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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쿠데타 지시했던 북한 속보인뒤 감추기 바쁘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3일천하」로 끝난 소련강경보수파의 쿠데타로 희와 비를 진하게 맛본 북한이 앞으로 어떻게 대내외정책을 추진해나갈 것인지 주목되고있다.
소련 군부쿠데타의 발생 및 실패가 북한당국에 미친 영향은 제4차 남북고위급회담을 연기시키는 상황을 조성할만큼 지대한 것이었다.
북한은 특히 소련 군부쿠데타를 전세계국가중 가장 앞장서서 지지했다.
이에따라 이번 쿠데타로 입지가 강화된 소련 개혁파는 물론 많은 국가들에 그들의 「속마음」을 드러낸 꼴이 돼 내외적으로 편치못한 국면에 처해있다고 여겨진다.

<상세보도하며 흥분>
이런 측면에서 북한이 소련쿠데타 과정에서 보인 반응과 예상되는 북한의 대내외 정책을 점검해 본다.
◇북한의 반응=소련 쿠데타에 대한 북한의 시간대별 반응을 보면 북한이 이번 쿠데타에 기울인 관심의 정도가 어떠했는지를 여실히 알수 있다.
내외통신에 따르면 북한은 쿠데타발생 수시간만인 19일오후7시 이 사실을 보도했다.
이는 그동안 국제적인 뉴스들을 뒤늦게 보도해오던 북한언론의 속성상 매우 이례적인 것이었다.
게다가 정규뉴스시간이 아닌 시간대에 보도한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이를 보면 북한당국이 일단 흥분했다는 것을 알수있다.
이같은 북한의 심정은 쿠데타발생 이틀째인 20일의 보도내용에 잘 나타나 있다.
북한방송들은 소련 국가비상사태위원회가 발표한 결정서 1호, 신문폐간조치, 야나예프대통령직무대행의 명령등을 잇따라 보도했다.
이와함께 북한은 로동신문 논설을 통해 사회주의 완수를 강조하고 나섰다.
「사회주의 승리가 역사적 필연」이라는 제목의 이 논설은『인류가 사회주의 길을 따라 나가는 것은 그 어떤 힘으로도 막을수 없는 역사발전의 법칙』이라고 주장했다.
이같은 북한의 고무된 태도는 그동안 고르바초프에 대해가졌던 「감정」에 비추어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실패뉴스 늦고 짧게>
유엔에 가입하게되는등 자신들이 현대의 상항까지 몰리게된 것은 고르바초프 때문이라고 보고있는 북한으로서 그의 퇴진은 그야말로 「앓던 이가 빠진격」이기 때문.
그러나 소련 쿠데타가 반전되기 시작한 21일 오후부터 북한방송들의 보도태도는 급변했다.
쿠데타주동자들이 체포되고 고르바초프가 복귀하는 뉴스에 대해 침묵을 지켰다.
그러나 22일 정오뉴스에서 고르바초프의 성명및 군부에 철수사실을 간략히 보도하는 선에머물렀다.
이같은 북한의 보도대도는 쿠데타 실패에 따른 실망감의 반증이라 볼수 있다.
◇예상되는 대내외정책=북한은 이번 소련 쿠데타사건의 사대추이를 오판함에 따라 여러 측면에서 부담을 갖게됐다.
한편 북한은 최근 유엔가입, 핵사찰서명 수락, 대미·대일관계개선, 경제특구구상등 개방의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번 소련의 보수강경파에 의한 쿠데타에 적극 지지함으로써 「사실 우리의 기본생각은 이렇다」는 속마음을 드러냈다.
따라서 북한은 우선 이같은 부담에서 벗어나 쿠데타 이전상황으로 대외관계를 조성하려는 노력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김영남외교부장이 22일 오후 카프토 평양주재 소련대사를 만나 고르바초프대통령의 원만한 직무수행을 기대한다고 언급한 점은 이같은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김의 이같은 발언은 『우리가 공식적으로 소련 군부쿠데타를 지지한 적은 없다』는 의사를 소련에 전달하려는 의도라고 볼수 있다.
북한은 그러면서 과거 동구사태때에도 써먹었던 「국가의 국내문제는 그 국가의 인민자신들이 해결해야 한다」는 논리를 이번에도 적용했다.
여기에는 「소련사태는 소련인민들에 의해 좌우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북한의 문제는 북한인민들이 알아서 처리한다는 의도도 포함돼 있음은 물론이다.
어쨌든 북한은 앞으로 대외관계에서 김외교부장이 소련대사에게 보인 유연성을 계속 견지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남대화에서는 소극적으로 나올 공산이 크다.

<남쪽 만나봐야 손해>
이번 소련사태는 남측당국으로 하여금 자신감을 갖도록한 요인이라는 판단하에, 이같은 상황에서 남측당국을 만나봐야 득이 될게 없다는 생각을 할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때 북한이 소련쿠데타 실패후 가장 역점을 둔 분야는 내부 체제단속일 것으로 보인다.
북한당국에 소련사태가 의미심장할수 있는 대목은 ▲「군이 당의 통제」를 벗어났다는 점▲민이 군을 뒤엎었다는 점이라고 요약할수 있다.
즉 소련의 쿠데타는 군이 공산당을 위해 일어섰다는 점이기는 하나 그 이전에 당이 허물어지면 불미스러운 사태가 발생한다는 측면을 북한당국에 인식시킨 것이다.
이와함께 민이 궐기해 막강한 군을 타도하면서 공산당해체를 요구하고 있는 소련내 움직임은 큰 부담이 아닐수 없다.
따라서 북한당국은 「내부적 단결및 외부적 융통성 발휘」라는 기조에서 대내외정책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안희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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