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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34)<제85화>나의 친구 김영주(19)|이용상|진짜 김일성은 누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독립군이 보천보를 습격한 것은 1937년 6월4일의 일이다. 그보다 앞서 독립군 국내진격은 1935년 2월13일 평북 동흥읍 습격이었다. 이홍광 부대였다. 따라서 보천보 습격은 독립군의 국내 진입으로서는 두 번째이자 마지막 일이었다.
김영주가 이 전투에 참가했다는 말을 듣고 나는 참으로 감격했다.
한 만 국경에 출몰하는 습격 부대를 우리들은 흔히 조선독립군이라고 불러왔다. 그리고 독립군의 대명사는 김일성 장군이었다. 물론 말로만 듣던 신화 속의 김일성 장군 말이다.
그런데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 단순히 독립군으로만 알고 감격했던 그 습격부대가 실은 중국 공산당 만주 성 소속 유격집단인 동북 항일련군 제1로군(총 사령·중국인 양정우) 밑에 있는 군대라는 것이었다. 즉 제1로군 제2군 제6사라는 것이다. 그리고 제6수장 김일성은 우리들이 이름만 듣고도 감격했던 백발이 성성한 신화 속의 김일성이 아니라 모스크바 공산대학에서 공부하다
세계 공산당 본부에서 파견된 40대에 가까운 장년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그는 지금 평양에 있는 김일성과는 나이로 보아도 엄청난 차이가 있다. 지금 북한의 김일성은 보천보 습격이 있던 1937년에 겨우 25세였으니 말이다(김영주는 입때 17세).
그런데 당시 또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보천보를 습격했던 항일련군 6사장 김일성이 죽었다는 것이다. 즉 그 김일성은 1937년 11월13일 (보천보 사건 6개월 후이고 중·일 전쟁 발발 5개월 후) 괴뢰 만주군 제7단 제1영(대대)의 포위 공격을 받고 사살되었다는 것이다.
1937년 11월18일자 경성일보의 보도를 보자. 『살육과 약탈을 자행하여 무고한 백성을 괴롭히고 치안을 위협하던 비적 김일성을 지난13일 만군 토벌대는 그의 소재를 확인, 이를 공격하여 격전 5시간 끝에 그를 사살하는데 성공하였다. 보천보 습격의 장본인이며「녹림의 영웅」과 같이 동변로 일대를 설치던 김일성이란 어떤 사람인가.
그의 태생은 혹은 함남이라고도 하고 혹은 평남이라고도 하는데 그 이상은 판명되자 않는 비적 다운 성장과정이다. 김일성은 어릴 때 아버지를 따라 만주로 월경해 왔으며 ○○혁명운동을 일으켜 그의 부친은 그 수령이 되었다. ○○운동이 확대됨에 따라 적색 마가 그들 배후에 나타나 공산사상을 선동했다.
적색에 물든 김일성은 19세 때에 모스크바에 가 10년간 공산대학에서 공부했으며 또 적위 군에 입대, 반일운동의 실천가가 되었다. 그는 반만·항일 군을 일으켜 국경선을 휩쓸고 있었다.
녹림의 유일한 인텔리 김일성은 곧 이어 도당의 수괴에 앉혀졌다. 그리고 지난 봄 함남국경 보천보를 습격하여 이 때문에 국경선을 사수하던 혜산 서원 수명이 희생되었다. 부자 2대에 걸쳐 반만 항일을 계속했던 김일성은 토벌군에 쫓겨 마침내 36세를 일기로 악몽을 청산, 파란 많은 생애의 막을 내렸다』.
이와 같은 김일성의 죽음은 당시 괴뢰 만주 군 관련 서지에도『김일성 비 토벌상보』라고 발표되었고 조선 군 당국은 김일성의 죽음이 얼마나 시원했던지 담화까지 보도했던 것이다. 김일성의 시체와 사안은 일·만 관계 관들이 다각도로 조사·확인했고 평소 김일성의 신임이 두터웠던, 당시 포로로 잡혀 온 권영벽(일명 권창욱)·박금철·박달 등 김일성의 옛 부하들에게도 그 사실을 확인시켰다는 것이다.
이것으로 일제는 김일성의 죽음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그러나 사안을 확인해 주었다는 김일성의 부하 권영벽·박금철·박달 같은 자들은 모두 공산당 조직생활의 골수분자들이다. 일본 관헌이 보여준 사실이 김일성이 아닌데도 거짓으로 김일성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들 세 사람이 비밀리에 미리 짰을지도 모른다.「김일성의 얼굴이 틀림없다고 하자」라고. 그렇게 해서 당국을 기만하면 당국은 김일성이 죽은 것으로 확정하고 더 이상 그를 추격하지 않을 것이니 말이다.
여담이지만 일제 때 사망신고를 제출하고 독립운동을 하신 분이 있었다. 그러자 죽은 줄 알고 경찰은 더 추격하지 않았다.
경상도 사람이었는데 지금 그분의 성함은 기억할 수 없다.
북한에서는 그때 김일성의 죽음을 일제가 조작한 것이라고 한다. 즉 보천보를 습격한 주인공은 현재 북한에 있는 김일성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보천보 습격을 일컬어「조선은 죽지 않고 약동 차게 살아 있다는 신념을 국민들에게 주기 위한 국내 진입작전이었다」고 결사적으로 선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보천보 습격의 주인공은 과연 누구인가.
당시 2천만 우리 동포가 뜨거운 눈물로「조선독립 만세」를 가슴속 깊이 외치게 했던 그 열사는 도대체 누구라는 말인가.
나의 친구 김영주는 중국에 있을 때『나는 그 당시 보천보에 있었고 전투에도 참가했다』고 나에게 말했다.
당시 그와 나는 사상이나 정치성은 물론 서로 거짓말할 아무 이유도 없을 때였다.
이역만리 타국 땅에서 우리들에게는 오직 우정과 상호신뢰가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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