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프전 1년… 내가 세운 작전계획/이창건(시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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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요새 사담 후세인 제거운동이 다시 일고 있는데 그 문제라면 나도 할 얘기가 있다. 작년 이맘때 나는 저녁마다 전자석같이 나를 끌어당기는 TV앞에 앉아 걸프전 뉴스에 도취해 있다가 어느 주말 드디어 사우디아라비아 대사에게 편지를 썼다.
그리고 그 사본을 그의 정부 및 쿠웨이트 대사와 사우디아라비아에 피난온 쿠웨이트 망명정부에 전해달라고 했고 미국 대사에게도 보냈다.
요는 보다 경비를 적게 들이고 사상자수를 줄이면서 전쟁을 쉽게 이기자는 것으로 작전계획서도 첨부했다. 그리고 한국전쟁때의 이야기도 추가했다.
○한국전 경험담도 추가
그때 중공군은 한반도를 단숨에 휩쓸기 위한 준비로 황해도에 보급물자를 산더미같이 쌓아놓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서해안을 담당한 우리 특수부대(대장·현 서울 을지로 수민원 한의원 윤민섭)에 탐지돼 밤낮으로 폭격받고는 잿더미가 되고 말았다.
만약 그 병참물자가 불타지 않았더라면 한국전의 결말은 달라졌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 무렵 나는 굉장히 건강한 학생이었는데도 2주간 굶으니 대낮에도 별이 보이고 도저히 활동할 수 없었던 사실도 예로 들었다. 사람이 굶주리면 이성을 잃게 되고 더 굶으면 정의도 잊고 조국도 모르는 짐승이 되고 마는 것이다. 또 연료없는 차량은 움직이지 못한다.
따라서 이라크 침략군을 몽땅 굶기고 목마르게 해 제발로 백기들고 투항하도록 만들자는 것인데 그 실천방안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쿠웨이트탈환 계획서>
목적=가장 경제적이고 사상자수를 최소로 하는 전법을 구사해 세계여론을 유리하게 이끌어 걸프전을 손쉽게 이김.
방법=이라크와 쿠웨이트간 및 이라크와 요르단간의 보급로와 이란과이라크 사이의 밀수로를 끊고 각 지역의 물공급로도 막아 적군이 목말라 제발로 기어 나오게 함,
편성=가장 용감한 네팔의 셰르파족,인도의 시크족,이라크와 터키의 쿠르드족,쿠웨이트 군인,이라크인중 수니파와 한국 지원병으로 외인부대를 조직한후 다국적군 협조로 특수부대편성.
모병=군의 인사장교,심리학자,의사,사회유지로 구성된 선발위원들과의 면접후 6개월 단위로 계약하고 거액지불.
자금=반은 쿠웨이트가,나머지는 사우디 아라비아가 부담하되 경리책임은 자금제공국에 맡김.
임무=1백여개 게릴라식 특수부대를 적진에 투입해 물자수송로 집중차단.지뢰매설,미사일 기지와 병참기지탐지,다국적군 조종사 구출,적의 정치지도자와 지휘관의 납치나 암살,기타 사보타주 공작,특히 물공급차단.
위장=이라크 국경수비대와 사담 후세인의 친위대 행세.
시기=라마단 1개월전에 작전 개시.
협조=다국적군의 공군·보급·통신·정보부대의 지원요청. 이를 위해 통신기조작과 암호해득훈련후 통신망 구축. 다국적군 사령부와의 적극 협조 모색.
○6·25때 도움에 보답
어느 대사가 어째서 과학자가 그런 생각을 갖게 되었느냐고 묻기에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한국은 6·25때 유엔군의 도움으로 겨우 살아 남았는데 이번에 군의관과 간호원만 보낸데서야 체면이 서겠는가.
우리도 은혜갚을줄 아는 민족임을 보여줘야 하며,또 이라크의 침략행위를 응징하는 것은 북한으로 하여금 사태를 오판하지 못하게 하는 산 교훈이 될 것이므로 우리의 매서운 회초리맛을 단단히 보여줘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 행정부와 국회가 꽁무니를 빼니 누군가가 나서야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개인적인 욕망으로는 사진사를 대동하고 들어가 멋진 장면을 많이 찍어옴으로써 특수부대활동에 관한 책을 쓸때 참고하겠다는 것과 종전후 우리 석유화학공업계의 복구사업 참여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야말로 「꿩먹고 알먹고 털까지 뽑아 먹는」일이 아니겠는가.
6·25때 어느 미국문관이 낙하산 타고 적의 후방에 들어가 중요한 일을 하고 돌아오니 영관급 미군들도 그에게 꼼짝 못하는 걸 보았던 터라 나도 그렇게할 셈이었다. 즉 특수부대에선 감방에서처럼 밥그릇수에 따라 별이 많이 붙으므로 「별들의 전쟁」에서 아랫목을 차지하려면 먼저 적지에 갔다와야 하는 것이다. 그런다음 쿠웨이트 수장이나 황태자를 알현해 그 나라의 명예시민권과 명예예비역 장군계급 하사도 상신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러던 어느날 사우디아라비아 대사실에서 연락이 왔다. 나의 작전계획서를 관계요로에 전했으며,또 일본주재의 쿠웨이트 대사 이름·주소·전화·팩시밀리 번호를 알려주면서 그에게 꼭 편지하라 했다. 나는 쿠웨이트 대사에게,일제때 나의 선친이 우리 망명정부에 관계했을땐 고립무원이었으나 지금은 온세계가 쿠웨이트편에 서있으니 조국해방이 곧 올것이라는 위로의 말과 함께 그 일을 위해 내가 앞장서겠다고 강조했다.
○초청장 대신 종전소식
그런데 운명의 여신은 나를 사막으로 내몰지 않았다. 쿠웨이트 망명정부로부터 초청장을 고대했는데 종전소식이 날아왔기 때문이다. 나는 사담 후세인이 그렇게 쉽게 무너질 줄은 미처 몰랐다. 그러나 다국적군이 이라크에 진격해 들어갔을때 전혀 다치지 않은 것은 미리 투입한 특수부대의 발판구축때문인데 그것은 바로 나의 작전계획서에서 본땄음이 틀림없다고 자위하면서 걸프전 1주년을 맞는 것이다.<한국원자력연 연구위원·한국 핵연료(주)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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