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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호기자의현문우답] 오른손이 한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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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성경(마태복음)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요즘 세상이 어디 그렇습니까. '광고의 시대, 홍보의 시대'라고 하지 않습니까. '작은 일은 크게, 가벼운 일은 무겁게' 만들지 못해 오히려 안달입니다.

우연히 한 수녀님(66)을 알았습니다. 남태평양의 파푸아뉴기니에 가서 학교를 세우고 15년간 살았던 분입니다. 거긴 위험천만입니다. 교육은 고사하고, 부모가 돈을 받고 딸 아이를 팔기도 하는 곳이죠. 시설이나 환경도 전쟁을 막 치른 '1950년대 한국 사회'수준이라네요. 7년 전에 귀국한 수녀님이 최근 다시 발령을 받았습니다. 이제 그 학교의 이사장으로 간다네요. 이번에는 또 얼마나 머물지 모릅니다.

그래서 인터뷰를 신청했습니다. 그런데 대답은 '노(NO)'였죠. "그리 드러낼 일이 아니다. 아무것도 한 게 없다"란 이유였습니다. 당혹감과 따스함, 둘이 동시에 밀려오더군요. '요즘 세상에 이런 마음도 있구나.'

한 일화가 떠올랐죠. 중국으로 건너간 달마대사가 양나라 무제를 만났습니다. 나라 안에 엄청난 수의 사찰을 세웠던 무제가 물었죠. "나의 공덕이 얼마나 되오?" 달마대사의 답은 짧았죠. "무공덕(無功德)입니다."

불교에서는 '선업(善業)도 업이고, 악업(惡業)도 업'이라고 합니다. 해도 한 바가 있으면 마음의 짐, 업보가 된다는 거죠. 그래서 달라이 라마는 "오른손이 한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고 했습니다.

성경의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표면적인 해석이야 쉽죠. '좋은 일은 남 몰래 하라.'

그러나 예수님 말씀은 그리 간단치 않습니다. 의미도 더 깊고, 울림도 더 크죠. 바로 좋은 일을 할 때는 '남 몰래'가 아니라 '나 몰래'하라는 뜻입니다. 핵심은 '내 마음에 남음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닐까요. 선행을 하고도 할 일을 했다는 마음이 남는다면 '오른손'을 '왼손'이 아는 거죠.

수녀님은 묵묵하게 비행기에 올랐지 싶습니다. 그래서 당혹스런 인터뷰 사절이 한편으론 아쉽고, 또 한편으론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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