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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별 왕자의 경제이야기] (23) 조잡한 기념품도 팔리는 이유가 있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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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여럿인 남자

"프랑스 여행을 이제 시작할 참인데 벌써 큰 소득을 하나 건졌어."이강의 말에 소왕은 대뜸 '그게 오수아씨냐'고 물었다.

"응? 미모의 인텔리 여성을 만났으니 그것도 훌륭한 소득이지. 그런데 내가 말하는 소득은 다른 거야. 소왕의 이름이 웨슬리라는 걸 처음 알았다는 거야."섭섭함이 배어 있는 말투였다. 소왕은 재빨리 분위기를 파악하고 해명하기 시작했다. 소왕이라는 이름이 마음에 들었고, 그래서 본명을 말할 기회가 없었다는 얘기였다.

"사실 우리 마을에서는 사람마다 이름이 여럿 있어. 그래서 본명에 대해서는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지. "

"뭐라고? 그게 무슨 말이야?"

"각자 본래 이름은 하나씩 갖고 있어. 그런데 이것과는 별도로 특별히 친한 사람이 불러주는 이름이 다 따로 있다는 거야. 만나는 사람에 따라 불리는 이름이 다르다는 얘기지. 물론 친한 사이에서만 있는 일이야. 그래서 이름을 여러 개 갖고 있는 사람은 부러움의 대상이 되곤 하지."

그래서 그는 이강이 소왕이란 이름을 지어줬을 때 자연스럽게 받아들였고, 그 뒤엔 본명을 말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고 말했다. 소금별과의 커다란 문화 차이를 또 한번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혁명의 대학을 방문하다

어디부터 갈까. 그러나 오래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그래, 프랑스 지성의 산실인 소르본(La Sorbonne)대학부터 가는 거야. 이렇게 혼자 생각하고 있던 이강에게 소왕이 물었다.

"우리 어디로 가는 거야?"새로운 풍물에 신이 난 표정의 소왕은 묻긴 묻되 건성이었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대학이 있어. 일단 그리로 가자고."

대학으로 가는 길에 그들은 거리의 화가를 만났다. 뒤에 세느강을 배경으로 초상화를 그려주는 사람들이었다. 가격을 물어보니 40유로, 한국 돈으로 5만원쯤 했다. 이강이 망설이는 표정을 짓자 소왕은 값이 비싸냐고 물었다.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이강은 작은 의자에 앉았다. 그러면서 옆 자리 화가에게도 부탁해 소왕 그림도 하나 부탁했다.

"아니 값이 비싸다고 하면서 왜 앉는 거야? 소비자 잉여 극대화 원칙에 어긋나는 거 아니야?"그게 배운 지식을 적절히 활용하는 소왕식 유머였다. 화가 앞에 앉은 이강이 그 말을 받았다.

"사실 그렇게 잘 그리는 그림은 아닌 것 같아. 그래서 좀 비싸다고 한 거지. 품질에 따라 가격은 달라지는 거니까. 그런데도 왜 내가 여기 앉았는지 알아? "

"폼 잡으려고 그러는 거야?"소왕의 반응은 이강은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내가 초상화를 그리게 한 건 파리라는 멋진 도시에 여행 와서 이걸 기념으로 삼고 싶기 때문이야. 이 그림은 여기서만 그릴 수 있잖아. 하고 싶다고 해서 해외 여행을 자주 할 수도 없잖아. 무엇보다 소왕과의 첫 여행이고. 한마디로 이건 아주 특별한 케이스지. 평상시 같으면 품질이나 만족도가 떨어지는 이런 서비스를 이런 비용을 지불하지 않겠지만 지금은 흔한 경우가 아니지. 특수한 상황이기 때문에 값을 그만큼 더 치를 각오를 해야 하는 거야. 조잡한 기념품도 관광지에서 잘 팔리는 이유가 그런 거라고."

"잘도 설명하는군."거의 30분 걸려서 초상화 한 장씩을 받아든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실물보다 낫다며 낄낄거렸다.

가는 날이 장날

"참, 근데 지금 우리가 어느 대학으로 간다고?"

"소르본대학은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야. 13세기에 소르본 신부가 신학을 배우고 싶어하는 가난한 학생들을 위해 세웠지. 1970년에 기존의 대학이 13개 대학으로 통폐합되고 학교 이름도 파리대학에 숫자를 붇이는 식으로 바뀌었지."

"이름이 그게 뭐야. 1대학부터 14대학까지라니. 프랑스답지 않은 것 같아. 그래서 지금은 소르본이란 이름은 없어진 거야?"

"소르본은 팔리 1 대학(판테온-소르본)과 제3대학(소르본 누벨) 그리고 4 대학(파리-소르본)으로 나뉘어졌지. 사람들이 지금도 소르본대학이라고 부르는 곳의 정식 명칭은 파리 4대학이지."

"오래된 것 말고 어떤 점이 특별해?"

"1968년 프랑스에 5월 혁명이 일어났지. 과거의 구태와 잘못을 뒤집어 엎는 대규모 학생 시위였어. 이때 소르본 대학이 그 중심에 섰지. 젊은 지성인들이 들고 있어났던 거야. 시위가 일어나자 국민들은 큰 성원을 보냈어. 젊은이들이 사회 개혁의 횃불을 들자 마음속에 불만을 품고 살던 대중들이 동참했지. 결국 소르본 대학생들이 사회 개혁에 도화선을 지폈던 거야. 역사가들 중에는 이 혁명을 20세기의 가장 의미 있는 사건으로 평가하는 이들이 많아."

대학에 도착했으나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었다. 정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학생들이 경찰과 대치하고 있었다. 상황을 알아보니 68년 5월 혁명 이후 38년 만에 경찰이 소르본대학 안에 처음 진입했다는 것이었다.

"아뿔사, 하필 이런 때 우리가 왔네."

"아니, 내 생각엔 때맞춰 잘 왔다는 생각인데...."이강은 21세기에 또 다른 혁명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른다며 적이 흥분된 모습을 보였다. 그러면서 가까운 가판대를 찾아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 한 부를 샀다. 뉴욕타임스가 영어로 발행하는'세계의 일간지'인데 파리에 본부를 두고 있는 신문이었다. 신문엔 대학생들이 프랑스 정부의 새 고용법에 맞서 격렬한 시위를 하자 정부가 이들을 해산시키기 위해 소르본대학에 경찰을 투입했다고 쓰여 있었다. 그러나 경찰 진입 후 시위가 진정되기는커녕 더욱 번져나갔다. TV방송들은 나시옹 광장에는 수십만 명의 학생과 근로자들이 몰려들었다고 전했다. 여러 구호가 난무했지만 모두 한목소리였다. 새 고용법 절대 반대였다.

심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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