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이냐 박헌영이냐/레베데프 당시 정치사령관 첫 증언

중앙일보

입력 1991.11.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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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스탈린이 면접 지명/46년 7월 크렘린서 극비리에/당시 군부·외무성 다투자/스탈린,김에 공산화 지시
【모스크바=김국후 특파원】 소련의 스탈린이 소련군 북한주둔 11개월만인 1946년 7월말 평양의 김일성과 서울의 박헌영을 모스크바로 비밀리에 불러 면접한후 김일성을 북한정권의 최고지도자로 선택했던 역사적 사실이 45년만에 밝혀졌다.
이같은 사실은 45년 8월9일 대일전선포와 함께 북한에 진주,공산주의 정권을 창출했던 소련군 고위장성중 유일하게 생존해 있는 전소련군 제25군정치사령관 레베데프소장(90·모스크바거주)이 본보와의 회견에서 처음으로 공개한 것이다.
지금까지 소련이 김일성을 후원했다는 사실은 여러가지 상황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구체적으로 누가 언제 어떻게 김일성을 지도자로 지명했는지 등이 명확히 밝혀지지않았었다.<관계기사 3면>
레베데프장군은 『당시 평양주둔 소련군은 군상부의 지시에 따라 김일성을 북한의 지도자로 내정,김일성으로 하여금 당과 행정권을 장악토록 후원했으나 소련국가원수이자 공산당총서기인 스탈린 대원수의 재가를 얻지 못한 상태였다』고 밝히고 『46년 7월 「스탈린이 김일성과 박헌영을 직접 면접한후 북한의 지도자를 결정할 예정이니 김과 박을 극비에 모스크바로 보내라」는 군상부의 지시에 따라 서울에 있던 박헌영을 평양으로 불러 평양의 군공항에서 소련군 특별수송기편으로 김일성과 함께 모스크바로 보냈었다』고 밝혔다.
레베데프 장군은 『크렘린궁에서 스탈린이 김과 박을 만나 당시의 남북한 정세를 보고 받은뒤 김일성을 북한정권의 최고지도자로 지명,북한의 소비예트화 조기정착 등을 지시했었다』면서 『이 자리에는 북한 공산주의 정권수립의 전권특사역을 맡은 소련군 제1극동방면군사령부 군사·정치위원 스티코프상장(우리의 중장),소25군 민정사령관 로마넨코소장,서울주재 소련총영사관 부영사 샤브신,김일성의 비서 문일,박헌영의 비서(남·이름기억못함)등이 배석했었다』고 말했다.
그는 『김일성은 소련군부가,박헌영은 소외무성 및 정보기관이 각각 스탈린에게 추천했었다』고 밝혀 소련군부와 행정부·당사이에 이견이 있었음을 시사했다.
레베데프 장군은 『스탈린이 북한주민들로부터 절대적인 추앙을 받던 민족주의자 조만식과 박헌영을 비롯,유능한 공산주의자들을 제치고 33세의 청년 김일성을 지도자로 지명한 것은 ▲김이 5년여동안 소련군에서 일하면서 소련의 명령에 충실,그를 믿을 수 있으며 ▲특히 그의 이름(본명은 김성주였지만)이 북한인민들에게 「항일투쟁 영웅」으로 알려져 있는등 군부의 추천사유가 설득력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지명배경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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