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회담 열어 통일초석을”/남북관계 새해엔 어떻게 펼쳐질까

중앙일보

입력 1992.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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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정종욱·이상우교수 원단대담/알맹이 없이 정략적 이용땐 역효과만/북한 위상달라져 새로운 외교전예상/“두개의 정권 하나로”아닌 “후손들의 통일공동체”지향필요
새해는 남북관계와 통일열기로 전례없이 바쁜 해가 될 전망이다. 작년 12월의 남북간 합의서 채택으로 남북대화가 본격적인 일정에 오르게 됐기때문이다. 금년 2월 제6차 남북고위급회담이 열려 합의서가 발효되면 3개월내로 남북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문제를 취급할 상설적인 공동위원회가 발족,운영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에 발맞춰 금년에는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될 것이라는 예측도 무성하다. 그러나 한쪽에서는 핵문제타결의 어려움,북한의 태도불분명등을 이유로 남북관계진전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도 만만치 않다. 서울대 정종욱 교수(국제정치학)와 서강대 이상우교수(국제정치학)의 대담을 통해 현재의 남북관계를 결산하고 새해 전망을 알아본다.
▲이상우교수=작년 12월의 남북간 합의서 체결은 온 나라를 들뜨게 하고 통일이 성큼 다가왔다는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습니다. 올 2월에 합의서가 발효되면 분단사를 마감하는 단초는 마련하게 되는 셈입니다.
먼저 금년의 남북관계를 가늠하게 될 합의서 채택의 의미부터 되새겨 보는게 좋겠습니다.
▲정종욱교수=72년의 7·4공동성명이 20년간 남북간을 「긴장속의 대화」단계로 이끌었다면 이번 합의서는 「교류협력」단계로 들어가는 전기를 마련했다고 봅니다. 남북관계의 새시대 방향은 올해 벌어질 남북접촉에 좌우될 가능성이 큽니다.
▲이교수=합의서 채택은 「시작의 시작」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합의서가 살아있는 것으로 되려면 합의된 사항을 예정대로 지켜나가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이제야 겨우 시작
우리의 합의서를 보면서 72년의 동서독관계를 떠올리게 되는데 그들은 기본합의후 20년세월을 노력해 통일을 이뤘습니다. 작년말 우리도 형식면에서나마 남북한 공존의 틀을 마련했지만 상당한 시간이 가야 원하는 상태의 통일을 이룰 수 있을 겁니다.
▲정교수=남북한이 작년 12월 극적으로 남북관계의 돌파구를 마련하게된 것에는 북한의 태도변화가 크게 작용 했지요. 그들은 지금 일본과의 수교로 경제난국을 타개하려 하고 이를 위해선 핵문제를 포함,남북관계의 형식적인 진전이라도 있어야 하는 상황입니다. 물론 이같은 객관적 현실이 갑자기 작년 12월에 돌출된 것은 아니고 이전부터 존재하던 것이죠.
그러면 무엇이 북한의 태도변화를 가져왔는가가 의문입니다. 저는 북한 지도부 내부에서 인식의 변화가 있었던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또 인식변화의 배경에는 중국측의 「우정어린 설복」이 자리잡고 있다고 봅니다.
북한의 유엔가입 결정이 중국 이붕총리의 평양방문뒤 일이고 작년 합의서 도출은 김일성의 중국방문뒤의 일인 점을 눈여겨 보게됩니다.
특히 김일성의 중국방문에서는 이례적으로 공자묘라든가 산동성 개방지역을 방문하기도 했지요.
남경근처에서 김일성이 등소평을 만났을때 등이 남북관계개선 및 핵사찰수용을 넌지시 충고했다고 생각됩니다. 중국지도부의 성의있는 설득이 김일성으로 하여금 전반적인 대담기조의 변화를 결심하게 했을 겁니다.
김일성은 정책변화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새 정책 채택시 북한지도부가 안게될 부담을 우려하면서 남북관계를 활용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올해 남한의 복잡한 정치일정은 김일성으로 하여금 1백80도 방향 전환을 하지 않도록 하는 요인이 될 공산이 큽니다.
▲이교수=북한 지도부는 사회주의 이상 실현을 뒷전이고 어떻게 하든지 현집권체제만은 유지해야겠다는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입니다. 이같은 결정이 유엔가입·대일수교 교섭등을 이끈 원인이 됐지요.
현집권체제가 안정성을 얻으려면 주민의 생활수준을 향상시켜야 하고 그러자면 외부의 자본과 기술유입이 필수적입니다. 또 이를 위해선 대일수교가 급하고 「선언적」이라도 남한과 관계개선을 해야 하는게 북한의 속사정이지요.
북한은 어차피 국제적 압력으로 핵사찰을 수용할 수 밖에 없는 마당에 체제에 타격을 입지않고 모양좋게 하려고 남한의 핵부재선언을 끌어내기도 했지요. 때문에 시기와 모양갖추기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어요. 일단 핵문제는 IAEA협정을 수용키로 함으로써 타결이 됐지만 구체적 조치는 일본과의 수교협상진전 속도나 남한내부의 정치사정이 변수로 작용할 겁니다.
▲정교수=작년 12월의 합의서채택은 체제의 상이를 인정한 것이기에 북한이 내부논리를 깨지않고 개혁으로 나가도록 길이 터준 셈입니다.
합의서에서 남북한이 평화체제 유지의 당사자임을 확인한 점은 의미가 있습니다. 핵문제에서도 미국과 대화하려는 북한을 우리와 직접 대화하도록 유도한 점도 성과지요.
즉 북한이 미국과의 끈을 단절시키고 남북간의 직접협상에 의한 공존상태를 유지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던 겁니다.
핵사찰이 중요한 문제인데 북한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사찰도 수용하면서 남북한간의 동시사찰은 미룰 작정이지요. 그것을 실제적인 군비의 상호검증까지는 발전시키지 않겠다는 거죠.
북측의 대남태도는 3월로 예상되는 남한의 총선결과를 보고난후 구체적으로 내비쳐질 것으로 보입니다.
▲이교수=북한이 총선결과를 보면서 대책을 재강구할 것이라는 데에는 저도 동감입니다. 북은 내부적으로 체제를 공고화시켜 나가면서 남쪽 내부를 분산시켜 자신의 구상대로 남북관계를 끌고 나가려 할 것입니다.
남한이 단원화된 질서속에서도 국가의 뜻을 취합하는데 성공하면 작년 12월의 합의가 구체적으로 실현돼 나갈겁니다. 그러나 우리 내부가 분산되고 지리멸렬하면 북에 「싸움마당」을 열어주는 자승자박의 결과를 낳을 수도 있습니다.
안타깝지만 올해 북한은 복잡한 우리의 정국변화를 보면서 대남정책을 선택할 수 있는 「칼자루」를 쥐는 상황일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합니다.
○북의 진의 불투명
우리 사회가 아무리 다원화된 방향으로 나가더라도 대북자세에 관한한 국민적 합의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예를들어 우리 기업들이 대북진출을 경쟁적으로 추진할 경우 북한의 의도대로 움직여 국가이익이나 통일에 저해될 수도 있는 일이지요.
▲정교수=작년 12월의 합의서가 획기적인 것이라는 인상은 주지만 찬찬히 뜯어보면 북이 수용하기 어려운 내용은 제외됐고 또 실행을 늦출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어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경제교류와 사회문화적 교류의 연계가 불투명해 북쪽의 개방은 당분간 기대하기 어렵고,따라서 북한이 우리사회의 다원성을 이용할 소지가 있어요.
합의서 내용대로 발효후 3개월내에 구체적인 실무를 처리할 공동위원회를 발족시키게 되어 있어 올 5∼6월에 가서야 실천적 과제를 협의할 창구가 열리게 됩니다. 북한의 계산이 무엇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어요.
▲이교수=저도 합의서의 문제점을 짚고 넘어갈게 있습니다. 우리측이 가장 우선순위를 둬야 할 이산가족문제가 모호하게 처리돼 있어요. 이점에 대해 1천만 이산가족이 정부에 배신감을 느낄 수도 있다고 봅니다.
○강제성 없어 문제
그리고 합의서에는 공동위원회가 구체적으로 작동할때에 한해 합의 자체가 유효하다는 조건이 붙어 있지않아 북측이 아무것도 안해도 되는 식으로 「뒤가 열려있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합의서가 북에 대해 강제성을 띠지 못해 구체적인 대책 협의과정에서 북이 거부하면 합의서가 휴지로 될 수도 있어 아쉬워요.
▲정교수=앞으로 과제는 우리가 일본·미국과의 외교관계에 노력을 기울여 북­일 수교,북­미 관계개선 과정에서 북한의 성의있는 합의서 실천과 연계시키도록 노력하는 일입니다.
▲이교수=동북아에서 냉전구조가 와해되고 평화체제가 마련되기 시작한 이 시점에서 염두에 뒤야할 일은 남북이 국제무대에서 더 경쟁할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다.
우리가 북한을 유도해 유엔가입이 이뤄지고 북의 대일수교·대미접근이 본격화됨에 따라 남북의 「격」이 동등해지기 시작한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북한은 유엔가입을 계기로 국제무대를 남한당국의 독무대로 두지 않으려고 이미 뛰기 시작했습니다. 작년에 아프리카의 공관들은 철수시키면서 우리 외교무대인 동남아에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을 유념해야합니다.
금년은 남북이 새로운 외교게임을 벌이는 한해가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정교수=북한이 국제무대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것이 반드시 남북한관계에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남북은 장막을 걷어올리고 협력과 경쟁시대에 돌입한 셈입니다. 냉전적 경쟁보다 투명성이 전제된 경쟁은 공존을 위해 바람직합니다.
다만 북한이 남북관계를 푸는데서 「2+4」의 4를 활용하려는 쪽으로 방향선회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표명과는 달리 당사자간의 극적 타결 필요성을 덜 느끼고,핵을 빌미로 일본·미국과의 접촉을 강화해 나가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판문점이 바람직
그런데 우리가 정상회담카드를 너무 일찍 내보여 북한이 치밀한 계산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준 점도 반성의 여지가 있습니다. 우리의 국내정치가 안정되고 내적 통합력이 높으면 북한의 계산이 실패로 돌아가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계산이 맞아 떨어질 수도 있어요.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더라도 합의서 채택때와는 달리 북한의 계산을 잘 인식해 남북당사자원칙을 분명히 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교수=저는 정상회담 자체가 시기상조라고 봅니다. 합의할게 없어 상징적 의미밖에 없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정상회담이 가능해질 경우 북측은 평양과 서울의 교환방문을 희망할 수 있는데 이것은 자칫하면 북이 대남우위의 상징성을 충족시키는 평양방문으로 끝날 소지가 있어요. 굳이 정상회담을 하더라도 판문점이나 제3국을 회담장소로 택하는게 바람직할 겁니다.
▲정교수=정상회담에서는 민족적 고통을 해결할 구체적인 결실을 내는 것으로 되어야 합니다. 이산가족문제,군축문제,사회·문화·정치적 교류등에 합의하는 실질적인 합의가 이뤄져야 합니다. 이것 없이 정상간의 만남만으로는 남북관계에 크게 기여하지 못하고 국민들에게 실망만 안겨줄 따름입니다.
▲이교수=남북한문제는 정부·정당·개인의 문제가 아니므로 민족의 장래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풀어나가야 합니다.
▲정교수=금년에는 합의서를 구체적으로 풀어나가는 대외적 환경을 만드는데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합니다.
김일성으로서는 금년에 남북관계를 풀어나가기가 수월친 않을 겁니다. 세계적 변화의 추세가 그가 바라는 방향은 아니기 때문이지요. 국제상황은 우리에게 유리한데 문제는 우리의 국내정치상황이 남북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정치세력이나 국민이 개인적 이해를 초월해서 단결,한목소리를 내는게 절실히 요구됩니다.
▲이교수=대북정책은 북쪽 정권을 돕는 방향이 아니라 2천만동포를 돕는 방향이어야 합니다. 북쪽 정부와 협상은 하더라도 이 점을 혼돈해서는 안됩니다.
○야와도 협의해야
또 통일정책에 관한한 국내정치에 휩쓸려서는 안되고 국민적 합의획득이 요구됩니다. 작년 12월의 합의만 하더라도 주요 야당과는 최소한 사전에 협의해 지지를 약속받는 모양갖추기가 선행됐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다원회사회의 특징을 살리는 길입니다.
▲정교수=불과 8년을 남겨놓은 20세기의 마지막 연대에 모든 민족이 민족국가를 완성하고 지역국가로 전변하고 있는데 우리는 아직도 단일 민족국가를 이루지 못했습니다. 이웃나라 일본의 국제적 영향력이 날로 커지는 지금 통일이 늦어지면 민족적 고통은 지속될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이교수=통일작업은 「회귀작업」이라기보다 새로운 「창조작업」임을 중시해야 합니다. 21세기를 앞두고 새시대 주역의 발상과 시대상을 반영한 창조적 통일을 이뤄야 합니다.
두개의 정부를 하나로 만드는데 집착하기보다 두개의 분단사회를 하나로 만드는데 주안점을 둬야 합니다. 단일한 민족공동체 회복에 중점을 둬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정권은 짧지만 민족은 길다」는 얘기를 덧붙이고 싶습니다. 또 하나 세계적 다원화·민주화추세를 보더라도 일당독재체제는 몰락하지 않을 수 없는만큼 서두르지 말고 민족성원의 희생을 극소화하는 방법을 찾는데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정교수=작년 12월의 합의서는 분단극복과 새 공동체의 기초작업인데 이제는 차세대가 주도하는 통일공동체가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심사숙고해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민족주의에 바탕을 두면서도 이를 초월하는 국제주의적 공동체를 만드는데도 관심을 가져야 하겠습니다.<정리=유영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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