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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악녀들에 물드는 10대

중앙일보

입력

뉴스위크 여섯 살짜리 딸이 여배우 린지 로핸을 사랑한다. 그녀를 사랑하고, 사랑하고, 또 사랑한다. 머리 모양은 물론 주근깨까지. 딸아이는 린지가 출연한 영화 '페어런트 트랩(The Parent Trap.1998년)'을 최소 10번은 봤다. 그 영화 주제곡인 냇킹 콜의 '러브'를 흥얼거릴 때도 많다. 딸아이는 그녀가 출연한 또 다른 영화 '허비-첫 시동을 걸다(Herbie Fully Loaded.2005년)'를 좋아하며 지금은 '프리키 프라이데이(Freaky Friday.2003년)'를 다시 본다. 얼마 전 아침식사 도중 뉴욕포스트지에 실린 린지의 사진이 눈에 띄자 딸아이는 당연히 흥분했다. "린지 로핸이잖아"라고 딸아이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런데 지금 뭘 하는 거지?"

물론 딸아이에게 린지가 뭘 하던 모습인지는 말하지 못했다. 힐턴호텔의 상속녀로 말썽꾼으로 유명한 패리스 힐턴(26)이나 유명 여가수 브리트니 스피어스(26)처럼 종종 아래 속옷도 안 입은 채 파티에 나타나는 린지가 영화에 출연하려고 기둥 주위를 돌며 추는 스트립쇼 춤을 배우는 모습이라고 설명하기가 싫었다. 2시간 댄스 교습을 받은 뒤 린지의 온몸이 시퍼렇게 멍들었다는 이야기도 해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린지가 직업상 받는 교습을 설명하기란 상대적으로 쉬운 일이다. 최근 술에 취해 LA 고속도로 카풀 전용차로에 차를 세운 여가수 니콜 리치(26.라이오넬 리치의 딸)의 행동에 비하면 말이다. 이런 예는 한도 끝도 없다. 라스베이거스의 한 나이트클럽에서 열린 송년의 밤 파티에서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술에 곯아떨어진 이유는 또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게다가 린지가 호텔 복도에서 쓰러진 뒤 약물중독 치료소로 갔다는 최근의 보도에 이르면 머리가 쑤셔온다. 이 기사는 담배 한 갑을 손에 쥐고 달랑 모피 상의만 걸친 채 내려오다 계단에서 떨어진 영국 여배우 케이트 모스(32)의 사진이 실린 면의 맞은 쪽(6면)에 실렸다.

뭔가가 사람을 홀리지만 그것을 굳이 사랑이라고 부르진 않겠다. 전과 달리 우리 아이들은 섹스와 신체 노출이 지나친 유명 연예인들의 영상에 집중 공격 당한다. 그들은 모근째 깨끗하게 정리한 자신의 치부를 사진기자들에게 보여주지 않고는 자동차에서 못 내리는 듯하다. '무삭제 : 광란의 여대생(Girls Gone Wild on Campus Uncensored)' 같은 비디오가 연간 추정으로 약 4000만 달러를 벌어들인다. 유명인의 사생활을 다루는 주류 언론의 규칙을 송두리째 바꾼 연예주간지 어스(Us)가 '브리트니의 새 남자 친구'를 너무 늦게 소개한다면 아이들은 언제든 perezhilton. com이나 defamer. com처럼 인기 폭발하는 가십 블로그를 클릭하면 된다.

모든 부모가 아는 사실을 확인해 보자. 태어날 때부터 새로운 미디어에 길들여진 아이들은 유명인의 별난 행동을 너무도 잘 안다. 물론 남자 아이들은 누군가 속살만 보여주면 기꺼이 들여다보려 하지만 브리트니 '일당'들의 다툼이나 패션, 낯 부끄러운 행동에는 고개를 돌린다. 반면 여자 아이들은 그들의 최대 팬이다. 뉴스위크가 최근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77%가 브리트니 스피어스, 패리스 힐턴, 린지 로핸이 여자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너무 크다고 믿는다. 그들 중 한 명이 뉴스거리를 만들지 않고 조용히 넘어가는 날이 없다. 패리스 힐턴은 "늘 어디선가 무슨 일을 저지른다"고 메릴랜드주 올드필드의 기숙학교에 재학 중인 한 여학생(18)이 말했다. 한때 패리스 힐턴에게 "중독"됐다가 지금은 끊었다는 그 여학생은 "과거엔 패리스의 옷차림, 태도 모두에 푹 빠졌다"고 말했다. 십대만이 아니다. 샌디에이고에 있는 쿠미야이 초등학교에서 1학년을 맡은 줄리 시보로스키 교사는 일곱 살짜리 아이도 예외가 아니라고 말했다. 어린 여학생이 "섹시해"라는 말을 쓰고, 외설적 가사가 담긴 팝송을 부르고, 남자 아이들과 시시덕거리기도 한다.

가정교육이 중요하다

그 정도에도 대부분의 부모는 예외없이 인상을 찌푸린다. 하지만 과연 패리스 힐턴에게 지나치게 노출되면 장기적으로 위험한 결과가 초래될까? LA에 사는 한 어머니의 말대로 우리가 '꼬마 매춘부'(prostitot.매춘부를 뜻하는 'prostitute'와 꼬마를 뜻하는' tot'의 합성어) 세대를 기르고 있을까? 다시 말해 매춘부처럼 옷을 입고, 돌체 & 가바나의 지갑을 구하려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면서도 '충분한(adequate)'이란 단어의 철자도, 그 뜻도 모르는 세대 말이다. 아니면 버릇 나쁜 소녀들의 등장은 보다 의미심장한 사회적 변화를 뜻할까? 문화의 저속화와 함께 섹스.사랑.결혼의 미덕을 업신여기는 세대 말이다. 사실 우리는 그런 변화를 우려하는 부모로서의 첫 세대도 아니고, 마지막 세대도 아니다. 또 보수적 사상가 다수는 섹스에 흠뻑 젖은 우리 문화가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반면 진보주의자들은 우리 딸들의 순결을 걱정하는 태도가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보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많은 부모가 우리의 선정적인 문화가 자녀에게(그리고 여자 아이들이 커서 돼줬으면 하는 여성상에) 미칠 영향을 고민한다는 점이다. 해답은 우리 아이들이 어디서 가치관을 배워야 하느냐는 또 다른 문제에 있을지 모른다.

한 가지 '과격한' 해결책을 제시하겠다. 정답은 바로 가정이다. 전문가들은 자녀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부모, 책임감 있는 교사, 그리고 좋은 친구가 갈수록 혼탁해가는 문화에 균형을 맞춰줄 훌륭한 수단이라고 말한다. 통계에 따르면 패리스 힐턴 같은 여성들이 있는데도 여자 아이들은 실제로 잘 해나간다. 십대의 임신.음주.마약 투여가 모두 감소했을 뿐만 아니라 더 어린 나이에 성관계를 갖는다는 증거도 없다. 게다가 지금은 여자 아이로 태어나면 여러모로 유리하다. 여성은 스포츠.학업.구직 시장에서 남자보다 뛰어나다. 단지 아이들에게 올바른 가치관을 하루 24시간 심어주려는 노력이 필요할 뿐이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우선 고대 병법에 나와있는 대로 공략 상대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옳고 그름을 분간해 이 모든 문제에 휘말리지 않으려면 사춘기를 말 그대로 제대로 보내야 한다"고 에밀리 웨어링(40)은 말했다. 샌디에이고에서 변호사 보조로 일하며 아홉 살과 두 살 난 두 여아를 둔 웨어링은 "감시 레이더"를 항상 켜고 산다고 말했다. 브리트니 스피어스 같은 연예인을 포함해 부정적 영향이 도처에 널려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너무도 쉽게 빗나간다"고 웨어링은 말했다.

그녀의 똑똑하고 순진한 딸이 "파티에 푹 빠진 상속녀(패리스 힐턴을 가리킨다)"를 자신의 이상형으로 삼으며 자라나길 바라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패리스 힐턴처럼 옷을 입거나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남성 편력을 맹목적으로 추적한다고 아이가 탈선할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질까? 교육자들은 여중생 대부분은 더 나이든 남성이나, 심지어 남자 아이의 주목을 끌려는 목적으로 짧은 치마나 복부가 훤히 드러나는 셔츠를 입지는 않는다고 지적한다(고등학생이라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6학년생이 옷차림에 신경쓰는 이유는 다른 여자 아이처럼 입거나, 또래 집단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다. "이 아이들이 그렇게 입는 이유는 미디어에서 그런 옷차림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볼티모어의 롤랜드 파크 카운티에서 홍보 일을 하는 낸시 T 무겔은 말했다. "아이들은 남과 다르게 보이길 꺼린다. "

그렇다고 해서 린지 로핸의 "노골적인 사타구니"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도 섹스에 관한 아이들의 생각에 영향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지난해 소아학회지에 실린 한 연구에선 백인 십대의 경우 텔레비전.영화.음악을 통해 성적 내용에 반복 노출되면 일찍부터 성적 활동이 왕성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이 나왔다(흑인 십대는 미디어의 영향을 덜 받는 대신 부모의 기대수준과 친구들의 성적 행동에 더 큰 영향을 받는 듯하며 성적 내용에 가장 적게 노출된 십대는 섹스를 할 가능성도 더 낮았다). 특히 그 연구에선 음란물에 노출된 십대 중 16세에 이르기까지 섹스를 경험한 비율이 55%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반면 미디어에서 성적인 영상을 좀처럼 접하지 않은 아이들이 그때까지 섹스를 경험할 확률은 6%에 그쳤다. 이런 결과는 많은 미국인의 두려움과 일치한다. 뉴스위크의 여론조사에 응한 성인의 84%는 섹스가 20 ̄30년 전에 비해 대중문화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답했으며 70%는 젊은층에 나쁜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여성 혁명의 딸들

아동의 성적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많다. 그리고 이미 성행위를 고려 중인 아이들은 음란물이나 음악을 찾을 가능성도 더 높아진다. 그러나 연구자들은 이른 나이에 섹스할 가능성을 보여주는 가장 강력한 지표 중 하나가 모든 사람이 섹스를 한다는 생각(실제로든 상상이든 간에)이라고 지적한다. 일부 십대, 특히 부모로부터 성적 충동을 자제해야 한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받지 못한 아이들에게 미디어는 "성적으로 매우 강력한 친구"가 된다고 제인 D 브라운은 말했다. 브라운은 노스캐롤라이나대(채플 힐)의 신문방송학 교수이자 앞서 인용된 소아학회지에 실린 논문의 저자 중 한 명이다. 연예인들의 저속한 행동을 지켜보다 보면 "옷을 전혀 걸치지 않고 걸어 다녀도 되고, 누구와도 섹스가 가능하며, 아이를 낳고도 결혼하지 않게 된다"고 브라운 교수는 말했다.

일부 연구자는 브리트니 스피어스 일당이 미국 문화에 미치는 영향은 그보다 미묘하다고 본다. 하지만 부정적 결과는 거의 같다. 통제 불능의 유명 인사들은 아이들에게 무분별한 섹스를 끝없이 부추기보다는 음주.흡연.우발적인 섹스 등 십대에게 위험한 행동이 정상이라는 느낌을 들게 한다(브리트니.패리스.린지는 "보이 프렌드"가 넘쳐나도 실제 성관계 하는 경우는 드문 듯하다). "이들의 생활양식을 보고 아이들은 사는 게 뭔가 제정신이 아니고 유별나며, 재미를 보고, 심각한 관계를 지속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게 된다"고 노트르담대의 사회학 교수 크리스천 스미스가 말했다. 그러나 정말 위험한 결과는 십대들 자신은 이 같은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그들은 자신의 인격이 주위 세계에 의해 형성된다는 사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할 때 더욱 큰 영향을 받게 된다. "

그럼에도 이런 책임을 니콜 리치와 그 친구들의 가녀린 어깨에 지우기엔 무리인 듯하다. 일부 여자 아이가 패리스.브리트니.린지처럼 옷을 입으려는 행태는 경험적으로 사실이다. 그러나 유명 연예인의 행동과 일반 여자 아이의 행동이 일치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일리노이주 버펄로 그로브에 있는 앱터키시크 주니어 하이스쿨의 마크 쿠즈니에프스키 교장은 "우리 학교 여학생들은 절대로 시카고 중심가의 나이트클럽으로 앞다퉈 몰려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시카고 교외에서 5학년생들을 가르치는 교사 미셸 프라이탁은 여자 아이들이 브리트니의 옷과 춤동작을 숭배할진 모르지만 자신의 학생들은 "브리트니가 속옷을 입지 않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브리트니가 "헤픈 여자"라고 결론 내렸다.

여자 아이와 섹스를 걱정하는 우리의 근심은 계속 늘지만 통계 자료는 다소 상반된 결과를 보여준다. 섹스 관련 조사는 신빙성이 없기로 유명하지만 나와 있는 자료 중 가장 정확한 경우를 보면 10대 여자 아이들의 첫 성경험 연령은 17세로 20년간 변동 폭이 몇 달에 불과하다고 구트마커 연구소 측은 밝혔다. 가장 최근에 조사된 2002년 자료에서 십대 전체 임신율은 1990년에 비해 35% 감소했다고 미 질병통제소는 지적했다. 뿐만 아니라 연예계 우상들은 약물중독 치료소를 수시로 들락거리지만 일반 십대 소녀들의 음주.흡연.마약 투여율은 최근 몇 년간 감소했다고 미시간대 사회연구소는 전했다.

1990년 이후 태어난 여자 아이들은 이미 팀 스포츠, 안전한 피임, 아이비리그 대학이 허용되는 세계에서 산다. 예일대는 1969년까지 여학생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신입생 절반이 여학생이다. 2004 ̄2005년 미국 전체 학사학위 취득자의 57%, 석사학위 취득자의 59%가 여성이었다. 미 의회는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을 비롯해 여성의원 수가 역사상 가장 많은 90명에 이른다(상원 16명, 하원 74명). 당선 가능성이 있는 최초의 여성 대통령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은 이미 출마를 선언했다.

하버드대 아동심리학 교수이자 근저 '알파 걸스(Alpha Girls)'의 저자인 댄 킨들론은 이들 십대 소녀들을 혁명의 딸로 부른다. 여성운동의 혜택을 완전히 누리는 첫 세대라는 뜻이다. "물론 문제 많은 십대도 많다"고 킨들론은 말했다. "예컨대 '광란의 여대생' 비디오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들이 전체 여학생 중 몇%나 될까?" 또 이들은 아름답고 날씬해져야 한다는 압박감이 많다고 그는 덧붙였다. 그러나 이젠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소녀들은 운동선수나 우수한 학생이 될 수도 있다. 또 좋든 나쁘든 자신의 선택에 따라 야한 옷차림을 하거나,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데이트를 하거나, 술에 취해 쓰러질 권리가 있다고 느낀다. 남성들이 유사 이래 그래왔듯 말이다.

사실 부모들은 유사 이래 자녀들이 어떤 사람이 될지 걱정해 왔다. 지금은 이라크 땅인 우르 마을에서 발견된 고대 수메르 문명의 점토판엔 이렇게 적혀 있다. "듣도 보도 못한 요즘 젊은이들의 행동이 계속되도록 내버려 두면 우리는 망한다. " 여왕과 귀족 여성들은 분명 오랫동안 행실이 나빠도 문책 당하지 않았다. 16세기 초 영국왕 헨리 8세의 시녀 앤 볼린은 국왕과 정을 통했을 뿐 아니라 국왕에게 로마 가톨릭을 버리고 영국 성공회를 국교로 채택하도록 설득했다(그녀도 결국 간통죄와 반역죄로 헨리 8세의 손에 처형 당하긴 했지만). 두 사람이 낳은 딸 엘리자베스 1세는 누구와도 동침한 '독신 여왕'이었다.

그러나 역사의 대부분 동안 일반 여성은 혼인서약을 어기고 간통하면 추방.구타.사형에 처해졌다. 예수가 "너희 가운데 죄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요한복음 8장)고 말한 이유는 간통을 저지른 한 여성을 보호하고자 해서다. 미국의 유명 여권운동 작가 나오미 울프는 자신의 책 '혼음(Promiscuities)'에서 연구 중에 접한 가슴아픈 사진 한 장을 회상한다. 1세기 당시 처형된 뒤 시신이 미라처럼 보존된 14세 게르만 소녀의 사진이다. "목을 맨 밧줄을 비트는 데 사용된 교수형 틀을 오른팔로 움켜쥐었다. 당시의 충격과 고통을 보여주듯 입술은 O자로 벌어져 있었다…. " 역사가들은 그 소녀가 눈가리개를 쓰고, 목이 졸렸으며, 익사 당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가장 설득력 있는 처형 사유는 "간통"(지금은 '혼전 섹스')이다.

미국 남북전쟁 이전만 해도 여성들은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추문을 일으킬 자유가 허용되지 않았다. 하지만 새로운 세기가 밝으면서 산업혁명이 노동 계층의 십대 딸들의 삶을 변화시켰다. 집에만 매여있던 젊은 백인 여성들은 사무실이나 상점, 공장에서 일하며 전엔 상상도 못하던 사회적 자유를 누리게 됐다. 물론 그들의 부모나 사회비평가들은 무척 못마땅해 했다. 젊은 흑인 여성들은 그만큼의 경제적 기회는 없었지만 남부의 농장을 탈출해 북부 도시에서 일하며 새로운 자유를 얻었다.

한편 무선전신이나 라디오 같은 기술발전에 따라 문맹률이 개선되면서 전국적인 언론이 부상했다. 1900년께 미국에는 1만6000여 개의 신문이 발행됐다. 최대 신문의 발행부수는 100만 부를 넘었다. 은밀한 비밀을 감추기도 더 힘들어졌다. 1920년대에 들어서자 '나쁜 여자'들은 더욱 득세해(살로메나 딜라일라의 전통을 이어받아) 남자들을 파멸로 이끌었을 뿐 아니라 부유해지고 유명해졌다.

"내 복숭아가 싫다고 나무 전체를 흔들지는 말아라"와 같은 대사로 유명한 메이 웨스트는 20세기 나쁜 여자의 원조일지 모른다. 1893년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난 웨스트는 음란한 연극을 직접 쓰고 연기하며 관객에게 즐거움과 논란거리를 제공했다. 그녀가 쓴 '섹스(Sex)'라는 연극은 부둣가 창녀와 포주를 다룬 내용으로 전국적인 인기를 얻었지만 넘지말아야 할 선을 넘었다. 1927년 경찰은 뉴욕의 공연장을 급습해 그녀를 체포했다. 뉴욕 타임스에 따르면 웨스트는 "젊은이들의 윤리의식을 타락시키는" 공연을 했다는 이유로 열흘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7년 후 그녀는 '교회의 반격(The Churches Protest)'이란 제목의 기사로 뉴스위크 표지에 등장했다. 기사는 그녀를 "할리우드적 악행의 화신"으로 묘사했다.

악녀의 여왕 등장

1914년 태어난 집시 로즈 리는 메이 웨스트의 행보를 그대로 좇았다. 스트립쇼의 대가였던 리가 1930년대 뉴욕의 민스키스 윈터가든에서 보여준 공연은 화제 만발이었다. 그 극장의 공동 소유주인 허버트 민스키는 1937년 의회 청문회에 출두해 리를 "미국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스타 중 한 명"이라고 소개했다. 워싱턴 포스트 기사에 따르면 "집시 로즈 리라는 이름이 호명되는 순간 정적이 흘렀다. " 리는 큰 인기를 누리고 주당 2000달러를 받았지만 풍기문란죄로 뉴욕 경찰에 여러 차례 체포됐다. 한번은 "벌거벗지 않고, 파란 조명으로 온몸을 감쌌을 뿐"이라고 항변했다고 한다.

50년대에 들어 할리우드와 대중은 여성 스타의 무분별한 사생활에 엄격한 잣대를 댔다. 1950년 잉그리드 버그먼은 '성 메리 성당의 종(The Bells of St. Mary's)'과 '오명(Notorious)'으로 친숙한 미국의 국민배우였다. 하지만 유부녀였던 버그먼이 마찬가지로 유부남이었던 영화감독 로베르토 로셀리니와 불륜을 저지르고 딸을 낳자 할리우드는 그녀를 철저히 배척했다. 한 상원의원은 버그먼을 "강력한 악의 본보기"라고 칭했다[몇 년 뒤 할리우드는 '아나스타샤(Anastasia)'로 아카데미상을 안기며 그녀를 '용서했다']. 메릴린 먼로가 누드 달력을 찍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할리우드는 그녀의 배우 생활이 끝났다고 선언하기도 했다(그러나 그녀는 한 달 뒤 라이프지의 표지를 촬영했으며 영화 경력에서 최고의 배역을 계속 맡았다).

1962년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영화 '클레오파트라' 촬영 도중 남편 에디 피셔를 두고 리처드 버턴과 불륜에 빠지자 미국은 또 한 차례 떠들썩했다. 교황청은 테일러를 '윤리의식이 희박한 여성'이라고 깎아내렸다. 1964년 뉴스위크 기사에 따르면 테일러와 버턴이 토론토의 한 호텔에 묵자 시위대가 "간통의 포도주를 마시지 말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밖에서 행진했다. 그러나 곧 더 중대한 일이 생겼다. TV에선 베트남 전쟁을 중계하고, 민권운동 행렬이 거리를 메웠다. JFK, 마틴 루터 킹, 로버트 케네디의 암살 사건으로 나라 분위기는 숙연해졌다. 60년대는 또 먹는 피임약이 개발되고, 성 혁명이 도래한 시기였다. 더 이상 할리우드만 분위기가 문란하지 않았다. 오히려 피임약과 함께 마리화나 몇 개를 지갑에 넣고 다니는 이웃집 소녀가 걱정거리가 됐다.

미국은 이제 웬만해선 충격을 받지 않게 됐다. 그러던 1984년 제1회 MTV 비디오 뮤직 어워즈에서 마돈나란 가수가 웨딩드레스 차림으로'라이크 어 버진'을 부르며 무대 바닥에서 몸부림쳤다. 1년 뒤 마돈나의 '버진' 투어가 열렸을 때 그녀를 동경하는 팬들이 검정 고무 팔찌를 잔뜩 차고 찢어진 레이스와 스판덱스를 입고 콘서트장에 몰려들자 부모들은 속이 탔다. 1986년 임신한 십대를 다룬 마돈나의 'Papa Don't Preach' 싱글곡이 발표되자 가족계획 단체와 가톨릭계가 들고 일어났다. 1992년 온갖 종류의 성적 탐닉을 예찬하는 화보집 '섹스'로 마돈나는 '악녀의 여왕'이라는 자리를 굳혔다. 11년 뒤 마돈나는 그 왕관을 브리트니 스피어스에게 물려줬다. 또 다른 MTV 비디오 뮤직 어워즈 공연에서 오랜 프렌치 키스와 함께.

우리가 알듯 브리트니 스피어스는 그 왕관을 잘 이어받았다. 결혼 하루 만에 파혼한 일을 제쳐두면 여자 아이들이 브리트니와 그녀의 연예인 친구들에게 이끌리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이 같은 21세기 '악녀'들은 젊고, 아름답고, 부유하다. 학교나 통금 시간, 부모의 간섭도 받지 않는다. 뉴올리언스의 루이스 S 맥기 고교 3학년생 엠마 보이스(17)는 "그녀들은 멋진 옷과 남자 친구가 있다. 정말 재미있게 사는 듯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끌림과 숭배에는 큰 차이가 있다. 브리트니 일당이 음주운전을 하다 체포되고, 절친한 친구와 싸우는 일이 다반사이다 보니 보이스처럼 공부도, 승마도 잘하는 여자 아이들은 어렵지 않게 자신이 그들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보이스는 "친구들과 나는 그들을 보면 코웃음부터 나온다"며 "우리의 행실은 비교적 나은 듯하다. 린지처럼 약물중독 치료소에 가지 않을 테니까"라고 말했다.

보이스는 자신과 친구들이 이젠 연예인에게 열광하는 나이는 지났다고 말했다. 인기 연예인의 영향에 가장 취약한 시기는 12 ̄14세다. "여자 아이들이 자신과 연결지을 뭔가를 찾는 시기가 바로 이때"라고 일리노이주 버펄로 그로브에 있는 어느 중학교 교장 쿠즈니에프스키는 말했다. "그 나이에는 린지 로핸처럼 되는 게 바람직해 보인다. " 부모가 걱정할 만한 정당한 이유다. 그러나 이런 행동도 그때뿐일지 모른다. 최근 자신의 중학교 때 일기장을 본 적이 있나? 우리와 마찬가지로 당신도 그 당시에는 24세나 34세의 자신에게 거의 영향을 주지 않은 사소한 문제에 집착했다. 당신의 딸이 패리스나 린지처럼 옷입고 행동한다 해도 바에서 야한 춤을 추는 여자가 되진 않는다. 고교 때 빗나간 행동을 한 많은 여자 아이가 나중엔 행복한 가정을 꾸려가는 성공적인 전문 직업인이 된다(우리를 보라).

그리고 인정하고 싶진 않겠지만 어른도 공범이다. 자녀가 이 같은 '악녀'들을 숭배하면 불안감이 들지만 우리도 역시 어스 매거진을 좋아한다. 유투브 동영상이나 할리우드 소식을 전하는 케이블 채널 'E! True Hollywood Stories'에 사족을 못 쓴다. 그렇다면 유방확대 수술을 받는 17세 소녀가 늘어난다고 걱정만 하기보다는 똑부러지게 안 된다고 말해주면 어떨까? 아무튼 미성년자 아닌가. 중학생이 매춘부처럼 옷을 입는다고 걱정하지만 LA의 유명 옷 체인점 포에버21에서 계속 옷을 구입할 만큼 용돈을 많이 타는 아이는 거의 없다. 연예인 '악녀'들이 제기하는 가장 큰 위협은 스타일리스트와 디자이너들이 옷을 입힌 자신들의 '아바타'를 계속 선전한다는 점인 듯하다. 그들은 아예 옷, 휴대전화기, 개와 남자들을 '소비'하려 태어난 듯하다. 그러나 희소식도 있다. 돈줄을 쥔 사람은 우리이기 때문에 통제가 얼마든지 가능하다.

자녀들이 브리트니 일당에게서 몇 가지 나쁜 버릇을 배우더라도 우리는 그들을 처음부터 잘 교육시킨다. 어른들은 자녀가 기저귀를 찼을 때부터 가치관을 가르친다. "아이들은 가까이 있는 본보기를 모방함으로써 좋은 도덕관과 가치관을 배운다"고 미셀 보바는 말했다. 보바는 (가제)'도덕적 지능을 가르치다(Teaching Moral Intelligence)'의 저자다.

전문가들은 아무리 조용하고 말수가 적은 10대도 부모를 보고 행동양식을 배운다고 말했다. 따라서 어른은 행동에 신중해야 한다. 자녀 앞에서 친구들과 함께 연예인의 근황을 소란하게 떠벌리거나, 인기를 일생의 목표로 내세우지 말야야 한다. 부모는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자녀의 관심사를 이해하고 그런 문제를 두고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설령 패리스가 어떤 속옷을 입었을까 하는 문제일지라도). 이렇게 하면 자녀가 자신의 생각을 보다 쉽게 드러낸다. "부모는 왜 자녀가 그런 관심사를 갖게 됐는지를 들은 뒤 아이에게 그 문제를 생각해보도록 자연스럽게 유도해야 한다"고 보바는 말했다. 다시 말해 망나니 연예인과 선정적 언론에 오르내리는 그들의 별난 행동도 반면교사가 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첫째 교훈은 뭘까? 속옷을 입어라.

KATHLEEN DEVENY, RAINA KELLY 기자
강태욱.류지원.신버들 tkang@joongang. co. 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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