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차 남북고위급 회담을 보고…/안병준 연세대 교수(긴급진단)

중앙일보

입력 1992.02.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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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핵」 해결없인 남북화해 안된다/사찰 불응땐 경협유보등 적극대응 필요/합의서 실천장치 미흡… 대화는 신중히
평양에서 열렸던 제6차 남북고위급 회담에서 「남북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와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을 발효시켰고 정치·군사 및 교류협력에 관한 3개 분과위원회를 발족시키기로 한것은 남북화해의 개막을 상징한다.
그러나 북한이 핵시설에 대한 남북동시사찰과 국제사찰에 여전히 주저하고 있는 것은 이 역사적 문건과 합의가 과연 이행될 것인가를 의심스럽게 만들고 있다.
남북한의 총리들이 이러한 합의를 발효시킨것 그 자체가 의의있는 일이다.
그러나 남북화해를 정착하려면 북한 당국이 구사고를 버리고 합의를 실천해 언행일치를 보여주어야 한다.
그들이 이것을 행동으로 나타낼때까지 우리는 경각심을 버려서는 안될 것이다.
남북합의서가 정치적 화해와 군사적 신뢰구축을 약속한데는 세가지 의의가 있다.
첫째,합의서는 두체제가 상호인정하고 현정전상태를 보다 공고한 평화상태로 전환하기 위해 공동노력하겠다는 것을 규정했다.
이것은 민족자결주의의 결실로 높이 평가할만한 것이다.
둘째,합의서는 남북이 추구해온 이익들을 동시에 규정해 공동이익 모색을 개시했다.
셋째,남북은 이 문건들의 이행을 관리한 분과위원회들을 발족시켜 평화·협력 및 합의과정을 제도화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북한도 통일을 하나의 과정으로 보는 남한의 시각에 접근해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문건들을 실제로 이행되기도 전에 이미 북한이 그 내용을 다르게 해석하고 있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몇가지 문제점도 내포하고 있다.
첫째,이들의 시행에 대한 보장장치가 결여되어 있다.
동서독기본조약은 강대국들 및 유엔과 유럽안보협력회의(CSCE)등이 조약의 이행을 보장했으나 남북합의서는 양측이 합의해야만 이행될 수 있는 신사협정과 같은 것이다.
둘째,양측의 주장들을 함께 포함시킨 결과 그 내용과 용어가 대부분 원칙적이며 모호해 해석상의 갈등을 초래케 하고 있다.
북한은 이 문건들의 발효를 선포하면서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이라는 7·4공동성명의 원칙을 반복하고 미군철수·방북인사 석방 및 보안법 철폐를 요구했다.
합의서에는 상대방의 내부문제에 대한 간섭과 비방·중상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으면서도 북한은 여전히 남한측을 공격하고 있다.
셋째,이 문건들의 발효에 부응하는 국민적 합의과정이 미흡했다.
국회가 열리지 않아 결의,또는 동의절차를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3·24총선후에는 국회를 소집해 비록 법적인 비준이 불필요하더라도 정치적인 동의절차를 완수해야 할 것이다.
문서상의 약속만으로 화해협력시대가 오는 것은 결코 아니며 그것이 설현되려면 양측간에 신뢰가 회복되어야 한다.
신뢰는 자기의 의도를 의심하는 상대방에게 「그러한 뜻이 없다」는 것을 투명하게 행동으로 보여줄때 구축될 수 있다.
북 한당국은 『핵무기가 없는 것은 물론,만들지도 않고 만들 필요도 없다』고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말을 믿을 수 있도록 핵시설에 대한 남북동시,또는 시범사찰을 즉각 실시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양측이 한반도비핵화에 동의했고 남한과 미국이 북한의 요구들을 다 들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장사찰 및 검증을 거부하는 것은 의혹만 증대시킬 뿐이다.
이러한 의혹은 북한이 은밀히 핵무기를 개발하려 하거나 남한과 미·일로부터 최대한의 양보를 얻어내기 위한 카드로 사용하려고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북한이 사찰을 피하거나 연기하려고 기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연형묵 총리의 발언에서 「일괄합의 동시실천」을 강조한데서도 엿볼 수 있다.
이제 남북한은 합의서와 공동선언을 현실에서 시험하는 단계에 들어갔다.
이들이 제대로 이행되려면 북한이 의도를 스스로 바꾸거나 개혁 및 개방과 같은 구조적 변혁을 겪어야 한다.
현재로서는 다만 자기체제의 수호와 연방제통일론에 해가 되지 않는 한도내에서 북한은 남한과 공동이익을 모색하고 있는듯 보인다.
북한 당국이 내부적으로 어떠한 길을 택하느냐하는것은 그들이 결정할 문제다.
그러나 그들이 남한의 안보와 정통성을 약화시키고 파괴함으로써 자기들의 안보와 정통성을 강화하려 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단순히 억제해야 한다.
통일에 관한한 내정불간섭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논리를 우리는 결코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화해협력시대의 남북관계에 있어서도 우리는 일관성있는 원칙과 체계있는 전략을 견지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북측이 핵무기를 포기하고 이산가족 상봉에 성의를 보이며 군비통제에서 투명성을 나타낸다면 이에 상응해 그들의 대일·대미접촉과 경제협력추구에 협조하는 연계의 중요성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제부터 경제협력은 평화와 통일을 위한 사업으로 신중히 추진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만약 북한이 계속 핵사찰을 거부하고 국내 법질서를 부정하는 자세를 취한다면 경제협력을 유보하는 것은 물론이고 북한내의 인권상황도 비판해야 할 것이다.
북한이 비핵화와 화해개시를 행동으로 증명할때까지 우리는 내부에서 착실한 결속을 다지면서 조용하게 기다려야 할 것이다.
우리가 서두를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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