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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람] 유엔본부 '한국음식축제' 요리사 임지호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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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음식만큼 그 나라 문화를 함축하고 있는 것도 드물지요. 한국의 자연이 녹아든 정갈한 음식 맛을 여러 나라 외교관들에게 보여주려고 뉴욕에 왔습니다."

1일부터 오는 12일까지 미국 뉴욕 유엔본부의 대식당을 책임지게 된 산채요리 전문가 임지호(49)씨의 말이다. 그는 주(駐)뉴욕 한국문화원이 지난해에 이어 두번째로 마련한 '한국 음식 축제'의 대표 요리사다. 그를 포함한 여섯명의 요리사들이 열흘간(주말 이틀 제외) 1백89개국의 대표단과 유엔사무국 직원 등 5백여명의 점심을 한국 식단으로 꾸며주고 있는 것이다.

"첫날(지난 1일) 저녁에는 뉴욕의 내로라하는 음식전문 기자 60여명을 초청, 한국 음식을 대접했죠. 외국 기자들이라 많이 떨렸는데 모두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리며 '맛있다(delicious)'를 연발해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는 궁중음식 전문가인 최윤자씨가 준비한 디저트가 특히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디저트로 한국 전통의 폐백 음식을 하나씩 내놓았는데 '색다르고 맛있다'는 칭찬을 받는다는 것이다.

'맛은 자연이다. 모양도 맛있게'. 林씨의 요리 철학이다. 그는 인공 조미료는 장기에 부담을 준다며 멀리한다. 그래서 솔잎.씨앗가루.꽃가루.각종 잎사귀 등을 재료로 다양한 자연산 조미료를 만든다. 인공 조미료에 익숙한 사람들은 그가 내는 맛에 대해 처음엔 다들 고개를 갸우뚱거리다 몇번 먹어보면 담백한 맛에 끌린다고 한다.

벽오동 열매 조림.단호박 수수찜.방게 튀김.연근 조림…. 메뉴를 보면 그가 우리 땅에서 나는 것이면 뭐든지 멋진 먹거리로 탈바꿈시키는 재주를 지닌 사람임을 짐작할 수 있다. 林씨는 자신의 요리가 고정된 틀에 갇히는 걸 거부한다. 상상하기 힘든 재료 간의 멋진 궁합도 그의 손에선 가능하다.

"아스파라거스로도 맛있는 김치를 만들 수 있습니다. 바삭하게 튀긴 연근을 붉은 와인에 담그면 기막힌 맛이 나지요."

음식에 관해선 자신 있기에 처음 밟아보는 뉴욕 땅이지만 떨리지 않는다는 林씨. 그는 경북 안동의 산골 출신이다. 그가 열세살 때 요리와 인연을 맺은 것은 '먹고 살기 위해서'였다.

일찍 고향을 떠나 객지를 떠돌 때 식당 만큼 배고픔을 해결하기 좋은 곳은 없었다. 이렇게 배운 요리로 서울 서린호텔 주방을 거쳐 1980년대 초반에는 코오롱건설의 사우디아라비아 공사 현장에서 근로자 2천여명의 식사를 챙겨주는 중책을 맡기도 했다. 그는 현재 경기도 양평에서 자신의 호를 딴 '산당'이란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다.

뉴욕=심상복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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