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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허수아비 논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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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상대방을 공격하기 쉬운 가공의 인물로 바꿔라. 그리고 그 허수아비를 한 방에 날려 버려라."

선거전이나 선동적인 대중연설에서 많이 쓰이는 고전적인 논쟁술인 '허수아비 논법(straw man argument)'이다. 상대방의 주장을 약점이 많은 주장으로 슬쩍 바꿔놓은 다음 일방적인 공격을 퍼부어 패퇴시키는 것이다. 그러고는 흡사 상대방의 주장이 무너진 것처럼 기정사실화한다.

예컨대 "어린이가 혼자 길가에 나다니게 하면 안 된다"는 주장에 대해 "그렇다면 아이를 하루 종일 집 안에 가둬 두란 말이냐"고 받아치는 식이다. 이를 반박하려면 허수아비 주장이 원래의 주장과 다르다는 점을 해명해야 하는데 왠지 구차하고, 변명처럼 들린다. 이 때문에 이 고도의 말싸움 기술에 걸려들면 웬만해서 빠져나오기 힘들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허수아비 논법을 자주 구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2005년 말 '이라크에서 철군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자 "지금 당장 미군을 철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그러면 크게 실수하는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철군 고려'가 '무조건 즉시 철수'로 둔갑한 뒤 '중대한 실수'로 낙인 찍힌 것이다. 이 판에 철군 얘기를 잘못 꺼냈다간 '테러와의 전쟁'에 반대하는 비애국자로 몰리거나, 미군의 안전을 도외시하는 무책임한 인사가 되기 십상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어법은 이런 점에서 부시 대통령과 많이 닮았다. 그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이후 대북 지원을 중단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그럼 전쟁을 하자는 말이냐"고 되받아쳤다. '대북 지원의 중단'이 '전쟁'으로 치환된 뒤 일방적으로 매도된 것이다.

허수아비 논법의 문제는 애초부터 상대방의 주장을 왜곡함으로써 공정한 논의 자체를 막는 데 있다. 잘못된 논거를 바탕으로 대중을 호도해 그릇된 결론으로 유도하는 것이다. 그래서 논리학은 이런 논법을 부도덕한 논리적 오류의 하나로 지목한다. 당장 눈앞의 말싸움에서는 이길 수 있을지 모르지만 결과적으론 모두에게 손해를 끼치기 때문이다.

한승주 고려대 총장서리는 지난주 "(3불정책의 하나인) 기여입학제가 지푸라기 인형(허수아비) 전략의 성격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대학이 3불정책에 반대하면 흡사 돈만 내면 아무나 대학에 합격시켜 주자고 요구하는 것으로 호도한다는 것이다. 정책의 실패가 아니라 논리적 오류부터 바로잡아야 할 것 같다.

김종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