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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기 말 추정 암각화 중부지방서 첫 발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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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신석기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암각화(巖刻畵)가 한반도 중부 지방에서 처음으로 발견됐다.

원로 고고학자 최무장(66.전 건국대 박물관장.사진) 박사는 26일 "6개월 전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의 한 주민에게서 '산명리의 농수로 바닥에 그림이 그려져 있다'는 제보를 받고 발굴에 나서 최근 가로 6m, 세로 6m 크기의 현무암 바위에서 암각화를 찾았다"고 밝혔다. 최 박사는 "암각화에는 눈.코.입이 선명한 사람 얼굴 모양을 비롯해 태양(지름 70㎝), 달(30㎝), 사람 발자국, 화살촉 으로 보이는 그림 16개가 양각 또는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고 설명했다.

암각화가 발견된 곳은 민통선과 인접한 백마고지 서북쪽 끝의 농수로 바닥이다. 30여 년 전까지 지표면에 드러나 있었으나 경지 정리로 양쪽에 5m 높이의 제방이 쌓이고 폭 4~5m의 농수로가 개설돼 현재는 10㎝ 깊이의 물 속에 잠겨 있다.

◆특징=울산 반구대 암각화(국보 제285호), 고령 양전동 암각화(보물 제605호) 등 영남 지역에서 발견된 암각화들이 수직 암벽에 새겨진 것과 달리 철원 암각화는 바닥에 놓인 암반 윗면에 새겨진 것이 이채롭다. 가는 선 모양으로 바위를 파내는 방법 대신 바위 표면을 넓고 깊게 돌로 파낸 뒤 테두리를 돌로 갈아낸 것도 특색이다.

암각화 가운데 두 눈과 코 모양을 한 지름 11~18㎝, 깊이 6~9㎝ 크기의 구멍 세 개가 관심을 끈다. 이 가운데 오른쪽 눈 안에서 석영으로 만든 화살촉(길이 3㎝, 폭 2.3㎝)이, 코 안에서는 화강편마암 재질의 돌칼(길이 11㎝, 폭 3.5㎝)이 고운 점토에 싸인 채 출토됐다.

최 박사는 "국내에서 발견된 암각화 가운데 유물이 함께 출토되기는 처음"이라며 "유물들로 미뤄 볼 때 암각화의 제작 시기는 기원전 10세기께 신석기 말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그는 "암각화는 신석기인들이 하늘을 숭배하는 제단으로 사용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여겨진다"며 "돌칼과 화살촉은 풍요를 기원하는 뜻에서 암각화 제단에 묻은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최 박사는 다음달 이 같은 내용을 학계에 발표할 예정이다.

◆학계 반응=현장을 둘러본 임효재(65.한국선사고고학회장) 서울대 명예교수는 "중부 지방에서 처음으로 발견된 얼굴 모양 등의 이 암각화는 러시아 연해주 아무르강 유역에서 발견된 신석기 암각화 유적과 유사하다"며 "우리 민족의 기원을 연구하는 귀중한 자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신석기시대 암각화의 전형적 특징인 둥근 원들이 남북 방향으로 새겨진 점과 함께 출토된 유물로 미루어 신석기시대 암각화로 보인다는 설명이다.

암각화의 코 안에서 나온 돌칼(右)은 길이 11㎝, 폭 3.5㎝로 재질은 편마암이다. 오른쪽 눈에서 출토된 화살촉은 길이 3.2㎝로 석영으로 만들어졌다. 돌칼과 화살촉은 풍요를 기원한다. 암각화에서 유물이 함께 출토되기는 국내에서 이번이 처음이다.

학계는 이 암각화가 선사시대인의 농경문화와 생활상을 연구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병주(56) 연천선사박물관 학예실장은 "유물이 훼손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암각화 위로 흐르는 농수로의 물길을 돌리는 등 보존 대책이 시급하고 주변 지역의 지표조사도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장명수(60) 낙동문화학술연구소 소장은 "석기로 바위에 깊은 구멍을 파기 쉽지 않은 데다 청동기시대 이후에도 암각화가 많이 만들어진 만큼 광범위한 조사가 뒤따라야 정확한 제작 연대를 알 수 있을 것"이라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다.

철원=전익진.박정호 기자

◆ 암각화=자연에 노출된 바위나 동굴 벽에 동물이나 기하학적인 상징 문양을 그리거나 새겨놓은 그림. 구석기시대에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신석기시대 말과 청동기시대에 많이 제작됐다. 선사시대인의 신앙과 생활 모습을 표현하고 있으며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주술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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