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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 히말라야 탐사 #9신] 한국최초 이공창포를 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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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지도를 유심히 들여다보면 쓰촨성(四川省)의 청두(成都)를 중심으로 중국의 대산맥들이 서쪽에 몰려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중국 지형은 이렇듯 서고동저(西高東底)형의 지형이다. 그럼 이번에는 서쪽에 몰려있는 대산맥들을 남에서 북으로 살펴보면 히말라야, 니엔칭탕구라(念靑唐古拉), 탕구라(唐古拉), 쿤룬(崑崙), 텐산(天山)산맥의 순이다.


이공창포의 전경. 고즈넉함이 묻어나는 강 뒤로 니엔칭탕구라산맥의 연봉이 남북으로 펼쳐진다. [사진=신준식·스즈키 히로코]

위의 열거한 대산맥들은 모두 하나의 맥으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뻗어 내린다. 하지만 라사의 동쪽 600km 지점에 위치한 니엔칭탕구라산맥의 동부는 특이한 산맥 구조를 보인다. 라사의 북동쪽에 위치한 라리(Lhari, 4460m)에서 기원한 이공창포강(易貢藏布江)에 의해 니엔칭탕구라산맥이 남북으로 둘로 나뉘고 있다. 산맥이 둘로 나뉘었지만 하나의 이름으로 불리는 특이한 경우다. 탐사대는 700km의 니엔칭탕구라산맥의 반인 350km를 남북으로 나누는 이공창포강의 중심에 위치한 이공초(易貢措, 3100m)를 향해 3월22일(현지시간) 동부티베트의 중심도시 빠이(八一, 3000m)를 출발했다.

차는 세칠라산고(色季나山口, 4515m)를 넘는다. 이제 대원들 모두 고소에 적응돼선지 탐사초기와 비교해 4000m 이상의 고지에서도 생기 넘치는 표정들이다. 세칠라고개는 남체바르와(南迦巴瓦峰, 7782m 또는 7756m)남서벽을 조망하기 가장 좋은 곳이다. 하지만 남체바르와 남서벽은 온통 구름에 쌓여있다. 서둘러 통마이(通麥, 2210m)로 향했다. 이곳 통마이는 중국 서부의 강을 이해하는데 아주 중요한 곳이다. 통마이에서 중국서부를 대표하는 강인 얄룽창포(雅魯藏布江), 이공창포, 파룽창포(帕隆藏布江)강이 모두 이곳에서 만난다. 통마이 남쪽에 위치한 얄룽창포는 인도를 향해 급선회를 하고 통마이 서쪽에서 이공창포강은 얄룽창포로 흘러든다. 또 파룽창포는 캉리갈포(崗日嘎布)산군을 따라 동쪽으로 흘러간다.

이공초 주위에 위치한 티에산의 전경. 이 산에서 티베트에서 가장 강한 쇠가 생산된다. [사진=신준식·스즈키 히로코]

히말라야의 뒤편 니엔칭탕굴라산맥의 중심 이공초 탐사

니엔칭탕굴라산맥의 '이공초 탐사' 화보 ①
니엔칭탕굴라산맥의 '이공초 탐사' 화보 ②

세칠라고개를 넘자 해발고도는 1900m까지 떨어진다. 탐사를 시작해 가장 낮은 고도로 진입한 것이다. 코발트색 대하(大河)와 낮은 고도 그리고 여름이면 뱅골만에서 데워진 공기로 인한 계절풍(季節風, Monsoon)의 영향으로 수목은 우거져 흰 설산과 조화를 이뤄 마치 유럽 알프스를 방불케 한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풍광이다. 하지만 탐사대는 3월24일부터 이곳에 불어 닥친 악천후로 탐사활동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이공초까지 왕복 100km의 깎아지는 벼랑과 덜컹이는 산길을 달리고도 빈손으로 돌아 올 수밖에 없었다.

3월26일 탐사대는 일단 통마이 서쪽에 위치한 보미(波密, 2735m)로 철수를 했다. 하지만 보미에 도착하자마자 다시 하늘이 열렸다. 피곤도 잊은 체 탐사대는 다음날 다시 이공초를 향해 이른 아침 출발을 서둘렀다. 몸은 피곤했지만 우리는 산에 미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처음이라는 시행착오(施行錯誤)는 이미 각오한터다. 우리에게는 그 곳에 가기위한 끈임 없는 시도만이 필요했다. 차가 다시 통마이를 지나 이공창포 계곡에 들어서자 노란 유채꽃 위로 푸른 하늘이 열리기 시작한다. 코발트빛 빛나는 이공창포 남북으로 형성된 미등봉을 향한 카메라 셔터는 그간의 기다림을 보상하듯 쉼 없이 터져 나왔다.

그간 이공창포 계곡은 지도의 공백지대로 남아 있었다. 1977년 중국과학원의 이공창포 계곡의 카이징빙하(哈靑永河)탐사와 1993년 미국정찰기의 루워구어(若果永河)빙하 불시착으로 인한 5명의 미군의 사망. 그리고 2002년 일본의 나까무라 타모츠(Nakamura Tamotsu)의 탐사에 이어 우리가 세 번째 이곳을 탐사하게 되었다.

남북으로 형성된 니엔칭탕구라산맥의 주위 봉우리의 거의 모든 사진을 찍었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의 갈증은 풀리지 않았다. 이공초 북서쪽에 위쪽에 위치한 지앙푸(江普永河)빙하의 탐사가 더 필요했다. 이곳은 밀림으로 인해 나까무라도 거의 탐사를 이루지 못한 미지의 영역이었다. 오후 일정을 정리하고 이공초 주위의 티베트 일가의 집에서 하루를 신세지기로 했다.


이공창포의 전경. 고즈넉함이 묻어나는 강 뒤로 니엔칭탕구라산맥의 연봉이 남북으로 펼쳐진다. [사진=신준식·스즈키 히로코]

“파송초(八松湖)의 말(馬)그리고 이공초의 티에산(鐵山)의 철이 티베트에서 가장 유명하지. 이 집주인은 이공초 인근에서 생산되는 철로 만들었다는 칼을 보여준다. 아마도 이곳에서 생산되는 쇠로 7~8세기 토번왕국의 최고 전성기를 구가했는지 모를 일이었다.

“호랑이도 있나요?” 히로코의 물음에
“호랑이는 없지만 흑표범은 있지. 또 곰은 많이 있어”
나이가 지긋한 이 아저씨는 곰을 잡아 쓸개도 팔고 또 곰 발바닥을 팔아 주요 수입원으로 삼는다며 오지의 척박한 돈벌이에 대해 이야기를 털어 논다. 하나있던 외동딸을 시집보내고 적적하던 차에 낮선 이국에서 찾아온 이방인들과의 호기심어린 대화는 밤늦도록 이어졌다.

“산이 안 보이는 건 내가 그만큼 걷지 않아서 일 것이다.” 다음날인 3월26일 지앙푸빙하로 향하며 내가 나에게 던진 답이었다. 촉박한 시간과 꾸물거리는 날씨로 거의 뛰다시피 지앙푸빙하로 향했다. 나까무라의 말대로 산림은 우거져 시야 확보가 어려웠다. 하지만 잠시 하늘이 열린 사이 그렇게 보고 싶던 6306m 피크의 남서벽이 살며시 고개를 내민다.

모두에게 감사하며 우리는 정신없이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알 수 없는 미소가 잎가에 번졌다. 이마에 땀을 닦고 다시 이공마을로 돌아오는 길 하늘은 순식간에 다시 구름에 휩싸인다. 그리고 탐사에 집중하느라 그간 잘 보이지 않던 유채꽃 너른 들판도 그제야 그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온다. 그세 무엇에 쫓기던 마음이 한 뼘은 더 넓어진 것 같았다.


티베트의 다리에는 어김없이 천연색의 탈초가 장식된다. [사진=신준식·스즈키 히로코]

마을로 돌아오자 티베트 아저씨는 산 사진 많이 찍어서 다행이라며 우리를 반긴다. 또 이집 안주인은 그간 고이간직해온 티베트 전통의상인 추마부락을 시집보낸 딸이 입은 옷이라며 히로코에게 입혀준다. 가진 것 없이 자연에 기대 살아가는 그네들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따뜻한 애정만큼 뜨거운 수유차를 마시고 아쉽지만 정겨운 작별인사를 보낸다.
“다음에 꼭 다시와요.”
“신혼여행 이리로 오면 되겠네.” 참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이었다.

이제 우리는 다시 탐사의 고삐를 잡고 통마이에서 3시간 거리에 위치한 유리(玉仁, 3100m)로 향한다. 하지만 이곳은 중국 정치범 형무소가 있는 곳이다. 몇 해 전 일본 탐사대는 이곳의 탐사에 필요한 허가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입산을 저지당했다. 그만큼 중국내에서 민감한 지역이라 두근대는 가슴을 안고 우리는 니엔칭탕구라산맥의 마지막 탐사지인 유리로 향했다.

글=임성묵(월간 사람과산)
사진=신준식, 스즈키 히로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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