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권자도 문제/손벌리는 「한표」…타락자초(선거 이대론 안된다:4)

중앙일보

입력 1991.11.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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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빗나가는 정치 표로 심판해야
선거풍토를 혼탁하게 하는 돈선거·탈법선거의 주범은 정치권이다.
그러나 그런 부정·불법을 가능케 하는 토양이 유권자들속에 자리잡고 있다는 점도 분명하다.
유권자들이 중심을 잡고 요지부동이었다면 금품·타락선거는 아예 자리할 수 없었을 것이며 지역감정의 망국적 풍토도,혈연·학연의 유치한 패가름도 지금같지는 않았을 것이다.
14대 총선이 최소한 3개월이상 남아 아직 일정조차 잡혀지지 않았는데도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소리들은 벌써부터 심상찮다.
단체관광이 시작됐고 음식점엔 선거손님이 북적대기 시작했으며 수건·모자등 선물이 오간다. 당원 단합대회에 일당받은 「즉석 당원」이 동원된다는 해묵은 다툼도 들린다.
「얻어 먹고」표를 찍어주는 소극적 자세에서 요즘엔 「표를 줄테니 내라」는 능동적 매표양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친목회·각종 운동모임·종친회 등에서 자신들의 행사·모임에 찬조조로 손을 벌리는 사례는 어느 지역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광경이고 『몇명을 모을테니 얼마를 달라』거나 『상당한 수의 유권자에게 영향력을 행사해줄테니 대가를 지불하라』는 식의 흥정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선거가 줄지어 치러짐에따라 직업적인 매표전문 선거꾼까지 등장하고 있다는게 정당주변의 얘기다.
선거일이 가까워질수록 이같은 타락상은 더욱 기승을 부릴게 뻔한 노릇인데도 속수무책인 상태다.
수건을 한장이라도 더 받으려는 몸싸움,식권이 모자란다는 아우성에 서로 낯뜨거워하면서도 선거철만 되면 똑같은 장면이 유권자들 스스로에 의해 재연되곤 한다.
지난 1월 중앙선관위의 여론조사에 나타난 유권자의식을 보면 증세가 간단치만은 않다. 물품수수경험 44.1%,음식접대경험 33.9%,금전수수경험 14.6%,관광여행·취직·이권약속경험 8.2%에 이르며 이들중 66%는 그에대한 죄의식 마저 느끼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개중에는 권유자의 안면을 몰라라할 수 없어서거나 얕은 재미삼아 술자리에 끼고 유세장에 동원되고 엉겹결에 일당을 받아쥔 이들도 많다는게 대체적 분석이긴하다.
그러나 개개인이 아무 생각없이 받아쥔 몇푼의 돈과 소주 몇잔이 「조」단위의 선거자금으로 연결돼 나라경제를 휘청거리게 만들고 사회전체를 부패의 늪으로 떨어뜨린다는 사실 또한 엄연한 현실이다.
정치인들에게 『돈을 풀면 표가 모인다』는 인식을 심어준게 다름아닌 우리 유권자인 셈이다.
『어느 지역엔 어떤색 깃발만 꽂아도 당선된다』며 지역여론이나 자질과는 상관없이 공천장사나 하는 작금의 정치판 역시 유권자들의 자승자박인 셈이다.
유권자의 개혁없이 정치판의 개혁만 바랄 수는 없다. 국민은 그 수준에 맞는 정치를 가진다고 하지 않는가.
돈 몇푼에 주권을 살 수 있다는 모욕적인 발상,탈법·부정을 저질러도 당선만 되면 그만이라는 발상,혈연·학연·지역감정에 의존하는 발상을 깨뜨릴 수 있는 것은 결국 유권자들 뿐이다.
이번 선거에서 유권자들은 누가 돈선거를 벌이고 누가 탈법을 자행하는지 냉철하게 지켜보고 표로 응징해야 할 것이다.<허남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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