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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공동번영위한 과기협력 다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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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분단 46년만에 남북한 과학기술자가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여 함께 학술토론을 벌이고 우의를 다진 「91 국제과학기술 학술회의」가 중국 연변의 연길시에서 지난 23일 4일간의 모든 일정을 마치고 폐막됐다. 이번 학술회의의 배경과 의의·성과등을 결산해본다. 【연길=신종오특파원】
이번 대회는 중국조선족과학가협회(회장 강분길 연변대교수)와 연변조선족 자치주 과학기술협회(주석 김금룡)에 의해 약1년전부터 추진돼 왔다.
지난해 연길에서 열린 물리학학술대회를 계기로 남북한과 중국의 한민족과학기술자가 함께 모여 학술발표와 정보교환·상호유대를 위한 학술회의를 갖자는 의견들이 모아져 이번 학술회의가 탄생됐다.
남북한의 의사타진결과 긍정적 반응을 얻은 연변측은 지난 4월말까지 참가자명단, 5월말까지 논문발표자와 초록을 보내줄 것을 요청했다.
우리측은 지정기일까지 모든 자료를 보냈으나 북한측은 5월말에야 45명의 명단을 보내왔고 논문초록도 7월10일에야 보내와 준비측의 애를 태우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개막이 임박하면서 과연 북한측이 대규모 대표단을 보내올 것인지에 많은 관심이 모아졌는데 개막 하루전 45명 전원이 성북 회령을 거쳐 연길에 도착함으로써 반쪽대회의 위기를 넘겼다.
이번 학술회의에는 우리측에서 정조영단장(한국과학기술단체 총연합회 회장직무대행)등 1백1명(보도진 14명포함), 북한이 허병진단장(국가과학기술총연맹중앙위원회 부위원장)등 45명, 중국에서 2백60명, 미국에서 김순경·변종화·김성호·이서구박사등 8명, 캐나다 2명, 일본 1명등 모두 4백16명이 참가했다.
한편 이와별도로 우리측에서 지질과 물리분야에서 12명이 추가로 참가했다.
북한은 조선과학원 12명, 김일성종합대 6명, 함흥화학공업대 4명, 금책공대 2l명, 김형직사범대·김철주사범대·건설건재대·도시경영단과대·조선이과대에서 각 1명, 이밖에 국가과학기술위및 국가과학기술총연맹에서 9명이 참가했다.
직급별로는 박사 16명, 준박사 14명, 담당지도원 7명 등이다. 이가운데는 조주경(김일성종합대 교수·수학), 김형락(화공대부학장·화공학), 이돈(과학원·지질학)등 세명의 「후보원사」(「원사」아래의 최고학문권위자)가 포함돼 있었고 여성도 2명이 참가했다.
한두명을 제외하고는 50대후반 이후의 원로급으로 구성해 참가자의 수준에도 신경을 쓴 것으로 보였다.
20일 오전 연변예술극장의 1천3백석을 참가자들이 꽉메운 가운데 열린 개회식에서 조완규대회고문(전서울대총장)이 「민족번영의 기틀-그것은 과학기술」을, 조선과학원 함흥분원 이상균부원장이 「화학공업발전의 특수성과 발전과정」에 대해 각각 특별강연했다.
학술발표는 20일 오후부터3일간 백산호텔에서 있었으며 22일 연길빈관에서 만찬을 겸한 폐회식을 갖고 다음날 남북한 1백50명등 3백명이 백두산정상까지 함께 등정함으로써 모든 일정을 마쳤다.

<학술발표>수학등 논문 2백여편 발표|북 과학용어 한글화에 눈길
화학, 수학, 의·약학, 환경·조경, 지질등 5개분과로 나둬 백산호델에서 열린 학술발표에는 학학분과에서 1백3편, 의·약학 42편, 수학26편, 환경·조경 17편, 지질34편등 모두 2백22편(물리 2편 별도)이 발표됐다.
국가별로는 한국이 화학55편등 80편, 북한 24편, 중국 1백7편, 미·가·일에서 11편등이었다. 북한은 자신들이 강한 분야로 꼽고 있는 화학·화공분야에서 14편, 수학에서 3편을 발표한 반면 의·약학분야는 열세라고 인식한 탓인지 한명도 참석하지 않아 우리측을 실망시키기도 했다.
수학분과위원장으로 참가한 김종식교수(서울대)는 『우리가 순수수학에 치중하고 있는 반면 북한은 생산·경제활동과 연계된 응용수학에 치중하고 있는것 같다』고 말하고 용어의 한글화작업이 눈길을 모았다고 전했다. 예를들어 소수는「씨수」로, 이산은「띄엄」으로, 역도 성립한다는「거꿀로 선다」등으로 표현한다는 것이다.
의·약학분야에서 아무도 참석안한데 대해 이상섭교수(서울대약대)는 그들의 수준이 노출될 것을 두려워해 오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했다. 박종세박사(한국과학기술연구원 도핑컨트롤 센터장)는북목 허단장방으로 찾아가 95년의 삼지연 동계아시안게임을 앞두고 도핑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역설하고 내년 평양의 학술대회는 도핑을 중요 주체의 하나로 삼으면 좋을 것이라며 그들에게 대회개최의 명분을 주기도 했다.
북한은 중국으로부터 도핑기술을 배우려다 중국측이『더 잘하는 한국에서 배우라며 권유하는 바람에 무안당한 일도 있었다는것.
지질분야에서 북한은 4편을 발표했으나 기기를 이용한 분석연구보다는 현지조사연구가 많았다고 김종수박사(동력자원연구소)가 설명했다. 김박사는 고생대의 분류에서 지금까지는 평안계와 조선계로 구분했으나 그 사이에 임률계를 새로 실정한것이 이채로웠다고 말했다.
남북한과 중국등의 한민족 과학기술자들은 만찬폐회식에서 서로 어울리며 작별을 아쉬워했다.

<결산·총평>"남북학자 토론의장 마련 자체가 의의"|과기협의체 제의에 북측 호의적 반응
이번 학술 회의는 남북한의 과학기술자들이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여 논문을 발표하고 질의하는 새로운 만남의 장을 마련했다는데 큰 의의가 있었다.
논문 수준을 비교하기에는 때이른 감이 있으나 논문의 질이나 형식에서 국제수준에는 미치지 못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이었다. 특히 북한은 최신 세계정보를 얻는데 어려움이 많은듯 논문말미의 참고문헌은 거의 대부분 60, 70년대의 것이어서 우리측 학자들마저 안타까워했다.
대규모 학술행사에 북한이 대거 참가한 것은 상당히 뜻있는 일로 조완규박사는 『과학기술발전 없이는 국제정쟁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절박한 환경여건이 북으로 하여금 참여하게한 동기였을것』이라고 분석했다.
북측의 허단장도 개회식에서 『탁구와 축구가 한팀이 됐던 것처럼 과학기술도 서로 합심해 조선민족의 우수성을 과시하자』고 역설한데이어 폐회식에서도 『과학기술은 국가발전의 주체로 공동이익을 위해 친선을 강화해나가자』고 거듭 강조한 것은 이 분야에서의 협력가능의사가 높다는 것으로 우리측은 받아들이고 있다.
정조영단장이 「세계한민족과학기술자 공동협의체」구성과 다음 대회의 평양개최를 제의한데 대해 북한측이 호의적인 반응을 보인 것도 이번 학술대회 큰 성과의 하나로 앞으로 북한측의 최종결정여부가 주목되고 있다.
정단장은 이번 분위기를 계승해 나간다면 남북한 과학장관회당도 성사될수 있을것이라며 남북고위회담에 과학기술이 주요 의제로 포함돼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측이 세계학술현황에 관한 최신 정보획득에 어려움을 겪고있는 것을 확인한 이상 이대로 두면 남북한의과학기술격차는 더욱 벌어질 것이 뻔하므로 앞으로 이같은 모임은 물론 정보제공에우리측이 적극적인 자세로 나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대회스케치>폐회식땐 박수속 "통일"함성|한복감-수예품등 선물 교환
○…중국측은 우리측 보도진의 취재활동을 노골적으로 봉쇄해 비난을 샀다.
개회식때 식장에 들어가지 못하게함은 물론 학술발표장출입도 제한했으며 심지어는 백산호텔로 예약된 숙소배정마저 거절, 결국은 다른 호텔로 옮기는 수난을 겪었다.
이는 중국 신화통신측의 작용과 북한측 항의 때문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만찬폐회식에서 중국과학가협회측은 남북한에「과학기술을 통해 새세계를 열고 선경에 함께 오르자」는 내용의 금기를 각각 전달.
이어 남북한 단잠끼리 선물교환순서에서는 3백여명의 참석자가 일제히 기립, 1분여동안 박수를 치며 『통일만세』를 외치기도 했다. 우리측은 시계와 계산기등을, 북한측은 자기화병을 선물로 준비했다.
○…각 분과에서도 선물교환이 있었는데 우리측은 학술용어 집·논문집·문방구류·부인 한복감등을, 북한측은 용어집·화보집·인삼·수예품·레코드판등 준비, 서로 교환했다.
○…백두산 등정은 6대의 지프와 7대의 대형버스에 분승, 23일 새벽 백산호텔을 출발했는테 1호차에는 세나라 단장이 함께 타고 차량행렬을 선도했다.
북한팀은 단장이하 전원이 빨간색의 두줄이 든 감색운동복차림으로 산에 올라 눈길을 모았다. 남북한 과학자들은 이별이 아쉬운 듯 천지를 배경으로 기념촬영하기에 바쁜 모습들이었다.
○…북한대표단은 함흥에 모여 기차편으로 회령까지간후 버스편으로 연길에 도착했으며 같은 코스로 되돌아갔다. 한국대표단은 백두산등정 다음날인 24일 연길을 출발, 귀국길에 올랐으나 북한대표단은 이틀을 더 머무른뒤 26일 연길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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