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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만으로 시장이 폭발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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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카드 브랜드 이미지 차별화와 관련, 앙드레 김과 원효성 국민은행 부행장이 조인식을 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 지난해 12월 청룡영화제를 비롯해 방송 3사 연예대상 시상식이 줄을 이었다.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붉은 카펫을 통과해 포토라인에 선 최고 톱스타들 사이에 단연 눈길을 끈 사람이 앙드레 김이다.

‘패션 디자이너’라는 수식어가 따로 필요 없는 ‘국민 디자이너’이자 외교관 뺨치는 ‘민간 외교관’으로 대중의 관심과 화제를 몰고 다니는 그는 최근 업계에서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 마케팅의 독보적 존재’ ‘패션·건축·제품을 망라한 대표적 디자이너 가운데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렇다면 앙드레 김의 브랜드 파워는 얼마나 될까?


2001년 한불화장품 업체와 첫 라이선스 계약을 한 이래 ‘앙드레 김’을 브랜드로 내세운 제품은 골프웨어·키즈(아동복)·주얼리·아이웨어(안경)·이너웨어·홈(인테리어 침구) 등 총 6종에 이른다. 그뿐만 아니라 삼성과 손을 잡고 아파트 실내 인테리어, 가전제품 디자인과 마케팅에 참여하는 등 브랜드 영역을 전방위로 확장 중이다.

삼성경제연구소 기술산업실 이안재 수석연구원에 따르면 디자이너 브랜드 마케팅의 활성화 원인을 시장소비자와 기업 측면으로 나눌 수 있다. “소비자는 기본적으로 남과 차별되고 멋진 디자인을 갖고 싶은 욕구가 있다.

기업은 일정한 틀 내에서 계속 디자인을 하다 보니 창의성과 참신성이 부족함을 느끼게 되고 따라서 기존 제품 라인업과 차별화가 필요해 외부 디자이너 브랜드를 활용하고 있다. 마케팅 면에서도 프리미엄 가치를 더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나아가 디자이너 자체를 홍보매개로 활용하는 등 여러 가지 전략적 차원을 고려한 방안”이라고 그는 분석했다.

기업이 디자이너와 제휴를 모색할 때 특정 디자이너의 브랜드 파워를 평가하는 척도에 대해 LG경제연구원 박정현 선임연구원은 다음 사항을 꼽았다. 첫째 인지도를 가늠할 수 있는 대중성, 둘째 프리미엄 이미지를 구현하는 데 적합한 고급성, 셋째 디자인이 실제 상품화로 연결될 수 있을지를 가늠하는 상품성(혹은 실용성), 넷째 디자이너 개인의 브랜드 이미지 관리능력 등이다.

앙드레 김 브랜드 파워 위상

81년 미스유니버스대회 지명 디자이너
82년 이탈리아 대통령 문화공로 훈장 수여
82년 제1회 하와이 국제가요제 심사위원
92년 바르셀로나, 96년 애틀랜타 IOC 초청 세계올림픽 패션쇼 개최
97년 패션 디자이너 최초 대한민국 대통령 문화훈장 수여
99년 11월 6일, 2003년 10월 18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시장 ‘앙드레 김의 날’ 선포
2000년 프랑스 정부 예술·문학훈장 수여
2001년 세계기능올림픽대회 친선대사 임명
2002년 세계평화아동축제 아동평화대사
2003년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친선대사
2004년 국제백신연구소(IVI) 한국후원회 홍보대사
2005년 한국복식학회 최고 디자이너상 수상
2005년 제39회 납세의 날 국무총리 표창
2006년 한국관광공사 한국관광홍보대사 위촉

박 연구원은 “디자이너 개인의 브랜드 이미지 관리능력이 중요한 것은 고품격, 고급화를 지향하는 제품 이미지에 자칫 커다란 타격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연예인 CF 모델이 불미스러운 스캔들이나 사건에 휘말리면 관련 제품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다.
그런데 VIP를 겨냥한 디자이너 브랜드 마케팅에서는 이보다 훨씬 더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신용카드를 예술로 승화”

모 포털 지식사이트에는 ‘앙드레 김이 흔히 쓰는 말’과 공식석상에서 나온 인상적인 말을 모은 ‘앙드레 김 어록’이 올라 있고 그를 패러디한 선거 포스터도 떠돌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오우~엘레강~스하고 판타스틱해요’ ‘아우~저질이야’ ‘뷰~리풀’ 등 그의 독특한 말투와 억양은 개그맨 이혁재를 비롯해 많은 연예인이 즐겨 흉내 내는 단골 개그 메뉴다.

삼성전자 생활가전총괄 디자인그룹 정상욱 상무는 “디자인 등 업무 제휴에 앞서 앙드레 김이 코미디 소재가 되거나 희화화된 면을 감안했지만 그만큼 대중성과 친화력이 있다는 점을 높이 샀다”고 했다.

지난해 KB(국민)카드는 앙드레 김 디자인을 적용한 ‘KB포인트리 카드’를 출시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카드영업추진부 김용호 팀장은 “독특한 문양과 화려한 컬러를 채택해 신용카드 디자인을 예술로 승화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회원모집에 있어 카드 디자인의 영향이 매우 컸다. 향후 앙드레 김 카드는 플래티넘 급에만 적용할 계획이다. 또 최상위 VIP 고객을 대상으로 한 카드를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삼성의 정 상무는 “가전제품의 감성적, 상징적 가치 업그레이드를 고려해 패션과의 접목을 생각했고 제일 먼저 떠오른 사람이 앙드레 김이었다. 그는 수십 년간 패션계를 리드해오며 국내외적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작품 세계에 전통성이 있고 특이성과 독창성을 잘 유지해온 점을 높이 샀다.

동서양을 초월한 왕실의 품격을 추구하는 그의 정신이 가전의 내구성과 프리미엄 가전 이미지와 잘 맞아떨어졌다”며 “최고 프리미엄 제품 라인에 앙드레 김을 대입했다”고 설명했다.

앙드레 김은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자신의 패션에 우아한 품격과 고급성을 부여하며 예술작품 이미지를 일관되게 고수해 왔다. 다양한 제품에서 최고급 프리미엄 브랜드 이미지 구현이 가능한 이유다. 프랑스 파리 패션쇼는 크게 ‘프레타포르테(pret-a-porter)’와 ‘오트 쿠튀르(haute couture)’로 나뉘는데 프레타포르테가 유명 디자이너의 기성복 라인을 선보이는 쇼라면 오트 쿠튀르는 ‘작품’을 선보이는 자리다.

앙드레 김 패션쇼는 오트 쿠튀르이며 그의 옷들은 VIP 고객의 개인 취향에 맞춰 프라이빗 오더(Private Order)로 판매된다. 국내외 거의 대부분의 디자이너가 기성복 라인을 판매하는데 반해 앙드레 김은 VIP 고객을 위한 예술로서의 패션을 지향한다.

이런 점 때문에 그의 패션쇼는 일부에서 “입지도 못할 옷을 내놓는다”는 평가를 듣지만 대신 ‘희소성’과 ‘작품’의 가치를 지닌다.

패션쇼를 마케팅에 접목

그의 상품성은 이미 화장품, 안경, 속옷, 귀금속 등 7개 라이선스 브랜드를 탄생시키고 건설, 가전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로 활동 영역이 확대되는 데서 입증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그동안의 실적에서도 알 수 있다. 양문형 냉장고, 김치냉장고, 세탁기 등 세 가전제품에 앙드레 김 라인을 선보인 삼성전자에 따르면 회사 전체 프리미엄 냉장고 판매량에서 앙드레 김 모델이 차지하는 비중이 30%다. 최고급 콰트로 지펠의 경우 앙드레 김 모델이 판매량의 40%를 차지했다.

앙드레 김 모델의 판매량은 출시 첫달인 지난해 9월 15%로 출발해 10월 23%, 11월과 12월 각 30%를 차지하는 등 가파르게 증가했다.

특히 김치냉장고는 지난해 국내 마켓셰어에서 1위를 차지하며 ‘2006 고객만족도 1위’에 올랐다. 삼성 측은 앙드레 김 모델의 판매가 빠른 성장세를 보이며 파급 효과가 큰 것으로 나타나자 중국 등 해외수출을 적극 추진 중이다.

지난해 10월 GS홈쇼핑에서 런칭한 인테리어 침구 ‘앙드레 김 홈’은 1회(60분) 방송에서 약 4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GS홈쇼핑 관계자는 “워낙 유명한 분이고 네임 밸류가 있으니까 쉽게 고객들을 납득시켜 끌어들일 수 있다는 점에서 판매를 결정했다. 제품에 대한 고객 반응이 뜨거웠고 침구 가운데 상위 랭킹을 차지했다”고 덧붙였다.

TV홈쇼핑을 통해 판매된 속옷 ‘엔카르타’는 2005년 19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아동복의 명품화를 지향하며 지난해 런칭한 ‘앙드레 김 키즈’는 올해 매출 목표를 90억원으로 잡고 해외 진출을 모색 중이다. KB카드 김용호 팀장은 “금융에서 브랜드 가치를 내세우기 쉽지 않은데 앙드레 김 카드에 대한 소비자 반응은 ‘쇼킹했다’는 게 내부 평가”라고 말했다.

브랜드 이미지 관리능력은 그의 철저한 프로정신에서 나온다. 또 평소 품위와 교양, 예의를 중시하는 생활 태도도 이미지 제고에 도움이 되고 있다. 삼성의 정 상무는 “앙드레 김은 작품에 대한 자부심과 일에 대한 열정 외에 자기관리가 철저하고 프로정신이 투철하다. 행동이나 말에 한치의 흐트러짐이 없고,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 씀씀이가 세심하다.

알면 알수록 존경스러운 분”이라고 감탄했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앙드레 김은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일간지 14개를 본 뒤 자신의 ‘아틀리에’로 출근한다. 사회 흐름과 트렌드를 놓치지 않고 지식과 교양을 쌓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의 일환이다.

LG경제연구원 박정현 선임연구원은 “브랜드 파워 평가 척도 네 가지를 고려할 때 앙드레 김은 이를 골고루 충족시켜줄 뿐만 아니라 최고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셈”이라고 평가했다. 앙드레 김의 브랜드 파워를 극대화시키는 것 가운데 프로모터(Promoter)적 성격이 있다. 이는 화려한 패션쇼로 요약된다.

그의 패션쇼 무대는 유명 스포츠인과 연예인 등 당대 최고 스타라면 반드시 거쳐가는 자리가 됐다. 그뿐만 아니라 객석도 각국 대사와 연예인, 정치인 등 국내외 유명인사들로 채워진다. 패션쇼 자체가 하나의 이벤트로 주목받으면서 방송 등 언론을 통해 수시로 노출된다.

기업들이 그의 패션쇼에 등장하는 톱스타 모델을 일일이 섭외해 마케팅하기는 거의 불가능하지만 앙드레 김 패션쇼와 마케팅을 접목하면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창출한다.

앙드레 김이 실내 인테리어 디자인을 담당한 삼성 래미안 아파트의 경우 모델하우스에서 그의 패션쇼 행사를 개최해 “모델하우스를 문화행사장으로 업그레이드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돈으로 따지기 힘든 높은 가치”

앙드레 김이 CF 모델로 깜짝 등장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LG생활건강이 새로운 세제를 출시하면서 그를 모델로 기용한 것. 평소 즐겨 입는 흰옷 차림으로 출연해 “옷에 얼룩이 묻었네요”라는 코믹한 멘트로 시청자들 웃음을 자아냈다.

CF 출연을 하지 않던 그가 모델 계약을 한 이유는 출연료 중 일부를 어린이 구호단체인 유니세프에 기증하겠다고 회사 측이 약속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롯데백화점은 일주일간 본점 1층 로비에 삼성전자 생활가전 앙드레 김 모델을 전시하고 로드쇼 행사를 펼쳤다. 앙드레 김 팬 사인회가 있던 날은 많은 사람이 몰렸다. 롯데백화점 가전팀 담당자는 “로드쇼 직후 백화점 내 삼성 가전제품의 매출이 10% 상승하는 효과를 거뒀고, 백화점도 홍보효과를 톡톡히 누렸다”고 했다.

삼성의 정 상무는 “언론매체에서 가전제품을 다룰 때는 주로 경제지에서 다루지만 앙드레 김은 문화, 사회, 연예 등 각 분야에서 전방위적으로 기사가 나오기 때문에 돈 들여 광고하지 않아도 홍보 효과가 크다.

톱스타의 경우 수명이 짧지만 앙드레 김은 수십 년간 패션과 외교사절, 사회공헌 등으로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자산 가치나 광고 효과는 국내 최고 톱스타 이상으로 본다. 이는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울 정도로 엄청나다”고 했다.

데카르트 신드롬

기술과 예술이 만나 큰 돈 만든다

최근 가전제품에 감성과 예술적 요소를 강조한 ‘데카르트 신드롬’이 확산하고 있다. ‘데카르트’는 ‘기술(tech)’과 ‘예술(art)’을 합성한 신조어로 첨단 가전제품에 소비자들의 오감을 만족시킬 수 있는 디자인과 기즌성을 구현한 것을 일컫는다.

건축, 가구 등 가전제품 외에도 기업들이 유명 디자이너나 예술을 활용해 제품의 인지도를 높이고 명품화하는 흐름은 선진국에서 이미 10년 전부터 있어 왔다. 하지만 국내에서 데카르트 열풍이 일기 시작한 것은 불과 1~2년 전이다.

그동안 생산된 제품은 이탈리아 출신 명품 패션 디자이너 로베르토 카발리가 디자인한 LG전자 휴대전화, 삼성전자가 베르사체와 손잡은 프리미엄 패션 휴대전화, 루이카토즈가 디자인한 삼성전자 노트북 가방 등이 있다.

세계적 디자인 전문회사 이노(대표 김영세)는 국내 MP3플레이어 업체와 제휴해 ‘이노 아이리버’를 선보인 바 있다. 이외에 유명 화가의 작품을 외장에 체택한 가전제품이 출시됐고, 이탈리아 살라바니, 영국 제스퍼 모리슨 같은 세계적 디자이너들이 국내 기업들과 디자인 제휴를 맺었다.

데카르트 신드롬이 확산되는 것은 소비자 욕구와 기업의 전략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지난해 11월 중순 4326명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폴(poll) 결과 ‘가전제품 구매시 가장 고려하는 데카르트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감각적인 디자인과 편리한 기능’을 꼽은 사람이 70.7%로 1위를 차지했다.

‘제품에 담은 감성과 스토리’를 꼽은 사람도 3.7%였다. 기술과 예술의 접목은 가전제품뿐만 아니라 건축, 가구, 자동차 등 산업 전반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이러한 현상은 국내 산업디자인 시장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한국디자인진훙원에 따르면 국내 산업디자인 시장 규모는 2005년 1조3080억원으로 2001년에 비해 약 3배가량 증가했다. 대기업 디자인 부문을 포함하면 시장 규모는 이미 한 해 7조~8조원에 달한다는 분석도 있다.

세계 유명 디자이너들이 한국 시장에 속속 진출하고 관심을 쏟는 것은 국내 디자인 산업 시장의 급성장과 맞물려 있다.

LG경제연구원 박정현 선임연구원은 디자이너 브랜드 마케팅의 성공 비결로 해당 브랜드 컨셉트를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역량이 뛰어난 디자이너 선점으로 ‘자사 제품 명성 극대화, 기업과 디자이너의 디자인 철학 일치, 명성 있는 디자이너 후광 활용, 디자이너 개인 이야기 노출’ 등 스토리텔링 기법 활용 등을 꼽았다.

하지만 앙드레 김 외에 기업이 필요로 하는 브랜드 파워를 가진 국내 디자이너는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박 선임연구원은 "디자이너 브랜드 활용 수요는 많아졌지만 브랜드 파워를 가진 토종 디자이너 인재풀이 적어 향후 해외 디자이너에 대한 로열티 지불로 엄청난 국부 유출이 우려된다. 수출을 염두에 둔 글로벌 제품의 경우 해외 유명 디자이너를 활용하는 것이 기업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국내 디자이너를 키워야 한다. 국익과 국내 산업 보호 차원에서 윈-윈이 가능하도록 관련 기구 등을 네트워크화해 디자이너와 산업을 육성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삼성경제연구소 이안재 수석연구원은 “제품 판매에 있어 소비자 눈길을 끄는 것이 중요한데 디자이너 브랜드를 활용하면 첫눈에 확 끌리는 효과가 있다. 향후 디자이너 브랜드 활용은 더욱 활성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은경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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