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시론

단군신화 '역사'가 되려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5면

이번 고등학교 교과서 청동기시대 및 고조선사 수정은 학계의 요구를 반영한 것은 아니다. 수정 내용이 현재 역사학계의 연구 성과나 일반적 의견과는 상반된 내용이라는 점에서 고조선 전공자로서 아무런 역할도 할 수 없다는 현실이 안타깝고 자괴감마저 든다.

그동안 동북아시아 고고학 자료에 대한 연구는 많은 진전이 있었다. 청동기시대 유적 가운데 기원전 15세기에서 기원전 13세기까지 올라가는 유적들도 보고되고 있다. 그러나 그 연대는 학계의 면밀한 검증을 기다리고 있다. 아직도 중국 동북지방 청동기시대의 전형적 유물인 비파형 동검과 반달 칼, 그리고 미송리식 토기 등이 사용되던 시기는 기원전 10세기부터 시작, 기원전 8~7세기께 발전했다고 보는 것이 중국 및 우리 고고학계의 일반적 견해다. 이번 고교 국사교과서의 청동기시대 시작 내용 수정은 그것이 청동기시대 유적인지 검증되지 않은 한두 자료를 근거로 '기원전 2000년께에서 기원전 1500년께에 청동기시대가 본격화된다'는 비문(非文)으로 500년의 기간을 끌어올리는 우를 범한 것이다.

고조선사 서술은 달라진 것이 없다. 집필자와 언론의 보도처럼 '~고 한다' 세 글자를 뺐다고 해서 신화가 역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수정된 국사교과서의 초기 고조선에 대한 내용은 단군신화를 역사적 사실로 봐 그것을 그대로 고조선 사회에 적용시킨 것에 불과하다. 국사교과서에 기술된 기원전 2333년에서 기원전 3세기까지의 2000년에 이르는 고조선 사회는 주로 신화 세계 속에서 묘사되고 있으며, 고조선의 건국을 둘러싼 역사상이나 고조선의 사회상은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실제 청동기시대에 부족 연합체로서 만주와 한반도에 걸쳐 넓은 영토를 가진 국가인 단군조선은 만주나 한반도에 존재하지 않았다. 단군의 건국연대를 기원전 2333년으로 잡은 것 역시 중국의 전설상 임금인 요임금의 즉위년을 추정해 본 중국인의 생각을 동국통감에서 인용한 것으로 신빙성이 떨어진다.

이번 고조선사 수정 과정에는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응한다는 목적이 많이 반영된 것 같다. 그러나 중국 정부가 정치 전략 차원에서 접근하는 동북공정 문제를 우리가 학계의 연구 성과와는 무관하게 연대 끌어올리기로 졸속 대응하려는 점은 큰 문제다. 다른 분야와 달리 고조선사 서술에는 재야사학자나 일반 시민의 견해를 고려하는 등 학문 외적인 요인이 많이 작용한다. 그러나 수십만 명의 청소년이 배우는 교과서가 학문 외적인 논리로 학계의 견해와 무관하게 개정되는 구조는 심각한 문제다. 동북공정에 대응한다는 조급함과 검증되지 않은 내용 수정은 우리 국정교과서 편찬 수준을 그대로 드러냈다.

교과서는 대부분의 학생은 물론 일반 대중의 당대 역사인식을 확인하는 텍스트다. 이 때문에 기존 학계의 연구 성과를 반영해 신중히 서술해야 한다. 특히 그동안 많은 논란이 있어 왔던 단군과 고조선사 부분은 학계의 주장 가운데 합리적이고 다수인 견해를 정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처럼 우리 역사의 시작을 학계의 검증 절차 없이 몇 백 년, 몇 천 년을 끌어올린다고 우리 역사가 위대해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경우에도 역사 서술은 사료에 근거한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것이 돼야 한다.

송호정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