현지시간) 경찰은 조씨 가족 집에 들이닥쳤다. 희망의 땅이 절망의 땅으로 바뀐 순간이었다. 경찰은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여 10박스가량 분량의 자료를 확보했다. 인근에는 접근 금지 명령이 함께 내려졌다. 현지 경찰 당국의 관계자는 "조씨 가족들이 있는 곳을 알고 있다고 해도 알려줄 수 없다"고 말했다.

한편 2000년부터 2년간 센터빌의 한 한인교회에서 고등학생이었던 조씨를 지도했던 K목사는 "승희는 누구와도 어울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일종의 자폐증을 앓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승희가 교회에서 간식을 제공할 때도 따로 구석에 앉아 먹었다"고 덧붙였다. "승희 어머니가 '아들의 성격이 바뀌도록 해 달라'고 특별히 부탁해 남다른 관심을 기울였지만 특별한 효과를 보지 못했다"고도 했다. K목사는 "매주 토요일 내 차에 승희를 태우고 집과 교회 사이를 왕복했는데 승희가 먼저 말하는 적도 없고 내 질문에 '예, 아니요' 이상으로 대답하지도 않았다"며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경기도 일산에 살고 있는 조씨의 외할아버지는 주변 사람들에게 "할 말이 없다. 미안한 마음뿐이다"는 말만 되뇌며 참담함을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민 가기 직전 조씨가 다녔던 초등학교 2학년 담임 노모(65.대구시 수성구)씨는 "아주 평범한 아이였는지 전혀 기억이 없다"고 말했다.

박성우.이현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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