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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시대 내가 겪은 남산] 8. 시인 김지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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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지금의 국정원, 옛 중앙정보부를 남산에 있다 하여 남산이라고 불렀다. 내가 처음 그 남산 구경을 한 것은 30여년 전 시 '오적(五賊) 사건' 때였다. 정보부는 '남산(南山)'이라는 제목으로 정보부를 비꼬는 시를 단 한 번에 직필로 써보라 요구했다. '오적'을 내가 썼다는 증거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여러 문필가와 한학자들에게 물어봤으나 모두들 30세 안팎의 젊은이가 쓸 수 있는 글이 아니라고 한다는 거였다. '오적'에 나오는 수없는 벽자(僻字)들과 시의 운율 자체가 동양학을 전공한 노인네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는 얘기였다.

제목은 반드시 '남산'이어야 하고, 단 한 번에 한시 한 편을 써내야 한다는 거였다. 그랬다. 그래 단 일필로 순식간에 대구를 갈겨버리고 말았다. 무식하기로는 나나 정보부 요원들이나 마찬가지 아니던가.

'유연견남산(悠然見南山) / 약여도연명(若如陶淵明)'이라! 내 뜻으로는 이렇다. '느긋하게 남산을 바라다 보자고 있자니 내가 마치 도연명이나 되는 듯'이다. 좌우간 이것으로 필자는 한시 실력을 확인한 셈이었으니 세월이 지나고 나서는 웃음밖에 안 남는다.

두 번째 기억은 시 '비어(蜚語) 사건' 때다. 나는 잠적했고 수없이 많은 선후배들이 끌려가 내가 간 곳을 대라고 참기 어려운 고통을 당했다. 결국은 나도 붙들려 갔는데, 이때는 이미 '남산'이 이 사건에 대한 각도를 전혀 다른 쪽으로 바꾼 뒤였다. 7.4 공동성명 등 앞으로 닥칠 남북관계를 의식한 것 같다. 고문 따위는 없었으니까.

조사 이외의 시간에 나를 지키던 백발의 늙은 요원 한 사람이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내 귀에 속삭인 폭탄 발언이 하나 있다. "김지하! 앞으로 당신은 발에 흙을 묻히지 않고 살거야! 얼마 안 남았어! 곧 변화가 온다고! 한 번만 더 해! 큰 글을 한 번만 더 써! 그리고는 가만히 있어! 얼마 안 남았으니까!" 허허허. 진짜다.

그리고는 유신, 민청학련 때다. 나는 이미 지학순(池學淳) 주교님과 이렇게 약속이 돼 있었다. 내가 잡힌 뒤 자금을 대준 인물로 자신을 불라는 것이었다. 주교님 자신이 구속되어야 가톨릭뿐 아니라 국내 및 세계 여론이 일어난다는 것. 로마시대 성직자였던 테르투 리야누스의 이른바 '그리스도교는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라는 비의(秘儀)를 나는 '슬라이딩 태클'로 해석했다. '태클' 역시 하나의 십자가인 셈인데 다리를 걸고 자빠지는 거다. 결국 뺨 한 대라도 맞은 사람은 그 뒤 예외 없이 반유신 운동의 전위부대로 활동해 현대사의 큰 분수령을 이루었다. 참으로 우스운 것은 이런 분수령 생성의 가능성을 전문가의 육감으로 느낀 걸까.

정보부 6국장께서 취조관을 통해 가라사대 '자기가 신세지고 있는 주교님을 얽어 넣어서야 쓰나?'라면서 공작금 액수를 줄이라고 흥정을 걸어온 것이다. 나는 단호히 거절하면서 그 흥정 사실 자체를 법정과 변호사를 통해 공개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결국 이로써 상부선을 인혁당에서 천주교로 바꿔놓은 셈이다.

마지막은 '양심선언'. 다 알려져 있듯이 선언은 고(故) 조영래씨가 쓴 것이다. 어떻게? 뿌우연 새벽에 한 자를 쓰면 내 감방 단골인 참새님이 와서 조영래씨에게 항공 수송으로 물어다 주고, 컴컴한 저녁에 또 한 자 쓰면 역시 내 단골인 쥐님이 와서 지하 수송을 해 몇자 안 되지만 그 뼈대 위에 조영래씨의 격조 높은 일대 문장이 이루어진 것이다. 박정희 정부와 정보부는 발칵 뒤집혔다.

또 남산에 불려갔는데, 당시 타공국(打共局)인 제7국장께서 지하실에 친히 내려와 큰소리로 가라사대 "김선생, 정부에 들어와 큰 일 한 번 안해 보려오? 우린 당신 같은 사람이 필요합니다. 정말입니다. 숙고해 보십시오."

아무리 심각한 얘기를 늘어놓는다 해도 파시즘 밑에서는 단 한 쪼가리 코미디나 농담밖에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 그것을 나는 유식한 문자 좀 빌려 '남산소각(南山小覺)'이라 부르고자 한다. 허허허.

*'내가 겪은 남산' 기획 시리즈를 이번 '김지하 편'으로 끝냅니다. 이번 기획은 남산 옛 안기부 건물을 유스호스텔이 아닌 인권.평화 기념관 등으로 조성해야 한다는 민족문학작가회의의 뜻을 전하기 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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